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던 날
그날은 날씨가 맑았다. 체중계 위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내 기분도 맑았다. 배가 나온 것은 익히 아는 일이었고 언젠가 빼면 빼겠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던 어제와 같은 오늘.
7x.xkg.
네? 이게 제 몸무게라고요?
이 커다란 지구에 내 존재감을 키우며 부피를 늘려가는 건 알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안일하고도 안일한 나날이 이어지다가 드디어 내 기준으로 이게 말이 되는 숫자인가 하는 지점에 몸무게가 도달한 것이다.
나의 몸무게는 여태 평균을 내도 평범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빼고는 싶지만 딱히 나쁘지 않은 상태. 그런데 이게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까? 임신 때도 보지 못한 앞자리 숫자였다.
내 나이 38살. 40살이 되기 전에는 빼야 한다.
나는 나이나 몸무게의 앞자리 뒷자리 옆자리에 신경 쓰는 편이 아니다. 덤덤한 내가 덤덤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
"40살 넘으면 살 빼기 힘들다."
그 말 때문이었다. 어딜 가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겁을 주니 숨을 '헉'하고 들이쉬게 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물론 그들이 나를 향해 한 말은 아니고 자조였거나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텐데 이제는 그게 나에게 해당되는 말로 둔갑했다. 세뇌를 당한 것일까? 경각심이 일었다.
그래서 나는 이 살들과 이별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이 2022년 10월 1일, 하늘이 높고 예쁘던 가을의 일이었다.
결심을 하고 돌아보니 살이 급격하게 찌면서 득보다 실이 많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첫째, 고지혈증이라는 병이 생기면서 약을 먹어야 했다. 둘째, 자꾸만 더 점점 몸이 가라앉아서 무기력해지는데 일조했다. 당시 나는 우울증의 터널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기력이 다가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셋째, 내가 나를 점점 싫어하게 되었다.
살이 찌고 나는 원래도 꾸미는 걸 즐기지는 않았지만 옷은 그냥 가리개 정도의 나뭇잎 수준으로 생각하고 패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무슨 옷을 입어도 생각했던 맵시가 나오지 않는 것이 짜증 났던 것 같다.
그렇게 나를 가꾸는 일에 대충 하다 보니 자신감도 점점 하락하고 음습하게 무기력이 스며들었다. 가꾼다는 것이 화려하고 예쁘게라는 개념이 아니라 단순하게 깔끔하고 단정한 것이라 정의해도 나는 나를 가꾸는 일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흔히 말한다. 자기를 아끼고 사랑해 주라고. 물론 방법이야 많겠지만 그때의 나는 나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아서 씻겨주고 예쁜 옷 입혀주는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우울증의 습관이 남은 것이라 해도 이제는 헤쳐 나와야 했다. 다시 약을 먹기는 싫었으니까.
체중계를 노려보았다. 10년이나 내가 보살펴 주었는데 이런 결과를 내주다니 괘씸한 녀석. 그리고 제일 괘씸한 건 나를 보살피지 않고 방치한 나.
어쩐지 오늘 날이 좋더라니. 마른하늘에 떨어진 날벼락에 그날 당장 내가 시작한 일은 저녁 산책이었다. 극도로 나가지 않는 집순이인 내가 매일의 산책을 하자고 시작하다니 경이로운 일이었으나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두 다리는 걸으라고 있는 거니까.
걷기를 시작하며 결심을 했다. 건강을 찾자. 건강한 다이어트를 하자. 예전 어떤 날처럼 안 먹고 잠만 자서 몸을 망치지 말자.
맑은 가을 하늘의 건강한 기운을 받아 그렇게 다이어트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