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주인공 영주가 밤마다 [너무 한낮의 연애]와 한 챕터씩 번갈아가며 읽은 책이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 언급된 책들은 하나씩 읽어볼 예정이며, 지난번 [일하지 않을 권리, 용기]에 이은 두 번째로 새로 읽은 책 [쇼코의 미소]를 소개한다.
잠시, 하나의 책에서 소개된 책을 순차 소개하면서 <책의 미로>의 족보를 그릴 날을 상상해 본다.
욕심일까?
책에 포함된 단편은 7편으로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 그래서 위계질서가 붕괴된 만남, 몇 편은 외국인과의 만남을 포함하고 있다.
만남의 위계질서는 집안에서는 어른과 아이,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학생, 선배와 후배,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
그리고 친구라는 관계.
친구는 일견 평등해 보이지만, 평등하지 않음으로 많은 사건, 사고, 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종국에 평등한 존재들만이 친구로 남는다고 생각한다. 평등을 가르는 추는 나이나 외부의 상황이 아니라 마음의 추로, 한 사람의 추가 변하면 다른 쪽의 추가 그대로인 경우, 기울게 된다. 두 사람의 추가 지속적으로 비슷해야 유지되는 관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위계질서가 없어야 하지만 위계질서가 발생함으로 파국을 맞이하는 관계라고 여긴다.
외국인과의 만남은 [쇼코의 미소]의 교환학생으로 집에서 머문 일본인 쇼코, [신짜오, 신짜오]에서는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하여 가족을 잃은 베트남 가족이 나오고, [한지와 영주]의 한지와 영주 사이를 조율하는 케냐에서 온 카로, [먼 곳에서 온 노래]의 한국인 유학생의 플랫메이트인 폴란드 여자 율랴이다.
모든 단편이 다 관계의 변화를 담담히 서술하고 있지만, 유독 [먼 곳에서 온 노래]에서 많이 공감하였으므로 그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과 대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책을 읽으며, 공감 가는 곳에 포스트잇을 붙이는데, 손에 포스트잇이 없으면 접어둔다. 유독 그 단편만 다 접어 두었다. 노래패 선배 미진과 후배 소은에 더하여, 노문과 미진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공부하러 간 러시아에서 플랫(복도식 아파트) 메이트 율라가 만드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 때 나도 노래패였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미진이 갑자기 죽은 후, 소은이 율라를 찾아가 만나는 시점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은의 시선을 따라 전개된다.
율라
미진 선배의 사진에 같이 찍혀 있던 폴란드 여자
짙은 일자 눈썹, 회색 눈동자, 얇은 입술
넌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쓸모없는 계집애야.
덩치만 큰 계집애.
율라의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했던 말로, 러시아 남자와 결혼해 도망치듯 러시아로 왔다. 하지만 그 러시아 남자도 율라를 무시하고 욕하고, 결국 헤어진다. 그리고 미진이 집을 보러 와서 같이 살게 되는데, 그녀를 도와주면서 자신이 미진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진이 러시아 말을 잘할수록, 도움이 필요 없어질수록, 매력적인 친구들과 어울릴수록, 율라는 화를 낸다.
이타심인 줄 알았던 마음이
결국 이기심이었다.
미진
홈커밍데이에 80~90년대 사이에 낀 02학번 소은을 구해준다.
요즘 애들,
머리에 물이나 들이고 손톱칠이나 하고 대중문화에 찌들어서
선배보고 오빠라질 않나
여성적인 태도는 좀 버려야 할 것 같다?
나도 여자지만,
사회에 나와보면
참 융화가 안 되는 여자들이 많아.
이런 선배들의 끝없는 잔소리와 배려 없는 충고에, 미진의 한 마디
지랄
후배를 구하고, 선배에게 욕먹는 사람.
마음이 약해질 때 목소리가 떨리는 버릇,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성격, 느리게 걷고 느리게 먹고 느리게 읽는 기질, 둔한 운동신경,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백 가지 의미를 찾아내 되새김질하는 예민함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다.
어떤 선배들은 노래가
교육의 도구이자 의식화의 수단이라고 했지만, 나는 우리 노래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고 생각해.
소은
미진과 3년을 살다가, 미진이 유학 간 직 후, 아프게 된다. 미진은 매일 메일을 쓰고, 전화하고, 소은을 보러 잠깐 나오기도 한다.
세상 제일 아프고 괴로운 건
나였으니까
나에 대한 사랑도 없었던 나를
그치지 않고 사랑해 준 선배
선배는 지금의 내 나이가 되지 못했다
뒤돌아 미진을 떠올리는 소은과 율라의 후회와 먹먹함을 담담히 쓴 단편이 나는 가장 좋았다. 뒤돌아 아름다운 사람이 곁에 있었던 그들이 그래도 부럽다.
지나가 후회하지 않도록 나는 어떠해야 하는가?
관계의 거리와 무게를 생각하게 하는
<책의 미로> 열일곱 번째 책
[쇼코의 미소]를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