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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daum Jan 30. 2022

어른이 된다는 건,

CHAPTER   4.  원더우먼 엄마

4️⃣ 나이답게 책임지는 어른으로 살아가는 성장기


2014년 1월   인천시  미니 신도시로 이사를 하였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과의 시간이 펼쳐졌다.

평화로웠다.  

친정엄마와 40분 거리로 떨어져 나온 것 빼고는 아이들 키우기 너무 좋은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 조용했던  한적한 동네가 시끌시끌해졌다.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해당 지역  어린이집에서 부실급식과 학대 한 사실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당시 상태 안 좋은 계란을 가지고  찜을 하기 위해 비닐봉지에 담아 그대로 쪄내어 위생과 아이들 급식 부실 문제와, cctv  사각지대에서의 학대로  이슈화 되었다.)


하.. 어딜 가든 똑같네. 지긋지긋하다.


어딜 가든 불의를 보고 참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본성일까,

그런 사례를 많이 보고 들었던 과거 보육교사로서 쓴소리.. 현 실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지역맘 카페에 장문의 긴 글을 썼다.  

사람들은 내가 쓴 글들을 좋아해 주었다.


그 이후,

나는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지역  맘 카페에서 제법 영향력 있고 바른 소리 하는 사람으로, 지금으로 따지면 카페 인플루언서 비슷하게 자리매김하였다.

새로 이사 온 곳은 자연친화적인 도시였다.

코앞에 소래습지가 펼쳐지고  유흥가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으며 아이들만 바글바글한 동네였다.

문제는  아이들이 많다 보니 학교가 부족한 , 과밀학급 지역이었다.  


얼결에 시간 많고 할 일 없는 백수 엄마였던 나는 동네 학교추진위원회를 참여하게 되면서 온갖 오지랖을 부리고 다녔다.

2년 넘는 투쟁?으로 없던 학교 이전과 개교를 앞당기게 되는 결과도 끌어왔다.

당시.. 지역국 국회의원부터 시의원. 구의원 와 많이도 싸웠다.

학교부지를 주민동의 없이 용도 변경했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화도 났고 학교 유치가 가능한 일일까? 막막하기도 했지만,

공부하고 바른 소리 하고 반박 못할 자료 준비하고 싸우고 소리 내니  학교를 지어주더라.


나는 그렇게 원더우먼 같은 엄마가 되었다.

내 아이가 다닐 학교, 들어갈 학교를 고민하고 정치하는 엄마가 되었던 것이다.


흠 흠...


소소한 지역문제들이  차츰 해결되었고,

나는  본업(어린이집 교사)을 살려 아이들을 위한 지역 카페를 만들게 되었다.  카페 성격은 지역 아이들에게 숲 체험. 미술체험. 엄마표 미술 공유를 주로 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온갖 잡 취미가 많았던 나는 하루 24시간이 정말 짧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었다.

초4 딸아이와   8세 아들  그리고 반려견 초코를  키우면서 지역 카페 운영까지, (당시 운영하던 카페 회원은 2000명 조금 안 되는 숫자였다)


커다란 이슈없이  취미 생활하면서 지냈던 시절.

그때가 지금 생각하면 참.. 여유롭고 평화로웠던 시절 같다.


시간은 속도를 내어 어느새  시속 39km로 달리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 어느 정도 아이들도 키웠겠다.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마음먹게 되었다.

어딜 가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난! 어디든 취직할 수 있어!" 자신만만하였다.


아마 그맘때였던 것 같다.


내가 아이들 카페 운영자라면 , 동네 맘 카페 운영자인 지인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언니 책 좋아하지! 며칠 교육받고 책 선물 한 박스 받아갈래?  그냥 선물 받아가라고~"


"오~  진짜? 나 부담 없이 교육받고  책만 받는다! 뭐 하라고 하지 마! "


그렇게 나는 책 선물에 홀려서 교육을 듣고 제2의 직장을 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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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놔!  


영업의 "" 자도 모르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역할만 하던 내가 누군가를 설득하고 , 책 팔이를 하라고? 난 못해!

이건 내 일이 아니야!   그런 마음  가득했다.


그런데 교육을 들을수록 묘하게 설득되고 장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런, 낚였네. 낚였어.

그래도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선 후회 말자.

인생에서 1년 투자를 못할까, 생각했다.

적어도 이 일은 아이들 교육회사잖아?


성격상 꼼꼼하게 재보고 득이 많다 싶으면 나는 나의 판단으로  단박에 결정해버린다.

그리고 직진한다. (참.. 그런 거 보면 단순하고 도전정신 하나는 뛰어났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우리 아버지를 참 많이 닮았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다.

나는 영업을 우습게 생각했다.  고로 나는 하룻강아지였다.


나의 말솜씨와 글솜씨로 진실되게 전달하면 전부 통할 줄 알았다.  멘땅에 헤딩이 이렇게 아플 줄이야..


"내 길이 아닌가 봐요.."  하는 수렁에 빠지는 시기도 3.6.9로 찾아왔다.

그래도 칼을 뽑았으면 1년은 하자.  딱 1년만! 싶었다.

그리고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나는 팩트만 전달하는 큐레이터가 될 거야." 담백한 마음으로 상대를 만났다.

 비굴하지 않게 정보를 전달하며 내 자존심 살려가며 상대가 궁금해하는 정보를 제공하였다.

 그러자 자존감도 상승하고 갑과 을이 아닌 동등한 위치의 고객과 북큐레이터가 되었다.

(책 팔이 영업을 벗어나 정보를 전달하는 큐레이션을 하니 통하기 시작했다.)


진심은 통한다 하지 않았는가!

통하였다.  입사 후 1년이 안되어서 나에게도 감사한 고객들이 쌓이고 쌓이게 되었다.


그 사이 나는 여자 월급으로 그럭저럭 괜찮네~  하는 정도로 벌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득이 있으면 실도 있다.

내가 승승장구할수록  아이들과의 시간은 부족해지고 늦은 귀가로 집안일은 쌓이고(  쌓이는 꼴을 못 보는 성격 탓에 밤늦도록 치우고 잔뜩 골이 난 상태로 잠들기 일쑤였다)


번만큼 나간다는 말, 그때 알아챘다.

바깥일을 하니 집안일에 구멍이 생기고, 몸은 피곤해지고..

주말마다 가사도우미를 쓰는 지경까지 갔다.

배달음식에, 잦은 외식, 아이들에게 물질적 보상..


보육교사로 150 만원도 못 벌던 여자가  월 4~5백은 벌어오니 씀씀이도 커졌던 것이다.


어디에서든 부족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나를 혹사시키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다.

하지만  나는 지치기 시작하였다.


조금 덜 일하고 조금 덜 벌면 좋지 않을까?

취미 부자였던 내가 운영하던 카페도  그림도.. 봉사활동도 모든 걸 내려놓고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밤늦게 뛰는 거지?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목표지향적이라 정해진 목표에는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내 몸이 타들어가도 그 순간 성취하면 다 해결되는 것처럼 그 기분을 만끽하였다.


그런 생활을 몇 년 하던 그 시점에서 갈망 막막함. 허무함이 찾아왔다.

나를 찾고 싶다는 갈망과 매월 반복적으로  시작되는 일 들...


원더우먼의 힘의 원천이 진실이었다면 나의 힘의 원천은 자기 계발과 취미생활로 홀로 있는 시간이 정말 간절했다.

.

.

CHAPTER   5. 영업의 단맛, 쓴맛


다음 이야기 기다려주세요~^^

구독과 좋아요  관심과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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