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백이십육
지도에 없는 집
곽효환
그곳에서 멀지 않은 비포장길
지금 어디에 있다고 너 어디로 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지시하던 내비게이션 소리도 멈춘 지 오래
텅 빈 인적 없는 한적함이 두려움으로 찾아드는
길섶에 두려운 마음을 접고 차를 세웠다
오래전 서낭신이 살았을 법한 늙은 나무를 지나
교목들이 이룬 숲에 노루 울음 가득한 여름 산길
하늘엔 잿빛 날개를 편 수리 한 쌍 낮게 날고
투명하고 차가운 개울 몇을 건너
굽이굽이 난 길이 더는 없을 법한
모퉁이를 돌아서도 한참을 더 걸은 뒤
고즈넉한 밭고랑
황토 짓이겨 벽 붙이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곡식창고
함석지붕을 머리에 인 처마가 깊은 집이 있다
산나물이 들풀처럼 자라는
담도 길도 경계도 인적도 없는 이곳은
세상에 대한 기억마저도 비워낸 것 같다 그래서
지도에 없는 길이 끝나는 그곳에
누구도 허물 수 없는 집 한 채 온전히 짓고 돌아왔다
보통 내비게이션이 길 안내를 종료하고, 그곳이 목적지가 아닌 경우는 무언가에 홀렸거나, 아주 가깝게 평행한 대로가 있는 경우입니다.
이 시는 전자의 경우로, 이 세상에 아닌 곳에 잠깐 다녀오신 것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을 해봅니다.
그곳에서 집을 지었다니, 그 집은 어떤 집일까요?
시끄러운 세상에서는 집을 짓기 어렵겠죠.
마치 글 쓰는 일 같습니다.
어느 지도 없는 곳처럼 내 안의 사색이 끝난 곳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고, 기적처럼 집이 지어집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는 것인지,
끝까지 가야 열리는 것인지,
글이 잘 써지는 집 한 채 갖고 싶습니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