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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혜 Jun 20. 2023

당신의 주변에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암환자의 가족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아주 다행히도 나는 죽음과 직결되는 암은 아니었고, 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중기를 넘어선 암으로 고통받고 있다. 특히 신체적 통증은 삶의 질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학적 치료가 일차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치료가 가능하다고 해도 암이라는 것은 진단을 받는 순간부터 강한 스트레스 사건에 노출되는 것이며, 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이 경험하는 신체적, 심리적 어려움은 감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의 정서적 지지는 환자에게 큰 위안이 되며, 희망을 갖도록 함께 견뎌주는 것이 필요하다.


암환자의 감정에 따라 반응해 주세요.

우울 단계에 있을 때 나에게 묻는 안부 인사조차 나는 버거웠다. 만약 당신의 주변에 암으로 아픈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감정을 조금만 섬세하게 관찰해 주고 배려해 주길 바란다. 암에 걸렸다고 모든 것을 이해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감정이 강하게 휘몰아칠 때가 있고,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좌절감이 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감정이 갑작스럽게 변한다. 몇 시간 만해도 ‘다 괜찮아! 이 정도라서 얼마나 다행이야! 이참에 푹 쉬고 잘 됐어! 잘 됐어!’라고 했던 내가 갑자기 신랑에게 ‘왜 아무렇지 않은 일인 것처럼 받아들이냐’라며 서운하며 화를 냈다. 그러고는 또 곧바로 자책감을 느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신랑을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려고 하는 행동이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 평온했을 때, 내가 그나마 마음의 동요가 덜 할 때 신랑에게 부탁을 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갑자기 변하니 힘들겠지만 당분간만 내 기분에 맞춰 반응해 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신랑은 내가 분노 단계에 있을 때 같이 화를 내주었고, 우울 단계에 있을 때는 함께 걱정해 주었다. 감정선에 따라 반응해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신랑에게 위로를 받는 것 같았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고 느껴졌다. 가족들은 암환자의 널뛰는 감정 기복에 혼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부디 암 환자들이 경험하는 감정들을 단순히 무시하거나 비난하지 않기를 부탁드린다. 수용의 단계로 가는 길이라고 이해하며 함께 해주는 것은 암환자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힘들 땐 누구나 좋지 않은 선택을 하지요.

암은 극심한 스트레스 사건이다. 그래서 극도로 예민해지고, 친절도 간섭으로 오해하며, 갑자기 모든 것을 비관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심한 경우, 자살시도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실제로 암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은 환자들의 성격이 달라졌다고 보고한다. 스트레스로 인한 감정의 변화인데, 이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예전과 달라진 모습이 낯선 것이다. 암은 신체적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동반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불안은 주의를 협소하게 만든다. 불안해지면 평소에는 중요하게 신경쓰던 일들도 불필요한 일이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직장이나 대인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냥 자려고만 하고, 술을 마시고 싸우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괜히 짜증을 내고, 가족이나 친구들도 귀찮아지는 등의 경미한 행동의 변화를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이런 행동의 변화는 스트레스가 완화되면서 다시 정상 범위로 돌아온다. 하지만 암은 다르다.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스트레스보다 더 강력할 뿐만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며, 치료 이후에도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지속적인 스트레스이다.


모든 일은 연속적이고, 계속해서 한 사람이 겪어야 한다. 암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힘든 수술을 견뎌내고, 회복을 위해 힘써야 하는 그 모든 일은 암을 경험하는 당사자가 헤쳐가야 할 일이다. 그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성격이 변했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을 이해하는 일이 조금은 더 편해질지도 모른다.


함께 암을 마주하세요.

현대의학이 발전하면서 암의 치료와 생존율도 증가했다. 의학적 치료가 일차적으로 중요하지만, 환자와 가족들이 치료 과정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지속하기 위해서는 심리사회적 개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정서적 지지와 위안을 제공하고, 이완기법을 비롯한 스트레스 대처방법을 습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이완기법은 환자들의 심리적 통증과 불안감을 감소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각자 나름대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고 수용하는 과정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를 갖게 한다. 죽음은 암환자의 심리적 개입에서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주제이다. 따라서 이후에 조금 더 자세히 기술하고자 한다. 일부 호스피스에서는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임상심리사가 고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심리학적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대부분의 환자들은 일반 병원을 통원하면서 치료를 받기 때문에 심리적 도움을 받기란 실제로 어렵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지와 공감을 통해 가족들과 친구들도 그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개입하는 것이 사실 제일 좋다. 다음 글에서 말하겠지만 암환자의 가족들도 만만치 않은 고통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지 못할 때, 도움이 되는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심리교육은 심리학적 개입의 가장 초기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암의 특성과 치료방법, 그리고 치료 부작용에 대한 일종의 건강교육이다. 암환자뿐만 아니라 ADHD, 자폐증, 조현병, 치매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정신장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로 교육을 받지 못할 때 교육적 효과를 내는 방법이 있다. 환자와 가족들이 함께 의료진에게 암에 대한 정보와 앞으로의 치료 방향을 최대한 자세하게 듣는 것이다. 이때,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을 무분별하게 습득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정보와 사실을 듣는 것만으로도 환자가 앞으로 경험할 과정과 그에 따른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암환자가 경험하는 일반적인 감정들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불안은 모호함에서 출발한다. 실체를 모를수록 우리는 더 두려워한다. 나는 신랑과 갑상선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증상과 예후와 수술 방법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수술 후 부작용에 대해서도 말했다. 수술 이후에 임신을 계획하고 있던지라 혹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하지만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나서도 임신한 여성들이 많았고, 호르몬 수치를 관찰하면서 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전혀 어려울 것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잠에서 어렴풋이 깨어 창문을 봤더니 어떤 형체가 움직인다. 불안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용기를 내어 창문을 연다. 어둠에 가려진 형체가 사실은 창밖의 나뭇잎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안도하고 다시 잠을 청할 수 있다. 암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는 최고의 방법이기도 하다. 암에 대해 오해했던 부분은 수정하고, 한 단계 나아가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할 수 있다. 교육적 효과를 위해서는 환자와 가족들이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도 같이 들어보니 정말 힘든 과정인 것 같아. 많이 힘들겠지만 내가 너의 곁에 있어줄게.”



라는 한마디가 사랑하는 당신의 가족에게 분명 용기와 희망을 줄 것이다. <겨울왕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Fixer Upper' 노래의 가사를 곱씹으며 암에 마주하는 모든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We're only saying that love's a force That's powerful and strange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사랑의 힘은 강력하고 신비롭다는 거야

People make bad choices if they're mad or scared, or stressed

사람은 두렵거나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좋지 않은 선택을 하고는 하지

Throw a little love their way

사랑을 베풀어 봐

And you'll bring out their best

그들의 최고의 모습을 끌어내도록

True love brings out their best

진실한 사랑은 그들의 최고의 모습을 끌어내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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