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일흔여섯
바람과 봉지
이병률
바람 부는 날을 제일 좋아하는 건 봉지
안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봉지
날릴 대로 날리다
곤두박질할 대로 하다가
까르르 웃다가
첨벙첨벙 흐느껴 울기도 해
무작위로 부딪히며
깃털도 모으고 씨앗도 받고
또 그것들을 질질 흘리기도 해
아무것도 아닌 것만이 진짜로 완벽하지
봉지가 바람에 날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진짜 완벽하다는 논리에 갸웃하다가, 끄덕거립니다.
[예스맨]이라는 영화에는 예스만 외치기로 한 남자가 있답니다. 그래도 인생이 나빠지지는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더라, 라고 했어요.
너도 내 말에 예스해 보라는
상사의 사탕발림이었지요.
아무것도 아닌 봉지 같은 사원은 바람에 날렸지요.
그러다 웃고, 울고, 곤두박질치고, 자료를 모아서 보고서를 만들었다가, 지웠다가,
진짜로 완벽했어요.
제 사족이 이병률 시인님의 시를 망치지 않았기를요.
제 사고가, 잠깐 바람에 날려서 그랬으니까요.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