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과 가까워지는 시간 >
인생 멘토, 홍승표 성우님
누군가를 알고 지내다 보면, 그 사람을 떠올릴 때 그 사람 특유의 이미지가 떠 오르기도 한다.
‘고집스러움’, ‘친절함’, ‘유쾌함’, ‘성실함’, ‘강한 개성’…. 등등.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로 그 사람을 단정 짓는 건 매우 위험하다. 사람은 알면 알수록 새롭고, 다채롭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안다는 것에 대해 가끔 의문이 든다. 어느 정도를 알아야, 그 사람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하고 말이다.
만난 지 십여 년이 넘는데도, 그에 대해 정말 모르겠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에 대해 조금은 알 거 같은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인연의 시작
홍 선생님과 처음 일을 하게 된 건 00 방송국에 다닐 때다. 생방송이다 보니 스케줄이 꼬이는 것도 다반사였다. 편집이 늦어지다 보면, 대본도 생방송에 임박해서 나오게 된다. 그러다보면 더빙하지 못하고, 담당 성우가 생방송 중에 즉석에서 내레이션을 읽어주는 상황도 발생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홍 선생님은 짜증 한 번 내신 적이 없으셨다. 그리곤, 큐 사인과 함께 특유의 부드럽게 밝은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읽어주셨다. 홍 선생님이 내레이션을 읽어주시면 그제야 편집본은 생명력을 찾은 듯 완성이 되었다. 마치, 숨을 불어 넣은 듯.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있는데, 정말로 자기 일을 좋아하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홍선생님도 그런 분이었다.
그리고, 때로 어떤 사람의 말은 오래도록 각인이 되어 머릿속을 맴돈다. 홍 선생님의 말씀도 그랬다. 나는 칭찬 받는 것이 다소 어색한 유형인데, 어느 날 홍 선생님이 나에게 ‘장작가는 주위를 참 밝게 해주는 사람이네요.’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말씀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많은 칭찬 중 그 말은 그토록 잊혀지지 않았을까? 여타 칭찬과는 다른 칭찬이었는데, 난 그 말이 참 좋았던 거 같다. (돌이켜보니, 그 말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와 닮은 지점이 있었다.)
거기다 선생님의 진심이 느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선생님과 다시 일을 하고 있다. 제작비가 적어 성우 페이를 많이 드릴 수 없다는 사정을 말씀드렸는데, 선생님께선 흔쾌히 자신이 직접 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몇 년째 다시 선생님과 일하며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성우의 꿈, 삶의 방향성
홍 선생님은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 앞에 노래를 부른 후 목소리가 좋다는 칭찬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하셨다. 모델 장윤주 또한 선생님이 다리가 예쁘다며 모델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누군가의 한마디가 때론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곤 한다. 결정적으로 성우가 되기로 결심한건 건 군대 시절이라고 한다.
“ 군대 시절에 우연히 참가한 웅변대회와 연극단에 선발되어 “구타 근절에 관한 연극을 했었는데, 그 결과로 상과 표창장을 받으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사단장과 연대장상을 받았었죠. 연극을 하면서 나는 그 극을 이끄는 내레이터가 되어 목소리를 우리 군 장병 전체에게 들려주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인정해 준다는 것을 느끼고, 목소리가 나의 무기이자 자산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경험이 저에게 성우라는 직업에 대한 꿈을 심어주었고, 제대 후 성우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하게 되었어요.”
홍 선생님은 1996년 대교방송 2기 공채 성우로 데뷔했다. (투니버스도 1차 합격했지만, 고민 끝 대교방송에 입사했다.)2024년 기준으로 성우 활동을 시작한 지 약 28년이 된 것이다. 성우는 목소리 하나로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하는 직업이다. 그만큼 쉽지 않지만, 한 편으론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홍 선생님은 어린 시절 만화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만화책을 보며 다양한 목소리를 흉내 내는 연습을 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빌드업해 온 축적의 시간이 성우의 길을 걷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 성우는 적혀있는 글에 감정을 담아 목소리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이 있어요. 그러면 2D의 세상에서 3D의 세상으로 변하는 거예요. 공간이 없는데 공간이 만들어지고, 냄새도 없는데 냄새가 나는 것처럼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어요. 글의 감정을, 시간을, 공간을, 인물을 나의 목소리로 표현함으로써 듣는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죠. 이 점이 성우라는 직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성우로서 목소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도울 기회를 가지게 되어 큰 보람을 느낍니다. 목소리로 봉사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성우라는 직업의 큰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나만을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또 다른 이를 위한 목소리가 되니까요”
홍 선생님은 보고 있으면, ‘성우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 일을 전문적으로 해내고, 거기서 더 나아가 분야를 확장해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가장 염두해 둔 건, 사회적 책임과 기여였다.
개인의 성공보다 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삶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그러한 진지한 고민은 삶의 방향성을 확고히 하는데, 많은 작용을 했을 것이다.
성우 외에도 홍 선생님은 낭독 봉사를 하신다. 시각장애인이나 어르신들께 책 낭독을 통해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목소리 트레이닝 강사로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찾는 데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하고 계시다. 목소리와 발성 트레이닝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최근,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일은 ‘우리말 소리 복원 프로젝트’다. ‘우리말 소리 복원 프로젝트’는 우리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한 활동 중 하나로 이를 통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또한, 행사와 공연의 소리를 바꾸는 기획자로 활동하고 계시다. 성우다 보니 행사나 공연 사회를 부탁받는 일도 많은데 ‘더 소리 기획’이라는 회사를 차려 직접 기획에 참여하며 활발하게 활동중이시다.
아이디어의 원천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삶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보인다.
늘 세상일에 관심을 두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일까. 선생님은 늘 그대로이신 듯 젊어 보이신다. 선생님의 이러한 아이디어와 삶에 대한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 나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예를 들면 오는 11월에 남양주에서 겨울왕국 성우들과 함께하는 갈라 콘서트를 진행하는데요. 이것은 제가 성우가 아니면 생각해 낼 수 없는 거죠. 성우로서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얻은 경험들이 새로운 사업 구상의 밑바탕이 됩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사람들이 어떤 목소리에 반응하는지, 어떤 목소리가 감동을 주는지를 알게 되죠. 또한, 문화와 트렌드를 항상 주시합니다. 아무래도 기획의 일도 하다 보니 현재 사회에서 유행하는 것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들을 관찰하면서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감성적인 콘텐츠나 개인 맞춤형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작은 일상에서의 행복과 의미를 찾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소중히 여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그 속에서 다양한 영감도 떠 오른다고 한다.
실제로, 홍 선생님을 만나면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시고, 좋은 아이디어나 정보가 있을 땐 언제든 말씀해 주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선생님처럼 늙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본다. 도전과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은 사실 쉬운 것이 아니다. 용기도 필요하며, 자신을 인정하고 객관화하는 자세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의 삶의 모토는 ‘목소리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성우로서의 직업적인 목표를 넘어서, 제 목소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도움을 주며,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목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하며, 때로는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고 믿습니다.”
선생님과 대화하다 보면, 또 한 가지.
일 얘기 외에도, 가족 얘기를 할 때 행복해 보이신다.
이제야 알게 된 거지만, 선생님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오셨다고 한다. 그러한 결핍 때문이었을까.
선생님은 온전한 가족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신다. 다행히도, 선생님은 그 꿈을 이루셨다.
형제가 많은 아내를 만나 북적거리는 처가에서 사랑받는 사위가 되었고, 자녀 셋을 낳아 때론 친구 같은 다정한 아버지가 되셨다. 지금도 가족의 격려와 지지는 선생님께 큰 위로와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말씀하신다.
앞으로의 꿈
어느덧 선생님도 50대, 나 또한 50대에 접어드니 많은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젊은 시절엔 자존감이 낮았다고 하신다. 하지만, 성우가 되셨고, 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오셨다.
그런 선생님이기에 선생님은 또 어떤 꿈을 꾸고 계실지 궁금해졌다. 늘 소년처럼 꿈꾸고 도전하고, 세상에 호기심을 갖는 선생님이기에 더욱 궁금했는데, 역시나, 선생님은 많은 꿈을 꾸고 계셨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성우가 되는 것.
시나 수필을 통해 작가로 도전하는 것.
목소리 교육과 봉사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
우리말 소리 복원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
배우의 꿈을 키워나가는 것...
이처럼, 선생님의 버킷리스트엔 소소하고 때로는 원대한 꿈들로 가득하다.
“ 저는 목소리 교육과 봉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꿈입니다. 목소리 트레이닝 강사로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목소리의 중요성과 발성 기술을 전달하고 싶어요. 특히,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이들을 위한 봉사 활동을 더욱 확대하여, 목소리를 통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최근에도 선생님은 전북맹학교 시각장애인 학생들과 함께하는 성우 교실 등, 자신이 필요한 곳을 스스로 찾아내고, 문을 두드리고, 먼저 손을 내밀며 목소리로 세상과 소통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을 만끽하고 계시다.
70대가 되신, 80대가 되신 홍 선생님을 떠올려본다.
선생님은 나이에 연연하지 않으며, 지금처럼 어디에 계시든 반짝이실 것 같다. 나 자신만을 위한 꿈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선생님이기에, 매 순간 어디서든 선한 영향을 주며 존재하실 것만 같다.
그런 선생님과 소중한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에 매우 감사하며, 선생님처럼 나 또한 누군가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며,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어른으로 꾸준히 성장해 나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