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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혜 Jun 13. 2023

그리고 수많은 감사

내가 부정 단계를 경험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건 내 암이 가볍다고 알려진 갑상선암 초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다른 암이거나 초기가 넘어서 진행된 상태였다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분명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사실 갑상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몰랐다. 건강검진을 예약할 때 갑상선과 상복부 초음파 중에 선택해야 했다. 신체 건강에 무지했던 나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갑상선을 골랐을 뿐인데 마침 암이 발견된 것이다. 갑상선암은 느린암 또는 착한암으로 알려져 있다. 진행 속도가 느리고, 초기에는 불편한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또 생존율도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 방치되었을 때는 림프절을 비롯해서 폐 같은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기도 한다. 나 역시 크게 불편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건강검진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한참 뒤에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전에 암을 알게 된 것은 정말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한 일이다.




나는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어서 이틀 동안 출근해서 검사를 몰아서 한 뒤에 나머지 날에는 재택근무를 한다. 그래서 빈 시간에 대학원을 다녔다. 심리학과는 박사라고 해서 널널하게 봐주는 일이 없다. 일하는 것보다 대학원 과제와 발표가 더 버거웠다. 분명 프리랜서인데 주말에도 일을 하거나 공부를 했고, 자주 새벽에 일어나거나 밤을 지새워야 했다. 직장생활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생활을 9년 정도 지속해 왔다. 곁에서 오랫동안 나를 지켜본 지인들은 내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동안 너무 무리했던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정말 그런 걸까. 내 몸이 이제 좀 쉬고 싶다며 파업을 한 것이었을까.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학자금을 갚고,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려면 쉬어서는 안 되는걸.


하지만 마음도 심란하고 수술을 하려면 학교를 중간에 그만두어야 하니 결국 휴학을 했다. 이후 한동안은 남아도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몸은 힘들지 않으면서 정신은 즐거운 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일 하고 싶었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짧은 글을 일기처럼 끄적이는 정도였는데,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가입하고, 블로그를 만들었다. 호흡이 긴 글을 연재하듯이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쓴 글로 브런치 작가에 신청했다. 합격한들 진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 플랫폼이 좋았다. 아마 휴학을 하지 않았다면 브런치 작가가 되는 귀한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느긋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요즘엔 사람들에게 웃으며 글을 쓴다고 말한다. 암에 걸려 글감이 생겼다는 농담도 던진다.




심리학자로서 나는 많은 감정을 경험해 보아야 한다. 훈련을 통해 남들보다 조금 더 공감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 경험하는 심리적 어려움에 대한 논문을 자주 읽는다. 특히 말기암 환자들과 가족들은 상상할 수 없는 만큼의 고통을 경험하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이 없고, 또 필요한 심리적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내가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후반부에는 관련 글을 쓸 예정이다. 직업적으로 더 넓은 시야와 경험이 생겼다는 것에 감사하다.


사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누구를 돕고 싶어서 심리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심리학과의 지원 동기 넘버 원은 남을 도와주고 싶어서. 또는 남의 고민을 들어주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구원이나 통제에 대한 환상 때문일지라도 어쨌든 초점은 내가 아닌 타인이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어떤 상담가들은 자신이 타인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있고, 도움을 넘어 구원해 주고 있다는 환상을 지니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전능감을 느낀다. 이 전능감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래서 치료자는 반드시 개인분석과 슈퍼비전을 받아야 한다.


내가 아직도 치료를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다른 삶의 일부분에 관여한다는 것이 두렵다. 그리고 아마 자책감을 느낄 것이고, 과한 책임감을 스스로 부여할 것임을 안다. 그리고 내 문제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힘들어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잘 안 한다. 심리학을 통해 내가 구원받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그래서 오랜 시간 개인상담을 받기도 했지만, 내 관심사는 주로 나였기에 타인과 세상으로 확장하지 못했다. 물론 심리평가를 하면 개입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곧바로 ‘내가 뭔데 남을 도와.’, ‘내 실력으로 어떻게 치료를 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암을 경험한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안부와 안위에 대해 걱정한다. 그리고 내가 심리학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어쩌면 내가 배운 것들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상담가의 경청과 공감만으로도 내담자의 회복이 시작된다는 말을 잊고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심리학은 나이스하고 따뜻하다. 인간은 오직 강화와 처벌에 따라 행동한다는 행동주의 심리학조차도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진단명을 사용하는 것을 꺼려한다. 자폐증이라고 낙인찍지 않는다. 그냥 소리를 잘 지르는 문제를 가진 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인본주의 심리학처럼 대놓고 친절하던지 행동주의 심리학처럼 츤데레처럼 굴든지 간에 모든 심리학은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바란다. 그 학문을 공부하는 나도 이제서야 주변 사람들의 안녕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배운 따뜻함이 누군가를 위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발휘되길 바란다.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가족들에게 고맙다. 걱정되고 불안할 텐데 나의 감정에 맞춰 호들갑을 떨지 않아 주는 가족들이다. 괜히 내가 심란해할지도 모른다면서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그래서 아빠는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 끙끙 앓았다고 한다. 남동생은 암 이야기를 듣고 멋쩍게 웃어 보였지만, 동생이 원래 표현에 서툴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여동생과 제부는 차로 데려다주고, 또 함께 가주었다. 조카가 어려서 육아하느라 각자 쉴 시간도 없을 텐데 매번 나에게 시간을 할애해 줘서 정말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특히 제부는 내 글을 꼬박꼬박 읽어주는 애독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감사한 나의 신랑.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지만 암이라는 말을 듣고는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 주고 안아주었다. 우울 단계가 극에 치달았을 때 정말 오랜만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과 감정과 몸의 감각들이 너무 오랜만이라 내가 그동안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챌 정도였다. 그냥 이대로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싶었다. 나만 없으면 신랑도 고생하지 않겠지. 헤어지고 조용히 혼자 살아볼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들이 잠깐 들었다고 말했을 때, 신랑은 말 같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말라며 진심으로 화를 냈다. 그러고는 자기가 아픈데 아무 말 없이 잠적하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다. 상상해 보니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든 것이다. 신랑이 혼자 견디며 힘들어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나는 사랑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신랑에게 배운다. 이 다정한 남자와 평생 행복하게 살려면 열심히 회복하고 건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엔 학교 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좋다. 사실 20살 이후로 이렇게 마음이 편해 본 적이 처음이다. 늦잠도 자고, 더 건강하게 챙겨 먹고, 늘어지게 누워서 드라마도 정주행하고, 소파에 누워 맑은 하늘을 멍하니 보다가 날씨가 좋은 날엔 나가서 걷는다. 암에 걸린 것이 마냥 나쁜 일은 아니었다. 꼭 무엇을 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사소한 일이더라도 나를 돌보는 일들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오늘도 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또 그 안에서 의미 있는 존재임을 배운다.



p.s. 내가 기댈 수 있도록 곁을 내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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