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야 할지 찾는 내내 나는 내 인생에게 기대를 걸어왔다. 삶이 나에게 언젠가 기막힌 선물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는 하루가 반복되니 점점 인생이 답답하고 막막해졌다. 매일이 공허하고 불안했다. 내 삶이 도저히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내 삶은 무슨 의미가 있냐며 내 인생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러다 2020년 3월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었다. 나는 이 책을 읽자마자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내 삶에 대한 수많은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그 당시에는 그저 대단해 보이지만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구절이 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는다고? 무슨 질문? 나는 아무런 질문도 받고 있지 않은데. 나는 항상 나와 내 삶을 동일한 존재로 취급했는데 이 문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이 구절이 이해가 안 되었지만 이해만 할 수 있다면 엄청난 깨달음을 얻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는 조금 이해한다. 내가 지금까지 겪은 경험들과 수많은 시간 동안 생각한 재료들을 통해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아주 조금은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판단력이다. 나는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질문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삶이 나에게 매순간마다 지금 순간의 의미는 무엇이냐고 묻는다. 내가 삶에게 너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게 아니라!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라고 내가 묻는 게 아니라 삶이 나에게 묻고 있다. 나는 대답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내가 나의 인생에게 살고 싶은 삶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삶이 나에게 뭘 기대하는지 알아내야 했다. 지금 당장 어떤 선택을 하길 기대하고 있었다. '삶은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길래 이런 시련과 이런 상황을 나에게 가져다주었을까. 내가 어떤 행동으로 대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내 판단에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때마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들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생각해본다. 인생이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하기를 기대하는지 고민해본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공감의 재료로 고민해본 끝에 행동으로 대답한다.
각자가 각각의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는가는 다르다. 다만 각각의 상황은 진정한 의미가 있다. 물론 죽을 때까지 우리는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그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 항상 삶이 묻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지혜, 즉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
나는 인생에게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지 않는다. 인생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고민한다. 인생은 나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한 도움을 주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인생은 내가 삶의 의미를 잃고 공허함을 느끼는 모든 이들을 위한 인생을 살아보는 건 어떠냐고 묻고 있었다. 나는 그 대답으로 지금 행동하고 있다.
나는 궁극적으로 이것이 우리가 묻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대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삶이 나에게 묻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것. 삶이 나에게 기대하는 행동을 하는 것.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내가 아니라 인생이 나에게 묻는 것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멈추고 대답을 하기 위해 세상에 눈을 돌려라. 우리는 행동으로 답해야 한다.
빅터 프랭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내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
판단력을 가진 개인은 대답해볼 수 있다. 유일무이한 경험을 해왔고 그것을 곱씹어왔기 때문에 나만의 ‘공감선’이 있고 경험의 재료가 있다. 따라서 ‘내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생각의 재료들이 있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나의 경험과 경험에 대한 나만의 토론 그리고 공감. 그것이 있다면 우리는 모두 ‘만약 내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에 대답하는 날이 올 수 있다.
이 일은 생계 수단만을 위한 ‘무엇’이 아니다. 생계, 사랑, 봉사, 일, 자연 등 어떤 것이 될 수 있다. 물론 사회초년생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무엇을 하며 돈을 벌지가 급한데 내가 찾는 천직은 너무 먼 이야기고 이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바쁜데 이럴 시간이 있을까? 라고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천직은 먼 이야기의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나도 모르게 발견하는 데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인생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인생에게 행동으로 대답하면서 훗날 답이 나오도록 기다리는 질문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말고 나에게 묻는 인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그동안 너무 오지랖을 부렸다. 너무 주제넘은 조언을 준 거 같아 부끄럽다. 그럼에도 강조하기 위해 다시 말하자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각자의 철학, 각자의 방식을 발견했으면 한다. 그저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찾아가며 겪은 경험과 생각, 그리고 그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깨달은 지혜를 옮겨놨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청년들이 나의 글을 읽으며 조금의 도움이라도 받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