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에서 살아남기 (5)
틈입. 기회를 타서 느닷없이 함부러 들어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정신만은 말똥말똥하다.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불규칙한 수면패턴이 아닐까. 자야 할 때 깨어 있어야하고, 깨어 있어야 할 때 자야 한다. 밤샘 비행이라도 하는 날이면 비행을 가기 전에 억지로라도 잠을 자야하는데 정신은 사춘기 온 아이처럼 고집스레 반항을 한다.
스스로를 재우려는 나와 자고 싶지 않다며 반항하는 내가 싸운다. 이 싸움의 결과는 온전히 미래의 내가 책임지게 된다.
잠들기 전에 드는 생각을 조심해야 한다. 무방비 상태에서 생각의 공격에 속절없이 당하고는 만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젖는것도 모르고 헐거워진 마음의 문을 열고 생각이라는 불청객이 들어온다.
‘나는 너를 허락 한 적 없어’
나는 단단히 팔짱을 낀 채 그를 노려본다. 하지만 이미 이 불청객은 우리 집 안방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흥얼거리며 티비를 켜고 있다. 단단히 자리를 잡은 걸 보고 나니 이미 이 싸움은 내가 진것이다.
‘자야 하는데, 자야 하는데’
이미 머릿속은 내가 열 살 때 서운했던 일들을 곱씹어 보고 있는 중이다. 꼭 필요할 때만 기억력이 좋았으면 좋겠는데 불청객은 쓸데없는 기억력만 골라낸다. 이 밤의 불청객은 나의 파괴자이자 가끔은 (인정하기 싫지만) 구원자이다.
비행을 하고 나서 침대에 들면 그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아, 67A 승객이 콜라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
그 때부터 시작이다. 내가 또 뭘 놓친게 없는지 곰곰히 생각하다보면 갯벌에서 조개를 캐듯이 한두개 쏟아질 때가 있다. 힘든 비행 일수록 날카로운 말들과 그보다 더 차가운 눈빛이 떠올라 내 잠을 방해한다. 단단히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싶지만 한 번 집에 들어온 불청객은 어떤 수를 써도 나가지 않는다. 결국 그와 함께 후회와 반성과 분노로 뒤엉킨 채 지쳐서 잠이 든다.
불청객을 싫어하냐고 물어본다면 단호하게 ‘네’라고 대답을 할 수는 없겠다. 생각을 질겅질겅 씹다가 어느 순간 좋은 문장이 떠올라서 글 소재로 쓴 적도 많다. 불청객은 오늘도 무례하다. 내 마음의 문이 헐거워지는 틈만 노리고 있다. 나를 망치면서도 나를 구원해내다니, 못마땅 하지만 슬그머니 봐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