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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한강

시 백이십오

by 설애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하루가 끝나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둔다

저녁이 식기 전에

나는 퇴근을 한다


저녁은 서랍 안에서

식어가고 있지만

나는 퇴근을 한다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고


서랍에 넣어 둔 저녁은

아직도 따뜻하다

나는 퇴근을 한다

저녁이 식기 전에


퇴근을 하면서

저녁을 꺼내어

따뜻한 한 끼를 먹는다

하루의 끝에서


퇴근을 하고

서랍에 넣어 둔 저녁을 꺼내면

하루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나는 퇴근을 한다


퇴근을 하면서

저녁을 꺼내어

따뜻한 한 끼를 먹는다

하루의 끝에서


아침도 아니고, 점심도 아니고,

저녁을 서랍에 넣었다가 꺼내먹는 것은

하루의 끝에서, 가벼워진 마음으로

꺼낼 수 있는 것이 저녁이어서일까요?


다른 시이지만,

그 저녁 밥에서 수증기가 날아가는 것으로

무언가 영원히 지나갔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내일도 없고, 두번도 없는

항상 영원히 사라지는 시간을 살고 있어요.


서랍에서 꺼낸 저녁은 따뜻합니다.

얼마나 다행인가요?


그 저녁을 먹습니다.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는 것은

무사히 지나가는 하루의 일상입니다.


저는 서랍에 시를 두었는데,

한강 시인은 저녁을 두었습니다.


그대의 서랍에는 무엇이 있나요?




한강 시인의 노벨상 수상 소감입니다.

쓰는 사람으로 스스로 정의합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혹여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아래 링크를 따라가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https://www.nobelprize.org/prizes/literature/2024/han/225027-nobel-lecture-korean/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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