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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로미의 김정훈 Mar 06. 2024

김신지를 좋아하세요

평일도 인생이니까

책을 소개하기 전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 한 편 읽으면서 시작해 볼까요? 



봄의 정원으로 오라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잘랄루딘 루미 



여러분은 여행 좋아하시나요? 저는 여행 자체엔 별로 감흥이 없습니다. 여행을 가도 누구랑 가느냐가 중요하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아무래도 중요합니다. 그게 행불행을 결정하더군요. 


사실 오늘 할 이야기는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아닙니다. 여행. 여행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요. 더 정확히는 여행을 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여행을 별로 다녀본 적이 없는데요. 이렇게 말하면 주변에선 자꾸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행 자주 다녀. 너 나중에 후회한다."

"너도 여행 가봐. 진짜 좋아."

"네가 여행을 안 가는 이유는 여행을 안 가서야." 

"여행 한 번 가려고 이렇게 버티고 모은다 내가." 


여행. 좋겠죠. 저도 여행 좋았습니다. 그런데 막 매번 찾아다닐 정도로 너무 사랑스럽고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누린 행복과는 분명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니 이런 이야기도 떠오르네요. 



남쪽 바다의 제왕 숙, 북쪽 바다의 임금 홀, 중앙 지역의 제왕 혼돈이 살고 있었다. 숙과 홀은 종종 혼돈의 영지를 찾아 함께 어울리곤 하였는데, 혼돈은 매번 이들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하루는 숙과 홀이 혼돈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함께 방법을 상의하였다. “사람에 몸에는 눈·코·입·귀의 일곱 구멍이 나 있어서 보고 듣고 먹고 숨 쉴 수 있는데, 유독 혼돈만 구멍이 없지. 우리가 그에게 구멍을 뚫어주면 어떨까?”

그렇게 상의하고는 날마다 한 개씩 구멍을 뚫어주었다. 그런데 일곱 번째 되는 날 구멍을 다 뚫자, 혼돈은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다. - <장자-내편>, 장자 지음



친구들은 여행이 그렇게도 좋았나 봅니다. 그래서 자꾸만 여행의 맛을 알려줘요. 아니, 맛만 알려주면 좋은데 아주 구멍을 뚫어버립니다. 저는 친구들의 마음을 참으로 공감하고 이해합니다. 맛집 발견하면 막 남들한테 소개해주고 싶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저는 여행을 가고 싶을 때만 가고 싶은 사람으로서, 이 모습이 참으로 웃깁니다. 왜냐고요? 



예를 들어, 네 명의 사람이 어떤 중식당에 갔다고 해봅시다. 그중 한 명이 짬뽕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짬뽕을 먹으라고, 짬뽕을 먹어야만 한다면서 자신이 먹은 짬뽕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고, 다른 음식을 시키려 들면 제지하기 바쁩니다. '아니 진짜 짬뽕 먹어야 한다니까. 네가 짬뽕을 시키지 않은 이유는 짬뽕을 많이 먹어보지 않았기 때문이야.' 



우린 이런 사람이 매너가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짬뽕이 잘못했나요? 아닙니다. 짬뽕은 짬뽕 그대로 존재합니다. 문제는 내가 좋다는 걸 자꾸만 억지로 남에게 강요하는 거죠. 강요가 왜 잘못된 걸까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재하도록 놔두질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놔두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혼돈처럼 그만 죽어버리고 마는 거죠. 사랑은 강요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걸 원하는 게 사랑이죠. 상대방을 정말 사랑하고 짬뽕을 정말 사랑한다면 상대방이 먹고 싶은 대로 두고, 나는 짬뽕을 먹으면 되는 겁니다. 



우리 사회는 음식 강요가 잘못됐다는 걸 알지만, 어쩐지 다른 일들은 강요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게 뭐가 있을까요?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술, 여행, 사업, 자퇴, 취업, 투자, 자기계발, 결혼 등등이 있겠네요. 아, 근데 결혼은 색깔이 좀 다르려나요. 보통 결혼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왜 결혼을 안 하냐고 하는 거 같으니까요. . .



그래요. 우린 남들이 해야만 한다고 말한 것에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니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절대 잘못된 게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사회가 그걸 '잉여롭다'라고 표현해도 말입니다. 내가 지금 하고 싶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자신이 진심으로 만족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진실하다면 말입니다. 만약 그 정도로 진실하다면 우린 절대 낭비 없이 나다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생애 주기’라는 게 정해져 있다고 믿는 세상에서 남들과 보조를 맞추느라, 사람들이 자기 나이를 사는 데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들과 다른 속도는 결코 ‘뒤처지는’ 일이 아니니까.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좀 늦게 갈 수도(안 갈 수도) 있는 거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느라 혹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 가느라 졸업이 늦어질 수도 있는 거다. ‘그 좋은 나이에’ 세상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들 다 밀어 둔 채로, 자아도 찾지 않고, 어학 공부도 하지 않고, 여행도 하지 않고, 경험 같은 거 쌓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거다. 그건 결코 버리는 시간이 아니다. 낭비도 아니다. 그냥 내가 내 마음의 흐름에 따라 내 시간을 사는 일일 뿐이다.                


        우리는 어떤 나이에도 늦을 수 없다.

        삶의 어떤 시간에도 실은 늦게 도착한 적 없다.      

 

        지금에 이르러 내가 겨우 이해한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내 나이를 똑바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 <평일도 인생이니까>, 김신지 


(사진 출처: 알라딘)


이게 단순히 위로의 말이다, 속 편한 생각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니, 아주 많죠. 그 사람들은 그렇게 살게 놔두면 됩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은 낭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우리는 우리대로 가는 겁니다. 어떤 행동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게 무엇이든지 상대방이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사랑입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 조언은 충분히 무시해도 좋습니다. 



그 사람들이야 바쁘게 사는 게 마음이 편한가 보죠 뭐. 근데요, 정말 이건, 정말 괜히 심술 아닌 심술이 나서 하는 말인데요. 그 사람들 정말 그게 마음이 편한 거 맞습니까? 자기들도 그게 옳지 않다는 건 알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자기 최면을 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자기 사랑이 부족한 건 아닐까요? 아무것도 안 하면 뒤처진다는 느낌보다 그냥 앞서나간다는 느낌이 편하니까, 도망칠 곳이 없으니까 사는 거 아닙니까? 잠깐 심술이었고요.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뭔가를 애쓰는 시간이야말로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뭐가 진실이고 진리인지는 자신만이 알겠죠. 어떤 사람들은 깨달음을 경험하고 모든 시간이 동시에 흐른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니까 애써서 열심히 살면 원하는 미래로 더 빨리 가는 게 아니라, 사실 그냥 동시에 흐르고 있다는 거죠. 그럼 애쓸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지금부터 동시에 흐른다는 그 미래처럼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 미래가 더 빨리 오는 거 아닙니까? 이거 애쓸 필요 있을까요?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면 뭘 하고 싶어 하나요? 누리고 싶어 하겠죠. 즐거움뿐인 인생. 그거, 지금 하면 안 됩니까? 동시에 흐르고 있는 그 미래, 지금 살면 안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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