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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을 놓치지 않고 유혹하는 악마의 기술

파우스트, 괴테 /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C.S. 루이스

by 설애

고등학교 때 야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친구가 파우스트를 읽고 재미있다고 나에게 일독을 권했다. 그래서 읽어봐야겠구나 하고 마음먹고 10년쯤 뒤에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친구에게

"나 파우스트 다 읽었어."

라고 뿌듯하게 자랑했더니, 친구가

"응, 근데 뜬금없이 책 읽은 얘길 해?"

"니가 옛날에 재밌다고 읽어보랬잖아. 기억 안 나?"

"내가? 기억 안 나는데?"

"니가 하도 재밌대서 읽었는데?"

"언제?"

"고3 때, 야자 끝나고 그랬잖아."

"아~ 야, 그때는 교과서만 아니면 다 재밌지. 파우스트 기억도 안 나!"

"......"


책에 관한 한,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




오늘의 주제를 읽은 책으로부터 뽑으면 아래와 같다.


1. 지금부터 10년 전 파우스트를 읽었다.

2.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얼마 전에 다 읽었다.

3. 오늘 두 책으로부터 악마의 유혹법을 소개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1800년에서 100~130년 뒤 악마는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인간에게 붙어 천사와 싸우는 하급 악마인 웜우드에게 삼촌이자 상급 악마(지옥 심연숭고부 차관, 각하)인 스크루테이프가 인간의 유혹을 교육하며 요령을 알려주는 편지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로 공개된다.

C.S. 루이스(나니아 연대기 저자)는 이 편지의 입수 경로를 비밀에 부치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이 편지들을 읽는 여러분은
악마가 거짓말쟁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C.S. 루이스는 유머 있고 세련되며 지각 있고 융통성 있는 메피스토펠레스는 악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환상에 기여했으므로, 이 편지를 주고받는 악마들은 이 메피스토펠레스와 다른 형태를 차용했다고 했다. 즉, 악은 카펫이 깔려있으며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따뜻하고 품격 있는 사무실에서, 흰 셔츠를 차려입고 손톱과 수염을 말쑥하게 깎은, 굳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는 점잖은 사람들이 고안하고 명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C.S. 루이스의 지옥은 경찰국가의 관료조직이나 아주 비열한 사업을 벌이는 사무실을 채택했다고 하는데, 원수(그리스도)를 탐색하고 환자(인간)을 관찰하여 악마의 쪽에서 죽기를 유도하는 치밀한 작업.

그것은 스파이 업무와 가깝게 느껴졌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법
내기를 할까요?
당신은 결국 그 자를 잃고 말 겁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주님과 파우스트를 두고 내기를 한다. 파우스트를 찾아가 그를 꼬신다.


제 요술을 가지고
심심찮은 시간을 보내자는 겁니다.

당신의 후각도 기분 좋을 것이요,
당신의 입 안엔 달콤한 맛이 감돌 것이요,
당신의 감각은 황홀경에 이를 것입니다.


파우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저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살기엔 너무 젊었다.
세상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의 하인을 자처하며, 저 세상에서는 파우스트가 그의 하인이 되기를 바란다. 파우스트는 저 세상의 일은 무슨 상관이냐며, 그와 계약한다. 아래 주문을 외우면 파우스트는 파멸하여 메피스토펠레스의 것이 된다. 즉, 파우스트가 어느 순간에 집착하게 되면 메피스토펠레스는 해방되고 파우스트의 시간은 멈춘다.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그리고 제일 먼저,파우스트를 마녀의 물약으로 젊게 만든다. 그리고 모든 여인을 헬레나 같은 미인으로 보이게 한다. 파우스트는 마르가레테에게 반하여, 보석을 바치고 유혹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농간으로 마르가레테를 통해 그녀의 엄마를 죽이고, 파우스트를 통해 그녀의 오빠를 죽여 살인자로 만든다. 그레트헨은 감옥으로 가게 되어 파우스트가 뒤늦게 구하려하나 죽고 만다.

궁성으로 이동하여 메피스토펠레스는 황제를 도와주고, 파우스트는 황제에게 헬레나를 불러오기로 하고, 시공을 초월한 어머니들의 나라로 간다. 헬레나는 스파르타 궁성으로 돌아오게 되고 메피스토펠레스의 계락으로 이웃 성의 맹주인 파우스트와 결혼한다. 그들은 아들 오이포리온을 낳지만, 추락하여 죽는다. 헬레나도 사라진다.

자연으로 돌아가 파우스트는 해안지대를 비옥한 땅으로 바꾼다. 그리고 외친다.


오, 머물러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웜우드에게 전해진 스크루테이프의 유혹법

논리가 아니라 감각적 경험에 붙들어 두라.

사색하지 못하게 일상성을 주입하라.

과학 따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주라.

교회에서 실망감(찬송가 음정 삑사리, 교인의 별난 옷차림 등)을 주라.

악마가 검열한 내면에 집중해서, 다른 사람은 다 아는 결점을 본인은 모르도록 하라.

영적인 기도에 집중하고, 현실과 기도를 분리시키라.

기도하는 기분만 내고 기도하지 않게 하라.

공포의 미래상을 보여주라.

세속에 만족하는 마음을 주라. 특히 중년기에는 '세상에서 내 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현재를 두려워하게 하라.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에 고민하게 하라.

공상하게 하라.

악마를 희극적인 모습으로 상상하게 하라. (악마를 겁내지 않도록)

성적으로 유혹하라.

착실한 술주정뱅이로 만들라. 행복하고 느긋하게 친구들과 마시는 게 아니라 침체되고 지쳤을 때 진통제로 먹게 하라.

침제기에 만족하게 하라.

수치심, 자존심 등 허영을 건드려라.

비겁하게 행동하도록 하라.

책을 읽을 때, '이것이 진실인가'라고 묻지 않도록 하라.


너무 많아서 다 못 찾아 적겠다.


이 세심한 악마들!



메피스토펠레스는 사랑, 명예, 많은 경험 등으로 파우스트의 자유를 통해 유혹했지만, 세련되고 숙련된 악마 사무원들은 일상의 틈으로 전략적으로 유혹한다.

<책의 미로> 열다섯 번째 책

[파우스트]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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