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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치욱 Sep 30. 2022

내가 맡은 작품 #10 <말아>

[기본 정보]

제목: 말아(ROLLING)

감독: 곽민승

출연: 심달기, 정은경, 우효원 외

제작: 왓에버웍스

배급: (주)인디스토리

상영시간: 76분

장르: 롤링&힐링 청춘 시네마

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22년 8월 25일


[시놉시스]

전염병 유행으로 집에만 콕 박혀 있는 청년 백수 ‘주리’

배고픔도 실연의 아픔도 모두 집에서 해결한다


어느 날 자취방을 부동산에 내놓겠다는 통보와 함께

엄마의 김밥집을 운영하라는 미션이 주어지는데…


인생도 김밥처럼 요령껏 말 수 없나?

스물다섯 주리의 명랑한 자력갱생이 시작된다





한국의 통속적이면서도 녹진한 삶의 애환이 담긴 '뽕'을 재해석한 [뽕]이라는 명반을 내놓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타일의 대척점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데뷔 EP 4곡 중 3곡의 프로듀싱을 담당한 프로듀서 250을 아시나요? 마이너한 감성의 덕후 취급을 받기 딱 좋을 이런 얘기를 신나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내가 맡은 열 번째 영화 <말아>의 곽민승 감독이다.




<말아>는 작년 <생각의 여름>처럼 밝은 톤의 여름영화다. 그래서 비슷한 기운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었는데 내게 <생각의 여름>은 배우 분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면 <말아>는 감독님이 더 기억에 남는 영화다.


발단은 어느 날 감독님과 카톡으로 업무에 대한 소통을 하면서였다. 감독님께서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나보고 노래 들으면서 오후 업무 화이팅하라면서 뉴진스의 'hurt'를 공유해주셨다. 평소 힙합을 즐겨 듣는 나는 뉴진스는 자세히 모르지만 뉴진스 데뷔 앨범의 프로듀서로 힙합계에서 유명한 250과 프랭크(FRNK)가 참여했다는 정보를 알고 있어서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 얘기를 감독님한테 하면서 잘 듣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어떻게 250을 아시나면서 250의 노래가 <말아>에 삽입됐다고 이야기해주셨다.


홍보마케팅 시작하기 전에 스크리너로 영화를 봤을 때는 250의 노래를 전혀 찾을 수 없었는데 알고보니 감독님이 250의 팬이어서 소속사 BANA를 통해 직접 허락을 구하고 영화의 바뀐 개봉버전에 250의 노래 '뱅버스

'를 삽입했던 것이었다. 사실 <말아>의 홍보마케팅 업무와는 아주 무관한 tmi였지만 취향을 공유하는 반가움에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보다 부드러운 소통을 진행할 수 있는 물꼬를 트게 되었다.




그러다가 칼퇴 후 집으로 돌아온 어느 금요일 저녁, 감독님께 카톡이 왔다. 시간 되시면 술 살테니 한 잔 하자고 근데 주말에 등산 가자는 부장님 같은 제안일 수 있으니 거절하셔도 된다고. 불편한 사이였으면 진짜로 부장님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처럼 들렸겠지만 이미 어느 정도 편하게 이야기하고 지내기도 했고, 고작 홍보마케팅사 직원에게 이런 제안을 한 감독님은 처음인 터라 그야말로 호기심이 동해서 제안에 바로 응했다. 그렇게 집에서 30분 정도 걸려 감독님 계신 동네로 넘어가서 감독님을 만났다.


거기서 함께 간단히 맥주 마시면서 <말아>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헤어질 결심>이 왜 이런 저조한 스코어를 기록해야 하는지 개탄하기도 하면서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감독님께 왜 이런 자리를 내게 제안했는지도 물어볼 수 있었다. 감독님은 팬데믹이 한창인 와중에 <말아>를 만들면서 함께 고생한 스탭들과 제대로 회식이나 뒤풀이도 못해서 무척 아쉬웠다고 하셨다. 사적이고 편한 대화를 통해서 공유할 수 있는 생각이 있고 그 경험이 더 재밌는 작업물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그렇지 못해서 개봉을 앞두고 팬데믹이 완화된 지금이라도 홍보마케팅을 맡고 있는 나와는 이렇게 사적인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팬데믹 이후 다시금 찾아올 소중한 일상의 온기를 기대하는 <말아>에 담겨 있을 감독님의 마음이 더 절절히 짐작되었다.




<말아>는 사랑도 취업도 말아 먹은 채 팬데믹까지 겹쳐 집에만 콕 박혀 지내는 청년 백수 '주리'가 엄마의 김밥집을 잠시 맡게 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일상을 살아갈 기운을 차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정말 김밥을 닮았다. 김밥 한 줄로 배가 부를까 싶지만 다채로운 속재료들이 풍성한 맛과 든든함을 전해주는 것처럼 <말아>는 평범하고 단순한 이야기 속에 소박하고 따뜻한 여러 에피소드와 밝은 음악, 청량한 영상미가 어우러져 그 나름의 보는 맛과 잔잔한 공감을 전한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늘 느꼈던 점은 영화는 만든 사람들을 닮는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염세적이라고 하지만 '밝은미래'에 대한 기대를 끝내 손에 쥐고 그 기대를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눌 줄 아는 곽민승 감독님의 영화가 내가 이곳에서 맡은 마지막 작품이어서 무척 행운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를 끝으로 나는 퇴사하고 <말아> 속의 '주리'처럼 백수가 되었지만 '주리'가 일상의 활기를 되찾았듯이 나에게도 소소하지만 설레는 내일이 찾아올 것이라 믿고 싶다. 감독님도 <말아>가 개봉지원사업에 선정되고 일본 개봉도 앞두고 있다는 기쁜 소식들을 들려주시는 걸 보면 이 영화에는 분명 좋은 기운이 고소한 참기름 냄새처럼 폴폴 풍기는 모양이다. 참, 이 영화를 보게 되면 한동안 김밥에 중독될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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