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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혜 Jul 18. 2023

당신의 암을 함께 버텨주는 사람이 있다면

암환자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아동기를 걸쳐 청소년기를 지나 형성된 성격은 성인기 이후 잘 변하지 않는다. 심리학에서 성격이 변하기 위한 조건은 두 가지로 첫 번째는 큰 스트레스 사건을 경험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상담을 통한 성격의 재구조화이다. 그런 측면에서 암은 삶의 의미와 목표를 변화시키고, 개인의 가치관을 바꾸게 하는 계기가 되는 스트레스 사건임이 분명하다.


암을 경험하는 당사자가 가장 고통스럽겠지만, 그 과정을 함께 경험하는 가족 역시 환자만큼 강한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특히 중기와 말기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곁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돌봄 가족들은 ‘숨은 환자’라고 불릴 정도로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을 경험한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내 감정이 요동칠 때 신랑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내가 걱정하면 함께 걱정해 주고, 분노하면 함께 분노해 주길 바랬다. 신랑을 최선을 다해 나의 감정선을 따라와 주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신랑의 감정은 내 감정만큼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꿈을 자주 꾸는 신랑은 내가 불치병에 걸려 죽는다는 꿈을 며칠 내내 꿨다.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에 일을 하면서 혼자 울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 주변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노력하고 있을지 모른다. 불안한 마음을 혼자 감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암은 죽음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가족들 또한 강한 충격과 불안을 경험한다. 특히 암 환자를 곁에서 가장 밀접하게 돌보는 가족의 고통은 감히 말할 수 없다. 중기가 넘어가는 암은 장기간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역할은 대부분 가족들의 몫이 된다.


돌봄의 역할을 하는 가족들은 정서적 소진과 신체적 소진을 경험하고, 동시에 역할의 축소와 변화를 겪는다. 특히 암으로 힘들어하는 환자를 보면서 강한 양가감정을 느낀다. 심한 통증 때문에 점점 예민해지고 화를 내는 환자를 보면서 미워하는 마음이 드는 동시에 죄책감을 느낀다. 환자를 원망하고 싶지만, 나쁜 마음을 먹은 스스로에게 실망을 하기도 한다. 치료를 받으며 호전되는 환자를 보고 희망을 가졌다가도 또다시 악화되는 모습으로 인해 좌절감과 무기력감을 느낀다. 고된 돌봄의 역할로 인한 자연스러운 감정임에도 보호자들은 감정의 소용돌이로 정서적 소진을 겪는다.


또한 오랜 간병은 그들의 역할을 앗아가기도 한다. 가정에서의 역할과 사회에서의 역할이 간병인으로 한정되면서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기도 한다. 끝이 보이지 않고 쉼 없이 반복되는 돌봄은 불면증이나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부분 한 명의 가족이 돌봄을 도맡아 하는데, 몸과 마음이 약해진 상태에서 환자들은 가장 믿을 수 있고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만 자신의 돌봄을 맡기려고 할 때가 많아서 돌봄 가족들은 병원을 나가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돌봄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된다. 간병의 역할은 잠시 접어두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여행을 가거나 푹 자는 것만으로도 환기가 되기 때문이다.




보호자들은 가족의 도리를 넘어서 인간의 도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리는 거대한 희생이나 헌신이 아니라 길을 가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선의를 베푸는 것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인간의 타고난 선(善)이라고 생각한다. 평생을 투닥거리며 마음을 썩힌 배우자가 암에 걸렸을 때에도 사람들은 기꺼이 돌보는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나의 어려움을 함께 견뎌주고 버텨주는 일을 결코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을 잊지 않아야 한다. 강한 통증을 견디는 상황만으로도 힘들어서 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더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가족들은 미안하고 고맙다는 진심 어린 한 마디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 말을 듣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가족들은 당신의 곁에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신랑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2번, 고맙다는 말은 8번 정도로 고맙다는 말을 월등히 많이 했다.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 신랑은 미안해하지 말라며 왠지 둘 다 슬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은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감사하게 암을 제거하고 건강을 회복했더라도 우리는 재발하지 않기 위해 또는 더욱 건강해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삶은 드라마처럼 매 순간 엔딩이 없다. 끊임없이 이어진다. 환자들의 삶이 계속되듯이 가족들 또한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암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 역시 커다랗게 나버린 구멍을 메꾸려 애쓰며 살아가야 한다.



죽음

암이라는 단어는 죽음을 연상시킨다. 사람마다 그 의미는 다를 수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 죽음이다.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질적분석을 실시한 연구에서 돌봄 가족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을 못 잔다고도 한다. 밤에 찾아오는 어둠이 죽음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그들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해가 뜨고서야 잠을 자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환자들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남은 가족들은 혹시 자신이 간병에 소홀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자책한다. 서운하고 원망스러웠던 감정을 환자에게 말하지 못한 채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은 환자를 떠나보내는 것을 어렵게 한다. ‘이제야 간병을 하면서 어머니에게 효도할 수 있는데’, ‘아직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데’, ‘아직도 딸에게 해줄 것이 많은데’라는 생각들은 후회와 미련을 남긴다. 환자의 생이 조금이라도 더 지속되길 바라고, 마주한 죽음에 직면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상실은 애도라는 정상적인 감정 반응으로 이어지지만, 마음속에 남아있는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은 애도를 넘어 우울증의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가능하다면 가족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안다고 말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화해와 용서를 하길 바란다. 가족의 인연으로 함께 걸어온 과거에 감사함을 표현하고, 서로 주고받은 상처를 풀어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이 과정은 암을 겪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죽음을 앞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죽음은 누구나 경험하는 삶의 마지막 과정이다. 우리는 그 과정을 함께 해왔다. 우리는 서로를 깊이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서운함과 미움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음을 안다. 우리는 서로의 영원한 안녕을 바란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당신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마주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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