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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지혜로운 이야기

by 설애

내 MBTI는 4가지 성향이 거의 가운데에서 조금 치우쳐있는 형태이다. 계획형인 J이지만, 계획형이 보기에는 무계획하고, 즉흥적 P가 보기에는 계획이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을 읽어보시라고 들고 온 나는, 내가 봐도 즉흥적이다. 어쩌자고 이 책을, 쯧쯧

하지만, 이 책이 나를 골랐다.

(F만 이해하는 거 아니지? T도 알지? 글이 나를 찾아오고, 책이 나에게 말 거는 거)


동양철학이나, 고전문학, 역사의 관점으로 이 책을 논할 만큼 깊이가 없음을 고백하며, 이솝우화, 천일야화, 채근담, 탈무드 정도로 장자를 재미있고 교훈이 있는 이야기라고 소개할 예정이다.





장자 33편은 3가지로 나뉜다. 내편(內篇) 7편, 외편(外篇) 15편, 잡편(雜篇) 11편이다.

이 책은 조금씩 나누어 풀이가 되어있어서 읽기 좋았다.

그중 좋았던 부분을 발췌하여 소개한다.




자네는 정말 큰 것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군 그래

송나라 대대로 실을 세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그의 집에는 손이 트지 않는 신기한 약을 만드는 비방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네. 어느 나그네가 그 소문을 듣고 그 비방을 백 금에 사겠다고 했네. 실을 빨아 주어도 1년에 오륙 금 밖에 못 얻으니 백 금에 비방을 나그네에게 팔았다네. 나그네는 오나라로 가서 약효를 왕에게 설명하고, 장군으로 기용되었네. 마침 월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해 왔고, 한겨울에 일부러 월나라를 물 위로 끌어내 마주 싸웠네. 손이 트지 않아서 오나라는 월나라를 크게 이길 수 있었지. 오왕은 그의 공을 가상히 여겨, 땅을 떼어주고 제후로 봉했네.


재주가 있어도 쓰는 사람이 잘 써야 효과가 있지, 암

누군가 성공하는 것에는 쓸 줄 아는 지혜가 있지 않겠는가. 말투도 따라 하며, 끄덕끄덕하며 읽었다.


말이란 소리가 아니다.

夫言非吹也. 言者有言 基所言者特未定也.

말은 소리가 아니다. 말에는 뜻이 있다. 그러나 그 뜻이 확정되지 않으면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중략)

則莫若以明

즉, 밝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서 멈추고 내가 하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말은 빈 곳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의미가 있다.

모를 리 없지 않은가? 간단한 말이다. 하지만 수많은 말을 뱉으면서 나는 그 의미를 알고 말한 것이 맞았던가? 밝음이 있었던가?

한때 나는 카톡 프로필에 夫言非吹也를 걸어놓았다.

말에 밝음이 있는지 또 생각하라고. 잊지 않으려고.


그 나무는 아무 데에도 쓸모가 없다

석이라는 목수가 제나라로 여행을 하였다. 도중에 우연히 곡원을 지나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엄청나게 큰 가죽나무가 사당나무로 제사를 받고 있었다. 이 큰 나무를 계속 찾아드는 사람들로 그 근처는 마치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웠다. 석이 그 나무를 한 번 거들떠보는 일 없이 성큼성큼 지나가 버리자 제자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건방진 소릴 하는구나. 그 나무는 아무 데에도 쓸모가 없다. 배를 만들면 가라앉아 버리고, 널을 만들면 금방 썩고 만다. 가구를 만들면 곧 부서지고, 문짝을 만들면 나무진투성이가 되며, 기둥을 만들면 밑으로 금방 좀이 먹고 만다. 전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크기만 한 나무다. 이렇게 크게 자라나게 된 것도 사실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원인과 결과로 따지면 이해되는 이야기지만, 쓸모가 없어 커지기만 나무는 사람들에게 구경하는 기쁨을 주지 않는가? 또 나무 그늘은 몇 천 마리의 소가 쉴 수 있으니, 여름에는 그 밑에서 쉬면 좋지 않을까? 석은, 목수의 입장에서 그 나무를 매도한 것이 아닐까?

나는 왜 저 나무가 안쓰러워 편이 들고 싶을까?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다르다. 나는 오늘날까지 한결같이 쓸모없는 것이 되려 노력해 왔다. (중략) 쓸모없는 인간이, 내가 쓸모없는 나무인지 아닌지를 알 까닭이 있겠는가'라고 그날 석의 꿈에 나무가 나와 이야기한다. 석은 이렇게 마무리한다.

"뭐라고 하든 그 나무는 세간의 바람과 반대로 쓸모없는 것이 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상대를 세간의 상식으로 측량한다면 턱도 없는 엉뚱한 견해를 낳게 될 뿐이다."


이 나무는 또 쓸모없어지려 노력까지 한단 말인가, 나는 편들기를 관두었다.


울지 못 하는 놈을 잡아라

장자가 어느 산속을 지나다가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다. 그런데 나무꾼은 그 나무가 쓸모없다고 베지 않았다.

"이 나무는 쓸모없어 제 수명을 다 할 수 있구나."

장자는 산에서 내려와 옛 친구 집에 묵게 되었다.

친구는 반가워 하인에게 거위를 삶으라고 했다.

"하나는 잘 울고, 하나는 잘 울지 못 하는데, 어느 놈을 잡을까요?"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울지 못 하는 놈을 잡아라."


쓸모없어 나무는 살고 거위는 잡아 먹힌다. 쓸모에 대한 내 생각도 잡아 먹혔다.


언젠가 혜자가 장자에게 자네 이론은 소용없다며 핀잔하였다. 장자가 이렇게 받아넘겼다.

"소용이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만이, 소용이 있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은 끝이 없지만,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발 디딜 수 있는 넓이뿐이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발바닥 밑만을 남겨놓고 그 주위를 밑바닥까지 파버린다면 어떤 결과가 오겠는가. 그래도 발바닥 밑이 소용 있겠는가."

"그야 소용이 없지"

"그것 보게, 소용없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소용이 되지 않는가."


이제는 쓸모, 소용이 다 사라졌다.




장자의 우화를 읽다 보면 고개를 갸웃할 일도, 끄덕일 일도 많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읽다 보면 나도 세상 이치의 끝자락 정도는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미물이 붕새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니,

가을에 장자라도 읽어보면 어떨까?

<책의 미로> 열두 번째

[장자]를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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