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품집 19

by 헤비

예전에는 안 보는 스포츠가 없었다. 야구, 농구, 축구, 배구처럼 흔히 말하는 4대 스포츠가 아니더래도 테니스, 배드민턴, 골프같은 경기들도 곧잘 틀어놓곤 했었다. 그런데 이젠 스포츠를 거의 보지 않는다. 요즘은 NBA, 그리고 아주 가끔 미식축구를 그것도 하이라이트나 보는 수준이지만 막상 그것도 챙겨본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이런 말을 하는 게 조금은 용기가 필요한 일처럼 느껴지는데) 국민스포츠라 할 수 있는 '국대축구'에도 관심이 없다. 어쩌다보니 요즘 좀 시끌시끌한 걸로 아는데 개인적으론 꽤 심드렁하다. 국대축구는 스케쥴이나 스코어를 찾아볼 필요도 없다. 경기의 유무와 그 결과까지 어디선가 다 듣게 되어있으니까. 이제 정말 챙겨보는 건 오로지 야구밖에 없다.


내가 축구에 (특히 국대축구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 눈이 동그래지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꽤 많다). 그러며 축구의 대중성과 세계성에 대해 열변을 터뜨리는 경우를 가끔 본다. 그걸 몰라서는 아니다. 축구가 재미없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축구가 어려울 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축구선수는 메시다. 메시가 하는 축구는 나같은 문외한이 봐도 '지금 내가 뭔가 대단한 걸 보고 있는 거 같아.'란 느낌이 든다. 그 반대의 의미로 다들 해버지라 극찬하고, 그의 동료들이 늘 좋은 선수라고 평가하는 박지성 같은 경우가 날 좌절하게 만든다. 경기를 봐도 그가 열심히 하는 건 어느정도 느껴지는데 도저히 왜 좋은 선수인가를 알 수가 없다. 이게 박지성이 못했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내가 보는 눈이 그만큼 없다는 거다.


축구는 경기장 전체의 유기적인 흐름을 읽어야 하는 스포츠인데다가 순간 순간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저 '골 터졌으니 재밌다' 수준 이상의 긴박감을 즐기려면 확실히 전문적인 눈이 필요하지 싶다. 문제는 내게 그 눈이 없다는 거다. 그러니 메시 정도가 아니면 축구의 아름다움을 볼 수가 없다. 골이 터질 때까지 아무런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축구의 문제가 아니라 확실히 내 문제다.


반대로 내가 야구를 좋아한다고 하면 "야구는 룰이 너무 복잡해"란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 실제로 맞는게, 야구는 때로 심판도 룰을 헷갈려한다. 심지어 한 팀을 지도하는 감독(대부분 선수출신)이라고 해도 룰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일례로 예전 기아타이거즈 김기태 감독은 2015년 일명 '러브투게더 시프트'라는 걸 창조해냈는데, 포수가 못 미더웠는지 투수가 볼을 던지기 전 3루수를 포수 뒤로 보냈다. 이건 '인플레이 중에는 투수와 포수를 제외한 모든 야수는 페어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야 한다'는 룰 위반이어서 감독의 지시를 들었던 당시 이범호 선수(며칠 전 타이거즈 감독이 되었다!!! 나랑 동갑내기가 어느새 야구감독이라니!!! 뭔가 여러방향에서 얻어맞는 느낌이긴 한데...)조차 속으로 '이게 맞나?' 하며 걸어갔었다는 얘길 한 적이 있다.


이미 앞 이야기 속에도 야구를 모르는 사람은 어리둥절할 '인플레이' '투수' '포수' '야수' '페어지역' 같은 외계어들이 쏟아졌다. 야구는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 접근하기에는 용어도 복잡하고, 룰도 어렵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야구팬들끼리 룰북을 뒤져가며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심지어 하나의 상황에 어떤 룰을 적용하는 게 맞는 건지도 헷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확실히 축구보다는 야구가 쉽다고 생각한다. 야구는 입문을 위해 숙지해야 할 룰의 양이 많아서 그렇지, 기본룰을 어느정도 (절대 전부가 아니라) 습득하면 상황을 이해하기가 무척 편하다. 심지어 영상을 안봐도 된다. 야구에는 기록지라는 게 있어서 상황상황을 문자로 표기할 수가 있는데, 야구를 어느정도 아는 사람이면 이것만 봐도 충분히 머릿속에서 상황을 구현해 낼 수가 있다. 실제로 기록지를 보고 영상을 보면 상황이 내가 그렸던 그림과 무척 비슷하게 전개된다. 스스로를 기록의 민족이라 부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만큼 잘 맞는 스포츠가 없다.


야구는 상황과 상황 사이에 시간이 길어서 지루하다고 하는 경우도 많은데, 조금만 익숙해지면 결코 그렇지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야구는 매 상황에 따라 선수가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객관식 문제처럼 선택지가 주어진다. 어느정도 야구가 보인다는 건 매 상황마다 머릿속에 자신만의 선택지들이 자연스럽게 쭉 나열된다는 뜻이다.


예를들어, 1점 차로 뒤진 팀의 공격이 돌아왔고 무사에 주자가 1루에 있는 상황에서 2번 타자가 들어섰다.


이렇게 문제가 나오면 일단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따라 나온다.


1) 타자가 마음껏 타격을 하게 해서 안타나 그 이상의 결과를 낸다.

2) 무조건 1루 주자를 안전하게 진루시키기 위해 희생번트를 댄다.

3) 둘 다 죽는 상황을 막기 위해 주자를 뛰게 하고 타자는 무조건 볼을 맞추는 작전을 건다.


이 중 각자 생각하는 정답이 각자 다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상황이 더 추가된다. 현재가 경기 초반인지 후반인지, 주자의 주력, 나와있는 타자보다 더 잘 치는 타자를 선택할 수 있는지 여부, 뒤에 나올 타자의 컨디션, 현재 투수의 컨디션, 포수의 송구능력 등등... 이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속 생각하면서 봐야 하는 스포츠라서 지루할 겨를이 없다. 공격만이 아니라 수비에서도 마찬가지라서 볼카운트 하나하나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상황이 뒤바뀐다. 2사 만루 풀카운트에서 강타자의 몸쪽 무릎으로 꽂히는 속구를 보면 그야말로 온 몸에 전율이 돈다.


야구를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건 어마어마한 '의외성'이다. 물론 점점 과학이 발달해감에 따라 줄어들고 있는 영역이긴 하지만, 실제로 날아오는 공을 둥근 배트로 때려서 원하는 어딘가로 날려보낸다는 게 운이 아닌 오롯한 실력만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잘 맞은 공도 수비수 앞으로 가면 아웃이지만 이상하게 맞은 공도 수비가 없는 곳만 잘 찾아가면 안타가 된다. 투수가 던져놓고 자기도 모르게 '큰일났다' 싶은 공도 타자가 배트를 제 타이밍에 내지 못하면 그대로 스트라이크가 된다. 심지어 아무 것도 아닌데 멍하니 서 있던 외야수 앞에 공이 뚝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집'이란 단편소설에는 그가 지었다는 '우익수'라는 시가 실려있는데,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어봤을 심금을 울리는 순간이 너무 적절한 문체로 표현되어 있다.


우익수


그 5월의 오후, 너는

진구 구장의 우익 수비를 맡고 있다.

산케이 아톰스 우익수.

그것이 너의 직업이다.

나는 우익 외야석 뒤쪽에서

조금 미지근해진 맥주를 마시고 있다.

으레 그러듯이.

상대 팀 타자가 우익수 플라이를 날린다.

단순한 팝플라이.

높이 올라가고, 속도도 없다.

바람도 잔잔하다.

해도 눈부시지 않다.

별거 아니다.

너는 양손을 가볍게 올리고

3미터쯤 전진한다.

오케이.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볼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볼은

정확히 자로 잰 듯

너의 딱 3미터 뒤에 떨어진다.

우주의 한구석을 나무망치로 가볍게 때린 것처럼

콩, 하고 메마른 소리를 내면서.

나는 생각한다.

어째서 이런 팀을 나는

응원하게 됐을까

그것이야말로 뭐랄까

우주 규모의 수수께끼다.


한국프로야구는 솔직히 수준으로 따지면 어느 순간 이후부턴가 확실히 일본보다 한참 뒤떨어져 버렸는데, 야구가 재미있는 건 그 수준과는 상관없이 즐겁다는데 있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난 MLB보다 KBO야구가 더 재미있다. 왜냐? 못하니까 의외성이 더 크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느낀 저 우주 규모의 수수께끼를 KBO팬은 모두가 매경기 절감한다.


"내가 왜 이 팀을 응원하고 있을까?"


이건 본디 철학에서나 다룰법한 문제라, 어떤 스포츠를 즐기면서 저런 문제와 부딪히는 경험을 한다는 게 분명 인간을 성숙하게 만들거라 난 생각한다.


게다가 한국프로야구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놀라운 응원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저 북녘에 집단체조가 있으면 이쪽에는 야구장 응원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난 애석하게도 작년에는 야구장을 한 번 밖에 못 갔는데, 그때 날 중심으로 일곱방향(한쪽은 내 친구들이 앉아있었으니까)이 놀랍게도 다 젊은 여성팬이었다. 얼추 앞, 옆, 뒤가 한 팀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들은 경기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재잘거리며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경기가 시작되고 라인업송이 울려퍼지기 시작할 때부터 절도있게 응원봉을 흔들어대며 마치 모두가 한 무리인 것처럼 노랠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그런 '프로응원러'들에 둘러싸여있다보니 난 그냥 '타이거즈 팬 호소인'쯤으로 전락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타이거즈 여성팬 분들을 보니 이 팀의 미래가 밝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이거즈는 여성팬들을 부디 우대해주길 바란다.)


한번도 도박장이나 카지노 같은 곳을 가본 적이 없으니 이게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야구장에 간다는 건 도박을 하러 들어서는 것이나 진배 없지 싶다.


돈을 낸다. 결과에 따라 스트레스를 풀거나 도리어 더 받고 돌아온다. 아직까지 내 승률은 나쁘지 않다. 그날도 생각보다 쉽게 이기고 돌아왔다. 극히 드문 일로 내가 미리 티켓을 끊고 친구들을 반강제로 끌고 갔던 길이기에 다들 '헤비 덕분에'를 외치며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반대로 졌으면 돈도 쓰고 욕도 먹었을 테다.


모든 스포츠에 그런 측면이 있겠으나 야구보다 더 인생을 닮은 스포츠는 없다 확신한다. 오죽하면 야구는 '실패의 스포츠'라고 한다. 잘 치는 타자도 타격 성공을 40퍼센트 이상 해내지 못하고, 많이 이기는 팀도 60퍼센트 이상을 이기는 경우가 드물다. 보통 타자는 네다섯 번 시도하면 한 번 치는 거고, 팀은 승률을 반반으로 맞춰보려고 갖은 애를 쓴다. 투수는 '맞으려고' 던지고, 타자는 '죽으려고' 타석에 선다. KBO기준으로 일 년이면 144경기를 한다. 팬들은 풀이 죽은 선수들에게 애써 목소리 높여 외친다.


"오늘 져도 내일이 있잖냐."


우리나라 야구 해설위원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하일성 해설위원은 경기중에 늘 이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야구의 본질을 말하는 명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야구 몰라요."


당신이 전문가니까 모르는 사람들에게 야구를 해설해달라고 마이크를 쥐어줬는데, 그런 사람이 웃으며 '모르겠다'를 외치는 스포츠라니. 이러니 내가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보는 내내 마음을 졸이다가 결국 역전 적시타를 얻어맞으면 화가 나서 모니터를 꺼버리고는 '내가 이번 시즌 야구는 오늘로 끊는다.' '내일 또 야구를 보면 내가 인간이 아니다.'를 외쳐놓고도 내일이 오면 다시 시간에 맞춰 휴대폰을 켜거나 모니터 앞에 앉는다. 그것이 야구고 그것이 인생이다.


'야구 몰라요'도 좋지만,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야구 최고의 명언은 이게 아닐까 싶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요기 베라 1925~2015, 뉴욕 양키즈 영구결번 포수 및 감독, 1972년 명예의 전당 헌액자]


오늘 실책을 해도 내일이 온다. 오늘 17점 차로 졌어도 내일 1점차로 이기면 너와 난 게임스코어 1대 1, 다시 한판 더 승부를 벌일 수 있다. 만약 올해의 야구가 영 희망이 안보이고 아예 끝났다 한들 또 다시 다음 시즌이 온다. 이번 시즌 패전처리에 고작 대주자 대수비에 불과했어도 다음 시즌엔 다음의 기회가 올 거다.


그래,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야구도 모르고, 인생도 모른다. 몰라서 다행이다. 그래서 웃으면서 우린 다음을 기다릴 수 있다. 어이없게 지면 또 화를 내고 소릴 지르겠지만, 그래서 내가 왜 이런 팀을 응원한다고 애를 쓰고 있나 싶겠지만, 그래도 그런 야구 덕분에, 그런 인생 덕분에 웃는 날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면서 내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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