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칠 땐 멀리 보세요

01. 모든 게 멈춰버린 시대, 그래도 길은 여전히 꿈을 꿉니다

by 불꽃바람

세계일주의 첫 여행지 태국에서 작은 섬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의 일이다.


잔잔했던 바다에 갑자기 바람이 거세지며 파도가 높아졌다.


배는 심하게 출렁거렸고, 겁에 질린 사람들은 바닥으로 납작 엎드렸다.


그 때, 선장이 소리쳤다.


“파도가 칠 때는 멀리 보세요. 가까이 보면 메스껍습니다.”


벽에 걸린 커다란 달력에는 단 두 장만이 남아있다. 2020년을 시작하면서 어느 누구도 지금의 이 상황을 상상했던 이는 없었으리라.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의 삶과 꿈이 무너졌다. 나 역시 그러하다. 올해를 돌아보면 무엇 하나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 일상은 답답하고 미래는 불안하다.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시기다. 이런 때일수록 시선을 멀리 두어야하는데, 지금도 나는 그날 그 바다에서처럼 갑판에 머리를 쳐박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고개를 들어야한다. 숨을 길게 내뱉어 울렁이는 속을 진정시켜야 한다. 시선을 멀리 두어야 이 고난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여행 이야기를 끄집어내려 한다.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이 얼추 비슷해졌다고 생각될 즈음, 나는 길을 떠났었다. 가슴 시린 풍경 앞으로 다가서고자 애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낯선 이야기를 엿듣고자 했다. 그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더 멀리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길 위에서 끼적여놓았던 사유와 감성들을 모아 격랑에 흔들리는 나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자 한다. 이 글을 우연히 읽게 될 당신에게도 조금이나마 공감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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