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에서 만난 은인
초진 날짜가 다가왔다. 진료 시간은 오전 8시 반이었다. 진료를 보고 곧바로 수술 전에 필요한 검사들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서울까지는 기차로 2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좋은 컨디션으로 검사를 받고 싶어서 전날에 미리 올라가기로 했다. 혹시나 두고 가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 몇 번이나 서류를 꼼꼼하게 챙겼다.
병원과 기차역이 최대한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신랑을 비롯하여 가족들은 병원에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매사에 효율성을 따지고, 또 굉장히 독립적인 성격이다. 물론 가족들이 함께 있어 준다면 더 편하고 덜 무섭겠지만, 검사를 받지도 않는데 나 때문에 와서 오래 기다린다는 것이 미안하고 불편했다. 괜찮다며 혼자 잘 다녀오겠다며 씩씩하게 말하고는 기차에 올랐다.
서울에 도착했다. 숙소에 가기 위해 지하철에 올라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짐이 별로 없네. 서울에 올 때마다 바리바리 짐을 들고 다니는 게 불편했는데 이번에는 가방 하나만 들고 왔잖아.
‘…. 그런데 왜 짐이 없지?’
갑자기 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는 부엌 싱크대 위에 고이 올려둔 봉투가 떠올랐다. 소견서를 비롯해서 조직검사 슬라이드와 진료 기록이 담겨있는 CD를 담아두었던 그 봉투 말이다. 맙소사. 어쩐지 짐이 없더라니.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데 이런 일을 벌이다니. 스스로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렵게 잡은 진료를 취소할 수는 없었다. 곧바로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신랑은 고속버스 택배를 알아봐 주었는데 하필 6시까지만 접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6시에 신랑이 퇴근하고 가면 이미 접수처 문은 닫혀있을 것이다. 고민하던 신랑은 자기가 기차역에 가서 직접 부탁하겠다고 했고, 우리는 호의적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분에게 접촉하기로 계획했다.
신랑은 열차 시간에 맞춰 역으로 갔다. 그리고 봉투가 든 쇼핑백을 들고 수상한 사람처럼 사람들 곁을 얼쩡거렸다.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거의 기차에 오른 상태였다. 신랑은 마음이 다급해져서 우리가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한 남성분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기 제가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요! 제 와이프가 서울 병원에 갔는데 서류를 다 두고 갔거든요. 진료를 봐야 하는데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 좀 전달...”
“아. 주세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제가 와이프에게 말해두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 걱정 마세요.”
신랑의 걱정과는 다르게 남성분은 아주 쿨하게 서류가 든 쇼핑백을 받아 떠나셨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그 남성분에게 문자를 보냈다. 번거로운 일을 부탁드려 정말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기차역에서 미리 기다리겠다고 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기차역에 도착했다. 신랑이 말해 준 인상착의를 생각하며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앞을 기웃거렸다.
아이보리 색의 바지와 남색 셔츠를 입고, 검은색 백팩을 메고, 빨간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다는 남성분을 드디어 만났다. 왠지 IT 업계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것 같은 분이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사례를 하려고 했는데 너무 급하게 오느라 현금도 인출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갑에 이만 오천원이 전부였다. 이런 바보가.
“감사합니다! 제가 드릴 것은 없고 이거라도 받아 주세요!”
“제가 더 돈 많이 벌걸요(웃음). 괜찮습니다.”
“아니요! 안 받으시면 받으실 때까지 쫓아갈 거예요. 치킨 한 마리 드신다고 생각하시고 제발 받아 주세요!!!”
그 와중에 (연봉이 궁금) 치킨 이야기는 왜 했을까. 남성분은 강제로 돈을 받아 들고는 그대로 뒤돌아 가셨다. 이 쿨내 나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은 뭐지? 얼떨떨하게 돌아오면서 다시 문자를 보내려던 참에 먼저 남성분에게 문자가 왔다.
아. 그랬구나. 신기하게도 신랑이 이 남성분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어쩐지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선뜻 도와주시더라. 하마터면 어디가 어떻게 아프시냐고, 몸은 괜찮으신 거냐고 물을 뻔했다. 더 귀찮게 해드리기 싫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마무리했다. 따뜻한 마음으로 도와주신 그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정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사람들의 마음은 연결되어 있는 걸까. 신랑이 어떻게 같은 아픔을 가진 분을 선택한 건지 아직도 미스터리이다. 독립성과 효율성을 따지던 나는 결국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받아야 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나는 자주 잊고 산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일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도 괜찮다는 것을 배운다. 그들에게 기대어 의지하는 것이 결코 나약한 것이 아님을 말이다.
다음날 신랑은 개선장군처럼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엄청 떨렸다고 한다. 또 어쩜 그렇게 자기가 좋은 분을 선택했는지 신기하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모습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개선장군이 맞지. 언제나 내 슈퍼맨인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