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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 Nov 18. 2024

새 술을 자꾸 헌 부대에 담아서는 안된다

헤비의 프레이밍 5

프리미어 12가 끝났다. 우리 대표팀은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충격을 받고 있진 않다. 워낙 기대치가 낮았던 면도 있고, 국제대회 성적이 안 좋을 때마다 KBO리그가 당장이라도 망할 것처럼 목소릴 높이는 설레발에 익숙해진 탓도 있다.


'조만간 야구 망한다'는 말은 고리타분한 좌우놀이만큼이나 그럴싸한 근거가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실상은 미신적이다. 물론 언젠가 야구는 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엄청나게 낮아진 출산율로 인해 팀 숫자를 유지할 수 없을만큼 신인선수 공급이 부족해진다거나, 우리나라 경제의 하강국면이 예상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며 사회 전반에 소비 한파가 몰아닥친다거나, 야구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유희수단이 등장한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당장 국제대회 성적이 나빠진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닌데 올해 KBO는 최다관중동원에 성공했다. 이렇게 가정해보자. 우리나라가 다가올 국제대회 3개를 연속우승한다. 대신 야구장에 외부음식을 반입하지 못하고, 동시에 음주는 완전금지된다. 국제대회 성적이 좋으니 야구 인기가 올라갈까? 그럴리가. 야구장에서 저도수 음주가 금지되면 아마 외야에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던 시절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KBO의 흥행요인 중 '야구 실력'이야말로 가장 인기에 영향을 덜 주는 부분일수도 있다. 이 이야기만큼은 미리 짚고 넘어가자. 야구가 망할까봐 국제대회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KBO는 2026년 3월에 있을 WBC 대회를 목표로 대표팀의 세대교체를 이루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런 면에서 이번 프리미어12 대회는 나름 수확이 있었다. 야수진에서는 중심타선에 들어갈만한 구자욱과 강백호,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이정후나 김하성 같은 주요 선수들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김도영, 박성한 같은 선수들이 꽤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투수진도 문동주나 원태인 같은 선수들이 없다보니 선발진의 구멍이 크게 드러나긴 했지만 새로운 국대 마무리 박영현을 중심으로 한 불펜진의 단단함도 괜찮았다.

도영아 니 땀시 살어야 (야구팬일동)

2026년이 되면 현재 신진급으로 평가받는 선수들의 경험치가 1년 더 쌓일 테고 자연스럽게 팀은 더 강해질 거라 본다.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겠으나 만약 안우진이 선발진의 한 축을 맡아준다고 하면 WBC 대표팀의 선수 면면만큼은 역대급으로 꾸려질 수 있다. 대표팀에 부상악령이 덮인다거나 하는 상황만 아니라면 충분히 4강 도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번 대회를 보니 나는 한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답이 나오질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구슬이 서말을 넘어 삼십 말이면 무엇하겠는가. 그걸 꿸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역량이 밑바닥인데. 방구석에서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는 나도 알고, 입중계를 하는 캐스터와 해설진도 아는 걸, 당장 감독만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던 장면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류중일 현 국가대표팀 감독은 2010년대 초반 삼성 라이온즈의 통합우승 4연패를 이끌었다. 그가 우리나라 야구 명감독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광은 늘 과거형이다. 현재를 살아가는데 있어 과거의 영광은 때론 짐이 되기도 한다.


이번 대회에서 개인적으로 물음표를 붙일 수 있는 장면들을 나열해보겠다.


              대만전 고영표 선발 기용 : 대만도 아시아권 야구다. 변칙투구폼에 낯설어하는 타자들이 아니다. 게다가 올해 고영표 선수는 예전 '고퀄스'라 불리던 시절과는 거리가 먼 성적을 거뒀다. 소속팀인 KT 위즈도 포스트시즌에서 고영표에게 전보다는 적은 롤을 부여했다.            

              대만전 김주원 선발 기용 : NC의 김주원은 올시즌 타율 0.252, OPS 0.750, 97안타, 9홈런, 49타점을 기록했다. 그에 비해 SSG 박성한은 타율 0.301, OPS 0.791, 147안타, 10홈런, 67타점을 기록했다. 전반적으로 박성한의 기록이 김주원보다 못한 부분이 없다. 하지만 대만전 선발은 김주원이었다.            

0대 4와 0대 6은 하늘과 땅 차이다. 최소한 2점은 고영표 탓이라 할 수가 없다

               대만전 고영표 교체시점 : 2회말 고영표가 흔들리며 2사 만루를 내주었다. 이 장면이 1번 교체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고영표는 교체되지 않았고 만루홈런을 맞았다. 늦었지만 여기서라도 교체되는 게 맞았는데 고영표는 계속 마운드 위에 남아있었고, 다시 후속타자에게 2루타를 맞는다. 마지막 교체타이밍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벤치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투런홈런을 맞고서야 고영표는 바뀌었다. 2회말에서만 세 번의 교체타이밍을 날리고, 이번 조별리그 가장 중요했던 경기도 날렸다. 이날 경기 후 류중일 감독은 고영표의 투구 내용에 대한 아쉬움을 말했지만, 야구구경은 관중석에서 하는 거지 덕아웃에서 감독 연봉 받으면서 하는 게 아니다.            

              일본전 최승용 교체시점 : 선발 최승용이 1회말을 무사히 넘겼고, 2회초 대표팀은 선취점을 얻어내며 기대 이상의 출발을 했다. 이 경기는 1점이라도 어떻게든 지켜내야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2사 2, 3루의 상황에서 감독은 이번에도 투수교체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적시타를 맞고 역전을 내 준 후 후속타자에게 내야안타를 맞은 다음에야 LG 트윈스 유영찬으로 투수교체가 이뤄진다. 이번에도 두발쯤 늦은 교체다. 게다가 2사 1, 2루와 2사 1루는 투수 입장에서는 하늘과 땅 차이의 부담감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곽도규는 올 시즌 첫 3연투를 대표팀에서 했다

              일본전 곽도규 교체시점 : 재역전에 성공하여 3대 2로 리드를 잡은 상황에서 5회말 시작과 함께 유영찬이 올라온다. LG에서 시즌 내 마무리를 뛰었던 투수가 2.2이닝을 소화해낸 후 내려갔고, 좌타자에 맞춰 등장한 투수는 KIA 타이거즈의 좌타 스페셜리스트 곽도규. 지난 대만전과 쿠바전에 모두 등판했기에 그는 이번 시즌 소속팀에서는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3연투를 하고 있다. 첫 타자를 잡아낸 그는 두 번째 왼손 타자에게 볼넷을 내준다. 3연투의 여파로 공이 무척 흔들리는 상황, 다시 한 번 투수교체 타이밍이다. 하지만 벤치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번 타자는 오른손이지만 다음 타자는 다시 왼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제구가 흔들린 곽도규는 2사 만루를 만들고 내려간다. 결국 바뀐 투수가 적시타를 맞고 3:4로 리드를 내주는 대표팀. 실질적으로 이번대회에서 탈락하는 순간이었다.            

고개를 숙일 사람은 덕아웃에 있다

              호주전 유영찬 교체시점 : 유영찬이 멀티이닝을 도전하고 있었다. 5회에 들어오자마자 볼이 높게 제구되기 시작하는 건 앞선 경기들에서 많은 투구를 이어온 여파임이 분명해보였다. 두번째 볼넷을 내준 시점부터 이대형 해설은 대놓고 교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벤치. 결국 유영찬은 만루를 만들고 내려오고 후속 투수가 올라와서 1실점으로 끊긴 했지만 경기의 흐름이 팽팽하게 다시 리셋되고 말았다.            


내가 보고 생각나는 장면들만 이 정도다. 이 장면들은 아무리 복기를 해봐도 도무지 감독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일년에 140경기 이상을 치르는 패넌트레이스에서 감독이 가져올 수 있는 기대승수를 많아야 3~5승 정도로 본다. 올 시즌 MVP를 탈 것이 유력한 KIA 타이거즈의 3루수 김도영이 oWAR(스탯티즈기준) 8.51임을 감안하면 솔직히 MVP급의 절반, 주전급 야수 한 명 수준의 기대승수인 셈이다. 하지만 감독의 역할은 눈에 보이는 기대승수보다 훨씬 크다. 왜냐? 감독이 승수를 벌어오지는 못해도 잃어버리게 만들기는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번 대회 대만전과 일본전에서 류중일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느슨한 판단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더 나은 결과를 얻지 않았을까? 실력에서 압도를 당해서 졌다는 느낌보다는 승부처에서 벤치가 가만히 주저앉아있다가 진 것 같아서 솔직히 더 기분이 나쁘다. 이 양반들이 이번 대회를 이길 생각이 있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다.




다시 말하거니와 KBO는 세대교체를 말했다. 이번 대표팀의 선수들은 나름의 희망을 보여줬다. 세대교체가 시급한 포지션은 아무리 봐도 감독과 코칭스태프다. 여기서 세대교체는 마냥 '나이가 어린' 감독을 선임하자는 게 아니다. 나름 KBO레전드 출신이라고 하는 선수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오래되기가 골동품 상점 구석에 놓인 자개장을 보는 기분이 들 때도 있으니까.


시대도 변하고 야구도 변한다.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도태가 무조건 나쁜 것인가? 그렇지 않다. 혼자 느끼고 생각하고 즐기기에 맞다면 오래된 것들은 다 취향일 뿐이다. 취향은 존중 받아야 옳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고, 제대로 된 정보 취합과 분석도 이뤄지지 않는 대표팀 운용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공부하고 계속 발전하는 지도자가 '젊은' 지도자다. 올시즌 한화 이글스에 김경문 감독이 중도 부임했을 때, 많은 한화 팬들이 어린 투수들의 혹사 문제를 걱정했지만 정작 한화는 단 한 번도 3연투를 하지 않은 유일한 팀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런 게 발전이고, 새로워지는 거다. '이름값'은 필요없다. '감독'이 필요하다. 그것도 새로운 야구의 흐름에 올라탈 수 있는, 계속 트렌드를 공부하고 상대를 연구하는 '젊은' 감독 말이다. WBC까지는 일 년 하고 약간의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KBO가 건설적인 피드백을 내놓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 첫 단추는 단언컨대 감독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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