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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테비 May 30. 2024

마녀들, 브랜다 로사노 장편소설

24. 05. 30 읽고 있는 책

<마녀들>은 멕시코 소설이다. 멕시코 작가(브랜다 로사노) 글을 처음 읽는다. 인터뷰하는 두 명의 여성(질문자 - 조에, 답변자 - 펠리시아나) 각자 이야기가 장 별로 쓰여있다. 펠리시아나의 첫 장을 시작으로 조에가 다음 장을 끌어간다. 둘이 만나게 되는 계기의 사건(펠리시아나 사촌 팔로마의 죽음)의 배경이 1, 2 장에 펼쳐지고 3장부터는 인터뷰라고 생각하면 된다. 서간문의 편지 형식의 글도 아니고 질문이 있는 글도 아닌 그냥 각자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야기 흐름은 비슷하게 흘러간다.


11쪽
죽음이 세 번째로 팔로마를 부른 것은 도시에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을 때였어요. 아직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태어나기 직전이던 병을 안고 있던 남자였지요. 그때 죽음이 팔로마의 귀에 노래를 흥얼거렸고, 그 노래가 태양처럼 명징했던 까닭에 그날 오후 6시, 기어이 죽음이 도래했고, 과달루페가 내게 와서 팔로마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된 겁니다. 팔로마의 손에는 아이섀도가 들려 있었고, 나는 거울에서 그녀의 모습을 두 번 보았고, 두 번 다 너무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모습이었어요. 몸 아래로 퍼져 나가는 핏자국이 아니었다면 말이지요. 얼마나 끔찍한 시각(時刻)인가요, 그 끔찍한 시각을 기억합니다. 내게 그건 온 세상 모든 곳의 오후 6시였고, 오늘의 오후 6시이자 어제와 내일의, 그리고 이어질 모든 날의 오후 6시였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 집에서 키우던 거북이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죽었다. 8년 키운 거북이다. 눈병이 생긴 거북이 관리가 미흡했던 결과로 보인다. 사람 안약을 넣어줬는데 호전되지 않은 듯 해, 거북이 안약을 인터넷으로 구매해 넣어줬다. 매일 넣어주니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지만 통 먹지 않았다. 아직 눈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아, 항생제를 갈아서 안약에 태워 넣어주기도 했다. 이런 방법은 블로그들을 보며 어설프게 치료였을 뿐 정확한 방법은 아니었다. 먹는 게 시원치 않아 병원을 데리고 가야지 했지만, 퇴근하고 다시 병원 가는 시간이며 비용적인 부담(얼마인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지만 막연한) 주말에 연이은 약속들로 미뤘던 안일함의 결과였다. 주말에 물을 갈면서 따뜻해진 기온으로 온도계를 뺐다. 급격한 온도 변화는 아닐지라도 물 온도의 차이가 얘에게 부담이었을까. 며칠 사이 몸의 반응이 둔하다.

월요일에 병원 예약을 했지만, 여전히 시간 맞추기 어려워 출근했다가 혼자라도 병원 가야겠다는 마음에 반차를 쓰고 집에 왔다. 병원 가기 위해 거북이를 수조에서 꺼냈는데, 몸이 더 쳐진다. 아니 아예 축 쳐지고 목에 힘이 하나도 없으며 입도 벌려져 있다. 그동안 다물었던 입인데 입이 벌려져 있음이 불길했다. 몸을 이래저래 건드려도 반응이 없다. 아, 무지개다리를 건넜구나. 청소년에게 문자를 넣었고, 남편에게도 문자를 넣었다. 점심시간이 되지 않은 청소년에게 답은 없고, 남편은 한숨과 함께 저녁에 묻어주자고 했다. 한 시간쯤 지나 청소년은 그래도 병원 가보자고, 엄마가 병원 간 거 아니잖아, 했다. 나는 병원 가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 거라고 했지만 하교 후 학교로 태우러 갈 테니 네가 보고 병원 가자고 하면 그때라도 가겠다고 했다. 마지막 접수 시간에 늦을 거 같지만, 애가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었다. 하교 시간 전에 학교 앞에서 기다려 바로 태웠다. 집으로 왔다.


아이는 거북이를 들어보더니 울기 시작했다. 아이도 알았다. 이미 죽었다는 것을. 오열한다. 학원도 쉬었다. 나도 반차 쓰고 나와 옆에서 한 시간가량 울다 지쳐 다시 회사로 갔다. 아이와 함께 다시 울기 시작했다. 기운이 너무 빠져 나는 카페에 갔다 오겠다며 잠시 밖에 있었다. 아이는 울다 지쳤는지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거북이를 보냈고, 아직도 죽음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어제는 청소년과 함께 귀가하는데,

“거북이를 살릴 수 있었는데 죽인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라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너무 미안해서 쉽게 말을 뱉지 못하고 있었다. 너 때문이라고 탓할 거 같아서, 내 미안함을 외면할까 봐 말을 하지 못했다. 이럴 때 청소년이 더 어른스럽다. 속으로 삭이지 않고 꺼내고 이야기하고 반성하는 힘이 아이가 더 세다. 청소년에게 주말마다 약속이 많아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학원을 가지 말고 병원부터 갈 걸 하고 미안함을 표시했다.

우리는 지금 거북이 얘기를 자주 하면서 미안함을 마주하고 있고, 남은 거북이를 더 자주 들여다보면서 행동이 달라졌는지 유심해 본다. 거북이 두 마리가 있을 때 서로 등에 올라타면서 (교대로 올라탔는지 모르겠지만) 물 밖으로 등을 내밀거나 얼굴을 내밀며 쉬곤 했는데, 이젠 혼자여서 여과기에 올라가 등을 내밀거나 얼굴을 내민다. 아니면 놀이터에 올라가 있다. 혼자인 거북이에게 마음을 더 쓰고 있고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모습인지 모르겠지만, 근처만 가도 달라붙을 듯이 다가오던 거북이가 오긴 오는데, 자꾸 놀이터 밑으로 들어간다. 먹이를 주면 숟가락을 뜯을 듯이 받아먹는데, 한 뼘 떨어져 머리를 내미는 듯이 보인다. 부디 나의 착각이길 바란다.


거북이가 죽은 그 시간, 그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세상 모든 시간이 그 시간으로 멈춰져 슬픔이 가시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불쑥불쑥 떠올라 눈물이 차오를 때면 몇 장 없는 사진에 더 미안하다. 사진이라도 많이 남겨둘걸. 찍을만한 특별함이 없다고 여겼다.  팔뚝만 하게 커져 수조가 좁아 보이니 더 찍지 않았다. 둘이 같이 있는 사진을 인화해서 붙여야겠다. 다음에 내 그림에 거북이를 넣어야지.


편하게 쉬길 바란다, 무지개다리를 외롭게 건너지 않았기를.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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