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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대하여

시 백오십

by 설애

가난에 대하여


이재무


선과 악의 기준이 사라진,

오직 미추만이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에

성자였던, 생을 긍정하던 가난은

선하지도 힘이 세지도 않다

산개되어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가난은

다만 무력할 뿐이어서 크게 울지도 못한다

가난이 힘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뭉쳐서 무기가 되고 전망이 되던 날이 있었다

떼지어 살고 있어서 쉽게 눈에 띄던 시절

가난은 단연 주목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가난은 저마다 무력한 개인이 되어

모래알로 흩어졌다 지하로 잠적해버렸다

눈에 띄지 않는 가난에 대하여

누가 관심과 애정을 보일 것인가

생활의 중증장애자, 구차한 천덕꾸러기 되어

몰래 맞는 가련한 왕따,

가난은 이제 선하지도 힘이 세지도 않다


시대에 따라

어떤 단어는 진해지고

어떤 단어는 색바래고

어떤 단어는 생겨나고

어떤 단어는 사라집니다.


가난은, 색이 바랜 듯 합니다.


색이 바래진 단어를

낙엽처럼 주워다 책이 끼워놓듯

저는 가난을 주워다가

오늘의 시를 채웁니다.


시는,

힘이 약하고

색이 연하여

잊혀지는 중인 것들

바래는 것들

흩어진 것들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모아놓으면 힘이 세질지도 모릅니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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