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의 프레이밍 3
2025 KBO FA 시장이 열리고 계약 소식이 속속 들려오고 있다. 주말은 조용히 지나가겠거니 했는데 오늘(11월 10일)만해도 롯데 자이언츠가 자팀 소속 FA인 김원중과 구승민의 계약소식을 알렸다. FA 신청을 한 20명 중 7명의 계약이 완료되었으니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3 분의 1 정도의 선수가 계약서에 빠르게 사인을 마쳤다.
현재까지는 한화 이글스가 예상보다 큰 광폭행보를 보이며 KT 위즈의 FA 신청자 둘을 데리고 가는 바람에 두산 베어스가 유탄을 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한화가 진행한 FA 계약 규모가 예상치를 한참 뛰어넘었기 때문에 한동안 FA 시장 전체가 관망세로 돌아서지 않을까 했는데, 롯데가 빠르게 자팀 FA와 계약을 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또 다른 흐름을 만드는 분위기다. 워낙 심우준 '4년 50억'의 여파가 컸던 탓일까? 도리어 김원중의 '4년 54억'이 저렴해보이는 느낌마저 든다.
지난 글에서도 FA 시장에는 정가가 없고 싯가만 있다고 썼다. 그래서 "산 사람은 '적정가' 였다고 말하고, 놓친 사람은 '오버페이'라고 말한다."라고도 썼다. 그런데 이 말 자체가 워낙 정설이 되고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다 보니 FA 시장을 논하다보면 반대로 '오버페이는 없다'고 말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 말 끝에는 이런 말이 종종 따라붙는다. "어차피 윗 선에서 이번 해에 쓰라고 내려준 돈을 아낀다고 다음 해애 쓸 수 있는 거 아니니까 일단 다 쓰는 게 맞다." (이 논리의 끝은 '어차피 내 돈 아님. 오너그룹에서 알아서 주는 거 아님?'에 까지 가서 닿는다.)
솔직히 이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야구단의 최종 목표는 우승이고, 우승을 하지 못하게 되면 단장이나 감독은 책임을 지고 옷을 벗어야 한다. 나처럼 방구석에 앉아 야구를 '구경'하는 입장과 야구단이 '생업'인 입장은 아주 다르다. 우승을 위해 자신의 팀을 분석하고 자료를 만들어 윗선을 설득해서 재원을 마련하는 것 또한 프런트가 해야 할 중요 업무중 하나일 것이다. 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오버페이는 경계해야 한다. 오버페이를 해서 사들인 영입선수가 실패했을 시에 선수단에 전반적으로 미치는 악영항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2023 FA는 이른바 빅3 포수(양의지, 유강남, 박동원)가 동시에 풀렸기에 포수에 목말라 있던 팀들에게는 절호의 찬스라고 할 수 있었다. 2022년 세 선수의 성적을 보도록 하자.
양의지: 35세 시즌, 타율 0.283, OPS 0.860, 427타수 121안타 94타점 20홈런, wRC+ 141.5, 수비이닝 736.2 소화
유강남: 30세 시즌, 타율 0.255, OPS 0.677, 416타수 106안타 47타점 8홈런, wRC+ 95.7, 수비이닝 1008.1 소화
박동원: 32세 시즌, 타율 0.242, OPS 0.770, 385타수 93안타 57타점 18홈런, wRC+ 118.5, 수비이닝 865 소화
말이 빅3였지 양의지는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생산능력을 보여주는 타자였으므로 논외로 하기로 하고 직접 비교대상은 당연히 유강남과 박동원이었다. 강민호의 이적 이후 포수 포지션에서 골머리를 앓던 롯데는 유강남에게 4년 80억원의 거액을 안기며 주전포수 자리를 맡긴다. 그리고 롯데에게 주전포수를 빼앗긴 LG는 바로 기아에서 나온 포수 박동원과 4년 65억에 계약을 완료한다.
이때도 당연히 오버페이 논란이 있었는데, 롯데 측에서는 유강남의 수비와 이닝 소화 능력를 높게 평가하면서 전반적인 수비 안정화와 더불어 프레이밍을 통한 투수들의 스탯 상승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제 우리는 이 선택의 결과를 안다.
엄밀히 말하자면 2023 시즌을 앞두고 롯데가 잘못한 것이 무엇일까? 계속 포수를 보강했지만 성장하는 선수가 없었다. 그래서 포수를 사왔다. 주전유격수 실험에 번번히 실패했다. 그래서 유격수도 사왔다. 불펜진이 약하니 불펜과 선발을 오갈 수 있는 전천후 투수를 사왔다. 이 움직임의 방향성만 놓고 보면 문제가 될 게 전혀 없다. 타팀 팬으로서 봤을 때도 어찌되었든 롯데가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각오를 단단히 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방향이 그럴싸 했다 한들 모든 움직임이 다 용인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요즘들어 그런 기미가 많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보통 구단이 신임 감독을 선임하면 외부 FA 선수 영입을 하면서 취임 '선물'을 하는 게 일종의 관례와 같았다. 특히나 그 감독이 나름 명성과 커리어가 쌓여있는 '명장'의 경우엔 더욱 그랬다. 하지만 '명장' 김태형은 2024시즌을 앞두고 롯데 자이언츠 감독에 선임되면서 외부 FA 수혈을 받지 못했다. 도리어 쌓여있었던 고액 FA 선수를 교통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지난 글에 FA 신청 선수 목록을 정리하면서 나는 '심우준은 롯데에 어울리는 선수'라고 평했다. [1루 나승엽-2루 고승민-유격 심우준-3루 손호영]이면 10개구단 어디에도 밀리지 않는 내야 라인이 완성될 거라 봤다. 하지만 시장이 열리기 전 '윗선'이 외부 FA 수혈에 부정적이어서 롯데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왔는데, 이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새도 없이 한화가 심우준을 들고가버렸다.
만약 한화가 심우준을 안 데려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데 그리 생각해봐도 롯데는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게 오버페이의 부작용이다. 만약 프런트에 고액 FA를 영입한 단장이 남아있고, 그 단장과 맞설만한 커리어가 없는 감독이 있다고 치면 실패한 고액 FA 선수는 선수 순환의 동맥경화까지 일으킬 수도 있다. 롯데는 운좋게도 그런 최악의 상황만큼은 피한 셈이다
'오버페이'란 단어가 기본적으로 부정적이어서 그렇지, 오버페이는 있다. 그리고 이번 한화 이글스가 영입한 두 명의 FA 모두 확실히 오버페이라고 본다. 대신에 둘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엄상백은 현재 한화의 선발진을 보면 충분히 영입이 이해가 가고, 결과적으로 실패확률이 상당히 낮은 오버페이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적정가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심우준이다.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는 맞는데 과연 50억이 맞을까? 유강남의 80억이라는 숫자가 눈을 끌어서 그렇지 사실 2023년 롯데 FA 최대의 실패작은 4년 50억의 노진혁이라고 봐야 한다.
우린 홍길동이 아니다. 오버페이를 오버페이라고 부를 수 있다. 다만 계산기를 들고 머리를 짜내가며 유무형의 가치까지 다 집어넣고 두드려보면 어떤 오버페이는 아슬아슬하게 정산이 되는 반면, 어떤 오버페이는 도무지 계산결과가 안떨어질 뿐이다. 무얼 보고 이 돈을 준 걸까? 내 돈도 아니고 내 응원팀도 아니라지만, 이 순수한 궁금증 때문에 계속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과연 내년 한화팬들은 심우준이 '혜자'였다며 단장을 칭송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