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사랑

기내에서 살아남기(6)

by 여름소녀

사위다. 불이 다 타서 재가 되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비행이 가장 좋은 비행이다.

어떤 비행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아렸던 이유는 사위고 그 감각만 기억난다. 그리고 또 어떤 비행은 ’내가 이런 비행을 했었나‘ 싶을 정도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 비행은 마음의 찌꺼기가 남지 않은 비행이다.


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한다.

비행기에 들어설때도, 토를 치우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서 생각한다. 앉을 때나 설 때나 사랑사랑사랑.

이쯤되면 내 취미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비행기 안에는 다양한 비상 도구들이 실려있다. 산소통과 응급상자 그리고 소화기 등등. 그리고 가끔 나는 의도치 않게 방화범이 되곤한다. 원하는 기내식을 받지 못해서 화가 난 승객은 얼굴이 빨개진 채 입에서 불을 뿜어 낸다. 나는 방화범인 동시에 소방관. 불을 뿜어 내는 입을 보면서 나는 비행기에 실린 빨간 소화기를 떠올린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내뱉는 말에 온도가 있다는 걸 까먹는다. 온도는 너무 뜨거워서 나를 사위고 너무 차가워서 나를 얼린다. 그럴때마다 나는 사랑을 생각한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참기 힘들다. 그래서 사랑을 한다.


‘불을 어떻게 끄더라’


불을 끄려 애쓰는 동안, 내 마음 속에도 불길이 번진다. 끓어오르는 마음을 지켜보면서 내 사랑이 부족한건가 고민한다. 불은 점차 사그라든다. 이제는 내가 소화기가 된다. 불을 끈다. 완전히 사그라 들진 않아서 불씨가 남아있다. 이런 비행을 마치고 나면 내가 재가 되곤한다. 나를 불살라서 불을 끄고 나니 내가 사라진 기분이 든다. 내가 떠나고 난 자리에는 그을음이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사랑을 떠올린다. 재도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미움을 미움으로 상대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할 것이다. 끝까지, 끊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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