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다, 지우다, 남기다

04. 우리가 우리 안의 아주 작은 부분만 경험할 수 있다면...

by 불꽃바람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 中



혼자 여행을 하면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데 사진기를 돌려받고 나서 내 의도대로 찍히지 않은 사진을 보며 실망했던 적이 많았다. 사물이 원했던 구도로 잡히지 않기도 하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일을 몇 차례 겪은 후, 나는 ‘사진 찍는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와 같은 시공간에 머무는 저 사람은 뷰파인더에 어떤 이미지를 담을까? 무엇을 중심에 놓고, 구도는 어떻게 잡으며, 순간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어떤 효과를 쓸까.


눈앞의 광경을 모두 담을 수는 없으니 찍는다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선택이다. 그리고 찍어 놓은 사진 중에서 추려내고 지우는 작업은 또 다른 선택이 된다. 찍기만 하고 귀찮다고 내버려두면 정작 필요한 사진을 건질 수 없으니 생략할 수 없는 과정이다. 때론 버리는 일이 무언가를 취하는 일보다 더 힘이 든다.


사진기를 들여다보다가 지나간 인생의 풍경 속에서 내가 선택했던 것들과 선택하지 않았던 것들을 떠올려본다. 기억하고자 애쓴 것과 망각하고자 애쓴 것을 더듬어본다.


살 수 있었으나 살지 않은 날들과,

살고자 했으나 그렇게 살지 못한 날들과,

살았으나 살지 않은 것처럼 버려진 날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그렇게 지금 남겨져 있는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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