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해보았다면 과거를 떠올려보라. 종종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면 그때 왜 싸우고 화를 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저 싸웠다는 사실, 화를 냈다는 감정만이 기억이 남는다. 우리는 종종 나중에 떠올리면 기억도 나지 않을 사소한 일에 대해 지나친 감정 소모를 한다.
감정과 관련하여 나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준 경험은 2020년 7월에 찾아왔다. 국방부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연초부터 휴가를 전면 통제했고 여름부터 휴가를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몇 개월 만에 휴가를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한편으로 아쉽기도 했다. 휴가를 모으면 나중에 한 번에 쓸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휴가가 소모된다는 사실때문이다. 휴가를 나가기 전에는 조금 꺼림칙했지만 나는 그때 이미 몸과 감정이 모두 지쳐있었다.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났고 감정 조절이 힘들었다. 휴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휴가를 나오자마자 대학교에 다닐 때 쓰던 자취방으로 가서 짐을 정리했다. 휴가를 나온 날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대 최고선임이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취방에 짐을 풀자마자 전역한 선임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통화를 하며 형은 앞으로 내 절반의 군 생활을 바꿔줄 말을 했다.
“정훈아, 나는 군대를 안 갔다 온 거 같아. 입대 전날에서 바로 건너뛰고 지금 시점으로 온 느낌이야. 군 생활 다 까먹었어”
나는 믿지 않았다. 오히려 기가 찼다. 이 사람이 나를 놀리나.
“에이, 그래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걸 다 까먹을 수가 있나.”
형은 처음에는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일주일 정도가 지나니까 다 까먹었다고 말했다. 마치 시간 이동을 한 느낌이라며 말이다. 나는 끝까지 믿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형의 말을 잊었다. 재미난 휴가를 보내다 보니 까먹게 됐다.
며칠 뒤 휴가를 나온 지 9일이 지난 저녁이었다. 나는 집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고 있었다. 저녁밥을 먹으러 오라는 부모님의 호출에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내가 이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음을 느꼈다. 이건 마치 고등학생 때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나를 부르는 저녁의 풍경이었다. 나는 문득 사회에 완전히 적응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치 입대 전에서 바로 지금 이 시점으로 건너뛴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난 9개월이 순간적으로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군 생활을 떠올리려 하니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군 생활이었는데! 나는 이게 바로 형이 말한 그 느낌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눈치챘다.
바로 다음 날, 나는 다시 한번 그 느낌을 상기해보려고 했다. 그러자 이번엔 조금 다르게 기억이 다가왔다. 분명 9개월을 건너뛴 듯한 느낌은 맞았다. 하지만 임팩트는 없었다. 그야말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어제의 그 충격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이번엔 모든 감정들이 다 기억이 났다. 그 뒤로 사건을 떠올리려고 하면 드문드문 기억은 났지만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은 명확했다. 감정을 느낀 순간으로 돌아가 보면 사건은 기억나지 않지만 감정만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행복한 기억은 분명 없었다. 행복한 순간이 거의 없기도 했지만 행복한 감정들은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씻겨져 내려간 모양이었다. 어떤 장소에서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지만 기억이 났다. 내가 분노하고 짜증내고 화냈던 그 ‘감정’들만 기억이 났다. 무슨 이유로 화를 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왜 짜증을 내고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단지 내가 ‘화를 냈다’는 감정의 기억만 남아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만약 전역하고 나서도 이와 똑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감정 소모하지는 말자. 그럼 나중에 이때를 떠올리면 감정도 기억나지 않으리라.’ 나는 그렇게 휴가를 복귀했고, 실제로 전역을 할 때까지 기억에 남는 감정 소모가 손에 꼽도록 지냈다. 아니, 오히려 행복한 감정의 기억이 많이 남았다. 덕분에 7월 이전의 기억은 캄캄하고 칠흑 같다면 7월 이후의 기억은 나름 아름답다. 그 이후로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감정 소모의 선을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중에 기억이 날 일도 아닌데 감정 소모를 했다가는 그 감정만 기억이 남을 테니까.
감정 소모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감정 소모에도 여러 가지 분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래서 ‘감정 노동’과 ‘감정 소비’를 구분했다. 과거를 돌이켜보건대 나는 생산적인 감정 노동을 거쳐야 어떤 깨달음이나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었음을 경험했다. 반대로 감정 노동을 하지 않으면 그 일이 별로 기억도 나지 않고 얻는 것도 없었다. 한데 감정 소비는 그야말로 꾸리꾸리한 감정만 기억이 난다. 나중에 왜 감정 소비를 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말이다.
인간관계, 일, 공부, 놀이, 사소한 그 어떤 것이라도 감정 노동을 하며 정말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고 생각한 그 일들이 바로 다음 일이나 그 이후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양분이 됐다. 그렇지 않은 일들은 감정도, 일도 기억나지 않고 그렇게 묻혔다. 과거를 스토리텔링하면서 더 뼈저리게 느꼈다. 먼 과거 이야기는 아예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 노동을 해서 그 당시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그 이후에 나에게 도움이 된 일들은 분명히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 일들을 나와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과거를 떠올리며 그 순간 내가 그렇게 감정 소비를 했더랬지라고 느끼긴 했지만 왜 그때 힘들었는지 떠올리기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다. 감정 소비는 나를 아프게 했지만 그렇다고 얻은 건 없었다. 우리는 감정 노동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만 감정 노동과 감정 소비는 구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감정 노동은 불필요하고 적게 할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감정 소비에 한해 그렇다. 감정 노동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 얻지 못하고 일 자체에 대한 노하우도 잘 늘지 않는다.
뭘 해도 바뀌지 않는 일에 화를 내는 그 순간들은 감정 소비다. 혹시 문지방에 발을 찧였다고 진심으로 화를 내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그 감정 소모는 모조리 감정 소비다. 문지방을 없애버릴 게 아니라면 감정을 쏟는다고 달라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약속 날에 비가 온다고 짜증을 낸 적이 있는가? 감정 소비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 내 영향력에서 벗어난 일에 쏟는 감정은 감정 소비다.
나는 그러한 점에서 감정 노동을 어디에 쏟아부을지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 중 하나라고 믿게 되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감정 노동을 피하지 않는다. 단, 각각의 일에 감정을 얼마나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안다. 그리고 분명 ‘무엇을 해야 할지’ 찾는 사람에게 감정 노동은 불가피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찾을 때 필요한 것은 감정 노동이다. 천직이 나 자신과 일에 대한 조화라고 했듯이, 감정 노동을 거쳐야만 일 자체도 알고 나 자신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자발성과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감정 노동은 이 질문과 어울린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오고 한 공부는 감정 노동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뭐라도 하긴 해야 하니까 공부를 했다. 그런 와중에 절대 감정을 낭비하지 않으려 애썼다. 공부에 쓰는 감정이 아까웠다. 그 때문에 다른 불필요한 고통이 생겨났고 나는 그 고통으로 인해 숱한 감정 소모를 겪었다. 항상 고통을 회피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와서 공부와 고통에 쏟은 감정은 감정 소비에 가까웠다.
반대로 고등학생 때 한 공부는 감정 노동이었다. 비록 남의 가치관에 따라 한 공부였지만 나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공부에 임했다. 내가 한 공부는 남들이 내게 준 의무였고 나 역시 나의 의무라고 착각했지만 나는 분명 스스로 그 게임에 뛰어들었다. 관점에 따라 누가 하라고 해서 공부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 나는 누가 시켜서 한 공부가 아니었다. 나의 결심으로 온전히 뛰어든 나의 게임이었다. 나는 감정 노동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끝까지 할 수 있었고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감정 노동을 많이 한 덕분에 더 깊은 구덩이에 빠질 수 있었다. 만약 감정 노동을 온전히 쏟아붓지 않았다면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가늘고 길게 고통받았을 것이다. 지혜가 부족했기에 방향을 잘못 설정했다고 볼 수 있지만 감정 노동 덕분에 훗날 방향을 전환하는 데 도움을 얻었다. 또한 그 안에서도 나는 많은 의미를 얻었다.
그저 감정 소비를 하며 살아왔다면 나는 절대 많은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온전한 책임을 지고 자발적으로 인생에 뛰어들겠다 결심하며 감정 노동을 한다면 자발성과 자아를 놓지 않으려는 근육이 생긴다. 그리고 반드시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재료가 딸려 나온다. 그 일이 나중에 나에게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라도 ‘나’라는 사람은 감정 노동에 의해 한층 발전한다.
이러한 사실에서 더 나아가자면 나다운 길과 나답지 않은 길을 애써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다소 찝찝한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구분은 중요하지만 어떤 것은 옳고, 어떤 것은 그르다고 단정 지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나답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고 후에 깨달아도 자발적으로 그 길에 뛰어들었다면 그 길이 나에게 필요한 길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이 과연 ‘옳지 않은’ 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시작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에게 ‘어떤 길인가?’보다 중요한 문제는 ‘자발성을 가지고 행동하느냐’이다. 만약 판단력이 부족할 때 이를 구분하려고 하면 오히려 불확실성만 생겨서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판단력이 생길 때까지 일단 남의 가치관과 나의 가치관을 과도하게 구분하려 하지 말고 자발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일단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육을 길러야 한다. 지금 당장은 어떤 길에 서 있는가보다 내가 어떤 길에 서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기에 있다.
자유란 무엇인가
19살의 여름, 나는 자유를 찾아 떠나는 ‘도비’였다. 20살이 되면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아침에 학교에 갈 때마다 지금만 참자고 생각했다. 수능 시험이 끝나고 몇 달간은 그야말로 자유였다. 이게 자유의 맛인가 싶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자유였다. 2월까지는 그랬다.
3월이 되고 대학교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자유에서 허덕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자유가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끔찍한 형벌처럼 느껴졌다. 자유에 깔려 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감정 중 하나는 외로움과 고독함이었다. 나는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다.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친구가 필요했다. 자유는 그만큼 나에게 지독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나 나는 자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천직을 찾아서 매일 그 일을 하는 삶이 자유로운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직에 대해 정의하고 나니 ‘천직을 찾는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뭘 해야 할지 알기 위해서는 아무튼 뭐라도 해야 하고 그 뭐라도 한 일은 분명 투박할 것이 분명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물으며 항상 자유만을 꿈꾸면 자유롭지 않은 시기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돼서 과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답하는 과정은 기대보다 자유롭지 않다. 즉, 자유롭지 않은 시기가 분명히 있다.
우리는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깔려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자유는 분명한 의미에서 자유가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자유는 ‘자유’라고만 불리는 망망대해다. 과연 망망대해에 낙오된 여행자가 자신이 자유롭다고 말할까?
천직과 마찬가지로 자유 역시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내가 지금 정의하고 있는 자유는 스토아 철학자들의 지혜를 빌려 쓰고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나에게 찾아온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거나 피할 수 없는 일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 일에 어떤 반응을 할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바로 그 반응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자유는 바로 이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질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유를 어디 가서 찾지 않고 내 안에서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자유를 정의하니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유롭지 않은 시기를 견디며 근육을 쌓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중간 단계를 건너뛸 수 없음을 깨달았다. 자유의 단계에 가기 위해서는 무거운 부자유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망망대해는 사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질을 갖추기 위한 부자유의 단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