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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치욱 Sep 30. 2022

내가 맡은 작품 #8 <모어>

[기본 정보]

제목: 모어(I Am More)

감독: 이일하

출연: 모지민(모어, 毛魚), 예브게니 슈테판, 존 카메론 미첼 외

제작: 익스포스 필름

배급: (주)엣나인필름

상영시간: 81분

장르: 모어 댄 다큐

등급: 15세이상관람가

개봉: 2022년 6월 23일


[시놉시스]

발레리나, 뮤지컬 배우, 안무가, 작가

누군가의 자식, 친구, 연인

성소수자, 드랙퀸, 끼순이

그리고 토슈즈 신는 미친X…

이 세상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나

인생은 쇼, 내 이름은 모어! 


진짜 튀는 무대를 보여줄게!





2021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우리 대표님과 함께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우리 회사에서 맡게 될 예정이라고 하는 영화 <모어>를 처음 관람했다. 보고 나서 바로 든 생각은 '이 영화 내가 꼭 하고 싶다'였다. 관객을 단숨에 작품 속으로 빨아들이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드래그 아티스트 모어가 지닌 아름다움의 애환을 표현하는 여러 영화적 장치 그리고 이야기 그 자체로도 <모어>는 최고였다.


영화제에서의 첫 관람 이후 몇 달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모어>의 홍보마케팅을 진행하게 되었다. 개봉 일정을 앞두고 나는 기대감에 부풀었고, 4월에 진행되었던 '모어'의 사진전('모어'의 사진을 그의 형제인 '모지웅' 사진작가님이 촬영했다)에도 따로 다녀와서 혹시 영화와 관련해 도움될 만한 것이 없을지도 살폈다.




열심히 홍보마케팅 기획서를 준비해서 첫 킥오프 회의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는 주인공인 모어 님은 참석하지 않았고, 이일하 감독님과 각사 인원이 참석했다. 그런데 회의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했다. 나는 생각의 방향성이 꽤 정치적인 편이라 기획서를 준비할 때에도 이 영화를 '퀴어 영화'로서 포커싱해서 사전 사회이슈 분석과 그에 따른 방향성을 도출했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분들이 생각하는 이 영화의 홍보마케팅 방향성은 '엔터테이닝'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한 인물의 성장기'로 수렴되었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나는 예비 관객들의 심리적 문턱을 낮추기 위해 사용되는 '모두', '보편적' 등의 워딩을 솔직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만은 퀴어 존재 가시화의 차원에서 당당하게 '퀴어 영화'로 호명되기를 바랐다. 특히, <너에게 가는 길>(2021)이 포스터나 다른 광고물 등에서 퀴어 당사자의 모습을 굳이 드러내기 보다는 그들의 어머니만을 전면에 노출하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불만이 많았다(개봉 전 영화제에서 배포된 <너에게 가는 길>의 부채 굿즈에는 퀴어 당사자와 그들의 어머니가 나란히 담겨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홍보마케팅 방향성은 감독님에 의해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은 회의에서 우리의 기획서와 브리핑을 살펴보시고는 영화가 너무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 영화는 재밌게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도 말씀하셨다. 영화를 만드신 감독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그리고 후에 주인공 모어 님도 이 영화가 퀴어 영화로 국한되어 소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우리 대표님은 내가 생각한 방향성을 최대한 존중해주셨던 것이지만 사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다들 영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 위해서 고민하고 노력하는데 나만 치기어린 생각에 영화의 주제의식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엔터테이닝한 요소와 정서적 감동 등 다수가 흥미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를 흐리게 할 수 있어서 좋은 생각도 아니었다. 크게 배우고 느꼈다.




한편, 초반에 <모어>의 기사 보도량과 매체 주목도가 저조해서 무척 속상하고 아쉬웠다. 역시나 퀴어 영화에 대해 사회의 시선이 아직은 폐쇄적인 것인가 싶어서 가끔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작품 자체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1만 관객 돌파를 기대했지만, 이대로 미온적인 반응 속에 묻히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불안은 개봉주 월요일 씨네21에 업로드된 <모어>의 전문가 평점을 확인하고 나서 서서히 사라졌다. <모어>의 전문가 평점은 7.5점으로 앞선 시기 개봉한 영화들 가운데 드물게 높은 수치였다(...만 <모어>보다 하루 먼저 개봉한 <탑건: 매버릭>의 전문가 평점이 8.6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지붕을 뚫는 바람에 존재감이 작아졌다. 젠장). 그리고 언론 시사회 이후 모어에게 인터뷰를 희망하는 매체도 많았고, 개봉 전 시사회에서 일반 관객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개봉하고 나서도 실관람객의 호평을 동반한 입소문을 바탕으로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에서 <니얼굴>과 함께 선전하는 훈훈한 광경을 연출했다. 좋은 관객 반응은 극장 장기상영의 발판이 되어주었고, 개봉 1달만에 1만 관객을 돌파했다. 내가 맡은 영화로서는 두 번째였다.


사실 <모어>를 두고 미리부터 호들갑을 떤 것에 비해 내가 흥행에 기여한 바는 그리 크지 않다. 1만 관객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작품 자체도 너무 좋지만 함께 일하는 분들의 명확한 방향 설정과 그에 걸맞는 멋지고 재밌는 아이템들, 배급사의 적극적인 GV 기획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주변 사람들한테  극장에서 <모어>를 꼭 보라고 열심히 추천한 것 밖에는 없다. 그리고 영화 티셔츠 굿즈 입고 퀴어 퍼레이드 놀러간 기억 뿐이다.




<모어>는 인간 모지민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성장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를 맡으면서 나 역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모두가 보여준 뜨거운 열정에 비해 나는 그저 숟가락만 얹은 것 같아서 민망하기도 하다. 그래도 모어 님은 알 것이다. 그와 같은 MBTI인 내가(INFJ 만세!)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이 영화에 갖는 애정이 얼마나 커다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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