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잡혔다. 담당 교수님이 학회 일정을 취소하면서 마침 시간이 비었던 것이다. 수술 전 검사들도 당일에 모두 할 수 있었다. 암이라는 사실을 빼고는 정말 모든 일이 술술 풀렸다. 수술이 확정된 이후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알려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직접 만나 알리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힘든 일은 혼자 견디는 편이다. 어차피 내가 겪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이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어려웠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덤덤하게 전달할지 고민했다. 삶을 강하고 굳건하게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사람들의 반응이 불편했다. 큰일이 난 것처럼 나보다 더 슬퍼하고 걱정하는 그 모습들은 나를 나약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위로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웬걸. 진짜 어떤 위로의 말도 듣지 못했을 때 나는 상처를 받았다.
가장 상처로 다가왔던 반응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암이고 수술을 받게 되었다고 했을 때,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갑상선에 혹이 자글자글해. 평생 달고 살았어~.”
정말 이 말이 끝이었다. 사실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장 말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알려야 했던 사람이다. 이 사람은 나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 많은 아픔을 딛고 견뎌왔던 사람. 쉽지 않은 삶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를 통제해 왔던 나 같은 사람. 삶은 아픔과 고통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힘든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정말 무소의 뿔처럼 혼자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자기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도 무디다. 어쩌면 ‘나도 다 이겨내 왔으니 너도 다 이겨내거라’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거울을 보듯이 내 모습이 반사되어 돌아왔다. 마음이 쓰라렸다. 내 이런 성격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겠구나 생각했다.
그다음으로 힘들었던 반응은 무조건 괜찮아진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암’이라는 한 글자의 무게는 참 무겁다. 피라미드식으로 스트레스의 위계를 나눈다면, 아마 상위에 위치할 것이다. 이 스트레스 자극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나의 암 소식은 어떤 이의 건강불안을 폭발하게 만들었다. 그 사람은 나의 상태와 기분을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쉬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 말했다. 암에 걸린 선배, 친구,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다 깨끗하게 완치되었고 지금은 훨씬 더 건강하다고 했다.
그 사람은 평소에도 건강에 매우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다. 유기농 음식을 챙겨 먹고 사소한 신체 증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사실 그 말은 나를 위한 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불안을 낮추기 위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문제가 생기면 불안에 떨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고, 다 잘 될 거라고 막연히 낙관하지도 않는다.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다(MBTI로 말하면 T다). 무조건 나아질 거라는 말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말이 불편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밉거나 원망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듯이 그들이 살아온 방식은 그들이 그렇게 반응하도록 만들었다. 건강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아픔이 과거에 있었을지도 모르고, 겉으로 보이는 표현과는 다르게 걱정하는 마음은 클지도 모른다. 단지 그들의 다정함을 배우고, 또 내가 앞으로 위로해야 할 일들이 있을 때 사람들이 나에게 주었던 것들을 돌려주고 싶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주었으며, 내 안부에 대해 섬세하게 묻고 걱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암 때문에 휴학을 했다. 교수님께 휴학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써서 메일로 보냈다. 한 학기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휴학을 한다는 것이 꽤나 속상했다. 인생의 굵직한 계획을 세워두고 사는 사람이라 졸업이라는 목표지점 앞에서 크게 넘어진 느낌이었다. 누가 강요해서 다니는 대학원도 아닌데 자책감이 들었다. 속상한 마음에 두 번째 메일에서 사실은 암 때문이라고 밝혔다. 메일을 보자마자 지도교수님은 곧바로 전화를 주셨다.
“지혜야! 몸은 괜찮니? 얼마나 놀랐어!”
나는 교수님의 괜찮냐고 묻는 목소리를 듣고 처음으로 울컥했다. 어떤 말도 없이 내 몸과 마음에 대해 먼저 물어봐 주신 그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고는 최근에 친구분이 같은 암으로 수술을 받았다며 친구분에게 이것저것 물어봤으니 좀 적어보라고 하셨다. 진료협력지원 사업이 있다는 것도 교수님 덕분에 알게 되었다.
갑상선암은 최대한 수술을 빨리 하는 것이 좋다더라.
병원은 좀 알아봤니? 어디가 유명하다던데. 최대한 찾아보고 믿음직스러운 곳에서 수술하는게 좋겠구나.
혹시 모르니 직접 병원에 예약하지 말고 건강검진 받았던 병원에 부탁을 한 번 해보렴.
건강이 최우선이니 학교는 걱정 말고 푹 쉬는게 좋겠다.
우리 교수님은 아주 꼼꼼하시다. 실험과 연구를 하려면 그래야 한다. 배우는 입장에서 그 꼼꼼함이 가끔은 버겁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애정으로 꽉 꽉 채워진 굉장히 밀도 높은 다정함으로 느껴졌다.
한 살 어린 동생이자 나의 친구는 정기적으로 연락을 준다. 날씨가 참 좋다거나 밥 잘 먹으라는 사소한 인사말을 남겨 준다. 학교 선배인 언니는 잘 먹어야 한다며 비싼 한우를 사줬다. 언니는 큰 수술을 앞둔 지인들에게 언제나 고기를 먹인다고 했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은 내 컨디션이 괜찮은지 항상 걱정해 주시고 점심을 먹자마자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들어가서 쉬라고 하신다. 어떤 이는 전화로 안부를 물어봐 주고, 어떤 이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고마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얼굴을 뵙고 말씀드리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서 어머님과 아버님께는 가장 마지막에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시어머님은 암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당신 아들에게 아내 속 썩이지 말라고 당부하시며 며느리의 건강만이 당신의 소원이라고 하셨다. 항암에 좋다는 음식도 매번 신랑 편에 보내주신다. 평소에도 항상 바쁜 며느리를 이해해주셨는데 마음의 짐만 얹어드린 것 같아서 죄송할 뿐이다.
몇몇 분들은 내 글을 보면 내가 상당히 방어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랑받는 것에 서툴다. 뭐든지 잘 해내야 사랑을 받고, 강해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나의 뿌리 깊은 신념이기도 하다. 주는 것도 서툴러서 차라리 안 받고 안 주는게 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나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산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몇 번이나 펑펑 울었다. 몸이 저릿할 정도로 얼었던 마음이 녹는 것 같았다. 내가 받은 수많은 위로들이 너무도 따뜻했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