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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꽃바람 Oct 15. 2021

이것이 의리다, 파란 눈의 의열단원

09. 한국의 독립을 위해 함께 싸운 멋진 친구 마자르

영화 <밀정>의 한 장면

열차 특실에 귀공자처럼 양복을 빼어 입은 서양인 남자가 앉았습니다. 그의 옆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아리따운 동양 여인도 있네요. 하인들은 커다란 짐 상자를 들고 일반실에 앉아 있습니다. 어디 먼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모양이군요.     


영화 <밀정>에서 의열단원들이 각각 변장을 하고 폭탄을 숨겨 열차에 올라탄 장면입니다. 그들을 쫓던 일제 형사들도 심어놓은 밀정의 첩보를 받고 급히 열차에 올랐습니다. 식당 칸에서 한바탕 총격전이 벌어지고 형사들이 제거됩니다. 이제 남은 건 단원 안에 섞여있는 밀정을 색출해내는 일. 거사를 책임진 우진은 오랜 친구였던 회령이 밀정이라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승산 없는 이 짓을 그만 하고 싶다.’ ‘너희들을 다 밀고할 수 있었지만 친구이고 가족처럼 생각했기에 그러지 않았다.’ 회령은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설마 친구인 나를 쏠 거냐고 우진에게 묻습니다. 그때 화물칸의 문을 열고, 저벅저벅 걸어와 총을 겨누는 사내.     


“난 너의 친구도 아니고, 너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도 없으니까.”     
영화 <밀정>에서 밀정 회령을 향해 총을 겨눈 마자르

헝가리 출신 폭탄제조 전문가로 묘사되는 파란 눈의 의열단원 마자르. 영화에서는 특별히 이름이 언급되지 않지만, 그를 빼고는 영화 <밀정>이 모티브로 삼았던 1923년 의열단 2차 암살폭탄계획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대로 된 폭탄만 만들 수 있다면...’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의 머릿속은 복잡했습니다. 여러 차례 단원들을 보내 조선총독부와 경찰서 등 식민통치기관에 폭탄의거를 감행했지만, 폭탄의 성능이 떨어져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기 때문이죠.     


당시 중국 상하이와 텐진에는 유럽에서 건너온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선교사나 외교관, 군인, 무역상들이었지만 간혹 폭탄제조법을 아는 퇴역군인이나 기술자들도 있었습니다. 약산은 폭탄 기술자 몇몇을 접촉하지만 그들이 만든 폭탄도 기존의 것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애를 태우던 김원봉은 1921년 초순에 독립운동가 이태준을 만나게 됩니다. 그에게서 유능한 폭탄제조 전문가 마자르를 데려 오겠다는 약속을 받습니다.      




그러면 김원봉과 마자르의 연결고리인 이태준 지사(志士)가 누구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이태준은 1883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경성세브란스 의학교에 진학하여 1911년에 졸업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의학공부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에도 관심이 컸던 그는 중국으로 망명합니다. 중국에서 의사 생활과 항일투쟁을 병행하던 이태준은 1914년에 몽골 고륜으로 떠납니다. 독립운동가이며 처삼촌이기도 한 김규식 선생의 권유 때문이었죠. 김규식은 만주보다 일제의 탄압이 덜한 몽골 초원에 독립군을 양성하는 군관학교를 설립하자고 이태준에게 제안했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서 오기로 했던 군자금에 문제가 생겨 군관학교 설립은 무산됩니다. 그러나 이태준은 몽골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남았습니다. ‘동의의국’이라는 서양식 병원을 열었죠. 유목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당시 몽골인들은 각종 전염병으로 신음했습니다. 특히 성병인 매독으로 크게 고통 받고 있었죠. 그의 헌신적인 치료 덕분에 많은 몽골인들이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태준의 명성은 몽골의 마지막 황제 보그트칸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그는 황제의 주치의로 임명되었습니다. 매독을 퇴치시킨 공로로 훈장까지 받습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이태준은 많은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 돈을 만주와 연해주 및 중국본토로 보내 독립운동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병원은 중국과 몽골, 러시아에 흩어져 활동하던 독립투사들의 연락 거점이자 군자금의 유통경로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태준 지사(좌)와 몽골 울란바트로에 있는 이태준 기념공원 (우)

1920년 가을, 러시아 혁명정부는 임시정부에 200만 루블의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이 자금을 모스크바부터 상하이까지 운반하는 일을 이태준이 맡았습니다. 1921년 초, 임무를 마치고 몽골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베이징에 들렀고, 이때 지인의 소개로 김원봉을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독립과 혁명에 대한 서로의 열정에 공감했고, 이태준은 그 자리에서 의열단에 가입합니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의 정세는 매우 불안했습니다. 혁명정부에 반대하는 백군이 여기저기서 봉기했죠. 일본군은 뒤에서 러시아 백군을 돕고 있었습니다. 이태준이 머물던 몽골 고륜도 1921년 2월에 백군에 점령당합니다. 백군 부대에 참모로 있던 일본군 장교들의 농간으로 이태준은 처형되고 맙니다.      



 

이태준의 죽음을 전해들은 약산은 비통함에 땅을 쳤습니다. 그런데 1년 뒤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수상한 서양 남자가 베이징의 뒷골목 술집을 배회하며 어눌한 조선말로 “김원봉을 아시오? 꼭 만나게 해주오.”라며 돌아다닌다는 거였죠. 의아했지만 뭔가 느낌이 있던 김원봉은 은밀히 그자의 행방을 추적하여 만납니다. 그 수상한 사람은 바로 마자르였습니다.      


마자르는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이태준은 중국 장가구(張家口)에서 의사로 활동하던 김현국 형제와 손잡고 고륜과 장가구를 왕래하는 독립투사들에게 차량을 제공했었죠. 마자르는 그 차의 운전을 맡아 이태준을 도우며 우정을 쌓았습니다. 약산에게 약속한대로 이태준은 마자르를 데리고 베이징으로 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고륜으로 백군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이태준이 변을 당하고 말았던 거죠. 서양인이었던 마자르는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친구를 잃었지만 그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일념으로 김원봉을 찾아 베이징까지 왔던 것입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김원봉은 마자르를 상하이로 데려갔습니다. 프랑스 조계지에 마자르 이름으로 집을 하나 얻어줍니다. 여성 의열단원 현계옥을 붙여 부부처럼 행세하게 하죠. 또 러시아에 능통한 단원 이동화를 그 집에서 일하는 요리사로 위장시켜 폭탄제조를 돕게 합니다. 눈에 불을 켜고 독립운동 단체들을 감시하던 일본 경찰은 마자르의 집이 폭탄공장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마자르가 만든 폭탄은 이전에 사용했던 사제폭탄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폭음만 요란한 게 아니라 폭발력이 대단했고, 암살용/파괴용/방화용으로 각 용도에 맞게 만들어졌습니다. 상하이 앞바다 섬에서 폭탄을 시험해 본 김원봉과 의열단원들은 설렘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마자르가 만든 폭탄은 황옥과 김시현 그리고 의열단원들의 가방과 트렁크에 나뉘어 실렸습니다. 폭탄반입 루트는 상하이를 떠나 텐진, 안둥을 거쳐 국경을 넘어 신의주, 경성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중국 안둥에서 신의주로 옮길 때는 마차와 인력거를 타고 국경을 넘었죠. 나머지 여정은 열차를 이용했습니다. 국경을 넘을 때는 황옥이 지역 유지들과 기생 파티를 하는 것처럼 위장하여 검문을 통과하죠. 영화 <밀정>도 처음에는 이런 사실을 토대로 각본을 썼다가, 극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쭉 기차로만 이동하는 설정으로 찍었다고 합니다.     


열차에서 폭탄을 숨기는 방식은 영화와 같았습니다. 마자르는 멋진 신사로 꾸미고 현계옥과 연인 행세를 합니다. 나머지 단원들은 짐꾼으로 변장하죠. 그 시절 중국에서는 외국인들이 하인을 여럿 데리고 여행하는 경우가 많아 이상한 모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마자르와 현계옥은 검문에서 자유로웠습니다. 그런데 다른 단원들을 수상하게 여긴 중국 관헌들이 짐을 검사하려들죠. 이때 마자르가 달려가 불같이 화를 내며 일행을 무사히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폭탄을 만들 때면 헝가리 노래를 흥얼거렸다는 마자르는 연기력도 뛰어났던 모양입니다.     

영화 <밀정>의 한 장면

1923년 경성을 뒤흔들 뻔 했던 의열단의 2차 폭탄암살계획은 신의주에서 정보가 새어나가면서 실패하고 맙니다. 영화에서 마자르는 추방당하는 것으로 그려지죠. 아마도 그랬을 듯합니다. 이후 마자르의 행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까요.     


사실 마자르라는 이름도 모호합니다. 보통 헝가리 사람들을 가리켜 마자르족이라고 하니, 아마도 마자르는 동지들이 그를 부르던 애칭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헝가리 사람이 멀리 아시아 끝까지 흘러와 조선인 친구와 의(義)를 맺고, 그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독립투쟁에 함께 했습니다. 제 나라 독립을 위해 싸우는 일도 쉽지 않은데, 남의 나라 독립을 위해 행동한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살다가,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르기에 꽃 한 다발 놓아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진정한 의인(義人)에게 마음 속 빛나는 명예훈장은 달아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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