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울 지하철 박제하다

시 백십구

by 설애

서울 지하철에서 놀라다


함민복


1

열차가 도착한 것 같아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스크린도어란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민망하여 별로 놀라지 않은 척 주위를 무마했다

스크린도어에, 옛날처럼 시 주련(柱聯)이 있었다

문 맞았다


2

전철 안에 의사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두 귀에 청진기를 끼고 있었다

위장을 눌러보고 갈빗대를 두드려보고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옛 의술을 접고

가운을 입지 않은 젊은 의사들은

손가락 두 개로 스마트하게

전파 그물을 기우며

세상을 진찰 진단하고 있었다

수평의 깊이를 넓히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에서


정일근


5호선 김포공항역에서 지하철 탄다

평일 한 낮 한산한 열차 안, 서울

사람들은 앉자마자 눈 감아 버린다

잠든 것은 분명 아닌 것 같은데

스스로 눈 감고 암흑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

하나 같이 핏기가 사라진 서울의 표정

무덤 같다, 긴 지하무덤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서울 지하철 풍경이 눈에 그려지는 듯 합니다.

시간에 관계없이 무표정한 얼굴,

손에는 스마트폰,

눈은 스마트폰을 보거나 감거나,

귀에는 이어폰, 이제는 무선 이어폰이니, 청진기 같지도 않을 테지요.

출퇴근길 피곤한 우리네 일상이 담겨있지요.


조선 시대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 같은 풍속화처럼 시에 박제된 대한민국의 지하철 풍경입니다.

단원 김홍도의 성하부전도(사진출처:공유마당)

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시가 주렴처럼 걸려있습니다.

그 시가 잠시, 가족을, 하늘을, 풀잎과 이슬을 돌아보게 하여 지하철을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줍니다.


시가 걸린 대한민국의 지하철,
저는 그 풍경이 참 좋습니다.


사진 출처:https://share.google/Fzq0GJuqeIW5FRbhb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0화어머니의 지혜, 냅둬라 = Let it 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