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립을 해야 진정한 독립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께서 어느 신문에 난 기사를 보여주셨는데, 아이 1명을 키우는 데 드는 비용에 관한 기사였다. 학원비와 학비 등으로 부모 등골이 휜다는 내용이었는데, 아버지 말씀인즉슨 "이렇게 한 명도 아니고 3남매를 키우느라 돈은 3배로 드니, 너희들은 대학에 들어가면 각자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경제적 자립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이다"라는 요지셨다.
이렇게 보면 무슨 꼰대 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평소 다정하셨던 아버지의 단호한 선언에 "경제적 자립을 해야 진정한 독립이다"라는 말은 내 인생의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고3 수능이 끝난 겨울방학,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고등학생 수학 과외를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늘 말씀해오시던 "경제적 자립"을 이뤄야 진정한 성인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경제적 자립을 하면 독립이라 하셨으니 내 맘대로 산다 한들 뭐라 못하시겠지! 하는 의도도 컸다.
20대 1억 모으기
대학 입학 전 경제적 자립을 위해 대학 학비와 한 달간 교통비, 통신비 등과 같은 고정비, 그리고 식비와 같은 부대 비용이 얼마인지 계산해 예산을 짰다.
대학시절 가장 큰 지출에 해당하는 학비는 장학금을 받아 해결하고자 노력했고, 고정비 및 부대비용은 과외비로 처리했다. 그리고 남는 과외비를 들고 대학 근처 농협에 가서 생애 처음 예금통장을 만들었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후 경제적 자립은 반드시 이뤄야 하는 필수 과제가 됐고, 학부와 대학원 시절 장학금과 과외 아르바이트를 사수했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관리가 필수였기에 매일 해야 할 일을 우선순위로 정리해 지워나가곤 했다.
학위를 받고 직장에 입사한 후에도 주말 새벽에 고등학생 과외를 했는데, 몸소 극한 체험을 경험한 뒤 몇 달 만에 그만뒀다.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서도 대학 때 하던 습관대로 매달 수입이 얼마인지 파악하고, 한 달에 쓰는 고정비와 소비에 필요한 최소 비용을 계산해 1달간 내가 모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을 정해 일괄 저축했다.
20대엔 시드머니가 없으니 자금을 모으는 시기라 여겼기에 이자율이 조금이라도 높은 제2금융권에 발품을 팔아 적금 계좌를 만들었고, 저축은행 적금을 하다 은행이 사라지는 경험도 해봤다. 5000만 원까지 원금 보호가 되기에 원금은 돌려받았지만 당시엔 정말 식겁했다.
"서른까진 무조건 1억을 모을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나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주변에도 계속 이야기를 했고, 정말 서른이 되었을 때 1억을 모았다.
1억 모은 후 투자금 불려 내 집 마련하기
서른 살에 직장을 옮기면서 일은 더욱 바빠졌는데, 어떻게 시드머니를 불려야 하는지 고민은 더 커졌다.
당시 회사 주거래 은행이나 친구가 추천하는 증권사 등에 방문해 어떤 투자 상품이 있는지 설명을 듣고, 혼자 공부를 해보면서 주식형, 채권형 펀드의 의미와 경제 상황에 따라 주식형 vs 채권형 중 어느 것이 유리한지 조금씩 이해해 갔다.
힘들게 모은 돈이니 만큼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내가 완벽히 이해한 곳에 돈을 넣자는 생각이었고, 내가 가장 이해하기 쉬웠던 투자처는 지수를 추종하는 ELS 상품이었다(지금은 ELS를 전혀 하고 있지 않다).
당시엔 ELS 투자 초입기로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 대부분이었다.
미국 대표 지수 + 한국이나 홍콩, 유럽 유로 스톡 등으로 상품이 구성됐고, 여러 상품들과 각각의 지수의 10년간 흐름을 파악해 나름의 원칙을 세워 투자를 했다.
원칙은 아주 심플했는데, 지수 구성은 2가지로만 한다(3가지 이상으로 혼합된 상품은 하지 않는다), 투자금은 3등분 해서 나눠 매수한다, 매수는 반드시 지수가 빠질 때 한다 정도였다.
직장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적응하기 무척 바빴기에 매수 후에는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ELS 상품이 오히려 시간이 부족한 내겐 적당했고, 지수 상승기에 맞춘 적절한 투자 전략으로 너무나 다행히도 6개월 길게는 1년이면 투자금을 회수하고 재매수하는 일을 반복할 수 있었다.
남는 시간은 두 번째 목표인 내 집 마련을 위한 부동산 관련 책들을 읽는데 투자했고, 시세 파악을 위해 부동산을 돌아다니던 중 미분양 아파트에 조금씩 피가 붙는 아파트 가격 상승의 들썩임이 느껴졌다.
시드 머니를 굴려 모은 그간의 돈을 모두 털어 내 집 마련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각 시기별 투자처에 대한 운이 정말 좋았다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미국 주식 투자 입문
내 집 마련까지의 계획이 끝난 후 다음 목표가 뚜렷하지 않아 고민을 하던 중 업무상 가까이 모시게 된 교수님과 대화에서 투자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왜 아직 미국 주식에 투자를 하지 않냐 물으셨다.
당시 교수님은 구글로 검색을 하고, 디즈니 영화를 보고, 나이키 신발을 사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그 기업에 투자할 생각은 왜 안 하냐며 이제 미국 주식 투자로 넘어가라 조언해 주셨다.
귀인을 만났네!
뭔가 새로운 투자처가 생겼다는 기쁨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가서 가장 먼저 읽은 책이 피터 린치의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이었다.
이후 거시경제 사이클 관련 경제 서적들, 사업보고서의 재무제표 읽는 법 등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책부터 찾아 읽었다. 각종 배당주 관련 책들도 읽어나갔고, 2019년 미국 주식투자 붐으로 출간되기 시작한 투자 블로거 들의 양질의 서적들도 빠지지 않고 찾아 읽었다.
출퇴근 시간은 경제 방송과 매일 함께했고, 관심 있는 기업들의 사업보고서를 찾아 읽다 보니,
앞으로의 산업 전망을 기록한 리포트들이 미래를 보여주는 수정구슬 마냥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미국 주식이라는 파이프라인
2018년 겨울부터 미국 주식 투자를 소액으로 조금씩 해보다 2019년부터 매달 일정 금액을 투자했고, 공부량이 쌓여감에 따라 월급에서 고정비를 뺀 투자금 대부분을 미국과 중국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2019년엔 매달 들어오는 배당금이 마냥 즐거웠고, 투자 1년 만에는 소박한 양도소득세를 내면서 스스로를 칭찬했다.
2020년 지금도 미국 주식 투자는 여전히 어렵지만 공부해 나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물론 미국 주식 공부가 재미있다는 것과 투자를 잘한다는 것은 정말 다른 이야기다. 다만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잘할 수 있게 되진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소비 후 남는 돈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하고 남는 돈을 소비한다는 원칙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