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에서 살아남기(4)
학창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문학이었다. 그다음은 국사와 언어.
나는 정해져 있지 않은 답을 좋아했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고, 그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정답지에는 하나의 정답만 적혀 있었지만, 나는 ‘모든 문제엔 정해진 답이 있을 필요는 없다’는 믿음을 품고 있었다.
한 편의 시를 읽고 다양한 해석을 나열하거나, 단어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캐내는 게 즐거웠다.
그래서 서술형 문제를 특히 좋아했다.
서술형은 나에게 있어 설득의 장이었다. 내가 아는 것을 총동원해 머리를 굴리고, 나의 관점을 글로 풀어내는 일.
정해진 답만 있는 문제는 너무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수학과 과학을 제일 싫어했다.
계산이 조금만 틀려도 전혀 다른 답이 나와버리고, 딱 정해진 공식만 외워야 하는 것이 싫었다.
무엇보다도, “정답은 하나뿐”이라는 명제가 싫었다.
내 안에는 늘 ‘답은 여러 개일 수도 있잖아’ 하는 작은 반항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나는 여전히 “답은 하나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믿는다.
하지만, 정해진 답이 있기를 바랄 때가 많아졌다.
기내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차라리 정답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어.”
수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의견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요구 앞에서 결국은 내가 ‘정답’이 되어야 하는 순간들.
그럴 때는 차라리 수학 공식처럼 명확한 해답을 주고 싶어진다.
세상엔 인구 수만큼이나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고,
나는 수학 공식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빨간 색연필을 들고 누군가의 마음에 동그라미를 주려 한다.
하지만 그 마음에는 공식이 없다.
내가 낸 답이 틀렸다고 해도, 어디에도 그 이유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해설집은 없다.
어쩌면 내가 낸 답은 정답도 오답도 아닌, 육각형이나 꽃모양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답을 찾는 그 긴 여정 속에서
우리의 대화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제자리만 맴돌 뿐이다.
예전엔 여러 개의 답을 좋아했던 내가,
지금은 그 ‘하나’의 답을 애타게 바란다.
열린 결말이 설레기보다 피곤한 날들이 찾아온다.
사람의 마음에 정답을 내리는 일.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