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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치욱 Sep 29. 2022

내가 맡은 작품 #5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기본 정보]

제목: 나는 조선사림입니다(I Am From Chosun)

감독: 김철민

출연: 강종헌, 김창오, 박금숙, 서원수, 부만수, 이동석, 이철 외

제작: (주)엠앤씨에프, 다큐창작소, (주)영화사 진

배급: (주)인디스토리, (주)엠앤씨에프

상영시간: 94분

장르: 휴먼 다큐멘터리

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21년 12월 9일


[시놉시스]

한반도 식민과 분단의 역사 속에서

차별받고 외면당한 #재일조선인

하지만 끊임없이 #나를 찾아서

비로소 #두 개의 조국을 가슴에 품고

오롯한 #조선사람으로 살기 위해

분노하되 증오를 선택하지 않는 삶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업무를 위해 온라인 스크리너로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름 사회 이슈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볼 때는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해방 이후 일본에서 '조선사람'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재일조선인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하는 무척 통시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꼭 설명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영화가 타겟으로 하는 관객이 이야기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 관객이라면 오히려 누차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사족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일조선인 하면 추성훈, 안창림 선수 밖에 알지 못하는 문외한인 나에게는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두 시간 가량의 분량으로 집대성한 이 영화를 보면서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빠릅니다'를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이 영화를 대중에게 소개해야 하는 임무를 맡은 나로서는 또다시 공부의 시간을 마련해야 했다. 우선 재일조선인, 그들이 누구인지 이해하기 위해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그들을 알아가다 보니 왜 이들이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타국에서 차별을 받으면서 지내는 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식민지배의 핍박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전쟁과 이념 대립의 아픔이 상존하는 한반도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일본 땅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념 대립은 재일조선인들의 커뮤니티마저 갈라놓아 크게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과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으로 나뉘게 되었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에는 크게 두 이슈가 중심이 된다. 하나는 박정희 정권에서 자행된 '간첩조작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혐오 행위 및 조선학교에 가해지는 차별이다. 내 마음을 특히 아프게 했던 사건은 '간첩조작사건'이었다.


유신헌법 발표 이후 박정희 정권은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중앙정보부를 필두로 연이어 간첩조작사건을 일으켰다. 한국 사회의 물정에 어두운 재일조선인들은 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사소한 구실로 이들을 간첩으로 엮어 불법 연행과 고문 그리고 사형 등 중형의 선고를 내렸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군부독재정권의 농간에 의해 청춘을 빼앗기고 온갖 고초를 겪었다. 훗날 이들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그들이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무슨 수로 보상하겠는가.


영화 속에서 주요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 역시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인 강종헌 선생님이다. 일본 출생의 재일조선인 2세인 그는 일본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1972년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유학을 왔다. 그러다 1976년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사형 판결을 받고 13년 간 수감 후 가석방되었다. 출소 후 일본으로 돌아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현재 대학에서 평화와 인권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는 강종헌 선생님의 모습은 평온하고 품위있었다. 절망의 연속이었을 고통스런 날들을 겪었을 그는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 삶'을 살겠노라고, 지금 자신은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언론 시사회 때 강종헌 선생님, 마찬가지로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이신 이동석 선생님께서 참석하셨다. 기자간담회에서 여러 질문에 대해 두 분께서 대답하시면서 무척 말씀을 잘 하셨는데 특히 강종헌 선생님은 영화 속 인터뷰 때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고 조리있게 말씀하셔서 나도 객석에서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금 이들의 앞날을 가로막은 국가폭력에 분노가 치밀었다.


강종헌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또렷한 이유는 시사회 때 우리들에게 건넨 한 마디 때문이다. 시사회 날 sns홍보영상 촬영 등 여러 행사일정을 소화하시면서 홍보사인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시고는 뭔가 느끼신 것이 있으셨는지 당일 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우리(대표님 제외)에게 "엄한 대표님 밑에서 고생이 많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와! 거기서 소름이 돋았다. 우리들이 일하는 모습을 잠깐 보고도 그걸 느끼시다니. 내가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면서 강종헌 선생님 '똘똘하시다'며 허접한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 친구가 선생님께서 '통찰력'이 좋으시다고 정정해주었다. 아무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일하는데 누군가 나의 어려움을 알아주니 괜히 위로도 되고 놀랍기도 했다.




돌아보면 내가 이곳에서 그간 맡은 영화들 중, 이 영화에 가장 정을 주지 못했다. 이제는 제법 옅어졌지만 진보진영을 크게 두 갈래로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파)과 PD(People's Democracy, 민중민주파)로 나눌 수 있다고들 한다. 나는 이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스스로를 PD계와 더 가깝다고 여기며 NL계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는데,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상대적으로 NL계열의 성향이 도드라지는 영화였다. 그런데, 이념 대립으로 인해 아픔을 겪은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사람이 내가 지향하는 이념과 다르다는 핑계로 이 영화에도 더 많은 애정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어리석었다고 느낀다. 강종헌 선생님은 2012년 제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에 입후보했다가 종북·간첩 논란에 휘말렸지만 이후 재판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때 우리 사회가 보여준 무지와 폭력의 모습에서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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