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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을 권리, 용기

일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일하지 않는 용기

by 설애

이 책은 <책의 미로>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독서모임에서 토론한 책이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 언급된 책들은 하나씩 읽어볼 예정이며, 부지런하신 블로거께서 책 리스트를 정리해 주셔서 도움이 되었다.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https://jamjamzo.tistory.com/109




이 책은 절판되었다. 데이비드 프레인의 [일하지 않을 용기]만 있고, [일하지 않을 권리]는 없다. 급한 마음(나는 책 모으는 걸 좋아하고, 사야 하는, 아니 읽어야 하는 책이 절판되다니, 머리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에 중고 서적을 뒤졌다. 찾았고, 샀다. (결재를 마치자 경고음이 멈췄다.)

절판된 책, 구하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2008년 프랑스 전 대통령 시르코시가 지시해 작성된 보고서는 '경제 생산량 측정에서 행복 측정으로 측정 체계의 강조점을 옮길 시기가 무르익었다.'는 주장을 담았다.

다시 일하기 위해 쉰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퇴근과 출근 사이에 쉬는 것은 재충전의 시간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노동으로 생산하는 것과 함께 우리의 노동으로 인한 삶의 질도 측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했다.


우리가 퇴근하고 쉬는 것이 재충전이기만 할까?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와 쌓인 피곤으로 인해 보상적으로 소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힘들어서 밥은 못 하겠어
사 먹자

오늘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
술 한잔 하자

내가 버는데,
이 정도는 사도 되잖아

보상적 소비의 형태는 작게는 먹는 것에서부터 가전제품, 옷, 생필품 같은 필수품을 거쳐 가방, 자동차, 시계의 고가품까지 다양하다. 필요 없지만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사는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이런 소비를 위해 또 일터로 가야 하는 것은, 신용카드 명세서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일해서 보상 심리로 돈을 쓰고,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보상 심리로 돈을 쓰지 않더라도 직장 생활을 하기 위해 더 많을 돈을 들여 먹고, 옷을 사야하는 것은 사실이다.

일하는 목적이 생활을 위한 돈이라면, 덜 쓰고 덜 버는 삶도 가능하다.




일하는 것은 사회 일원으로의 의무이며, 보람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일이 없는 사람을 부르는 호칭에 존경은 바랄 수 없고, 비하가 섞이는 경우가 더 많다. 중립적으로 실업자, 구직자, 비노동자 등이 있을 것이고, 제 구실 못 하는 사람, 게으름뱅이, 한량, 기생충, 식충이 등의 비하적인 명칭을 더 찾아내기 쉽다.


이 책은 노동하지 않음을 옹호하고 그들에게 작은 자리를 주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책이다. 그런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적어도 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능력이 있어서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줄이는 사람이 있다. 소아과 의사인데, 주 3일 출근하며 다른 날은 충분히 쉰다. 그녀의 남편은 더 벌 수 있는데, 집에서 논다며 그녀를 채근하지만 그녀는 그 정도가 충분하다고 말한다. 나는 일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그녀를 옹호했고, 그녀의 친구인 다른 의사는 그녀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야망이 없다고 말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선택이 이해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지금 시국이 좋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취업난과 경제침체, 하지만 호황에만 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의 선택이나 방식에 대해서는, 언제든 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일할 수 있으나, 일을 줄여가며 삶에 집중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시 돌아간다. [월든]에서처럼 거의 자급자족에 가까운 홀로서기를 하자는 말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 조금 일을 덜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일하지 않음으로 얻어진 시간은 시간으로 얻을 수 있는 취미로 채울 수 있다. 난 취미조차 돈으로 얻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비적 취미가 아닌 생산적 취미로. 무언가 하고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으로.


일하기 싫음의 도피가 아닌, 일하지 않을 자율에 이르러 그들의 마음에 있는 도덕적 불편함까지 다독이고, 여가에 대해 논의하는 저자의 시야를 따라 완독 할 수 있는 책이었다.

마지막 문장이다.



자, 다음

일하지 않을 용기를 본다.

이 책은 절판된 [일하지 않을 권리]가 출판사가 바뀌어 재개정된 책(!)이다.


두 권을 연달아 읽으려던 나는 그만,

절판된 책과 새 책을 나란히 샀던 나를,

절판된 책을 사고 기뻐했던 나를,

바보 취급하고야 만다.

아, 나는 뭘 했단 말인가!




노동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책

<책의 미로> 열세 번째 책

재개정된 [일하지 않을 용기]를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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