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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 끝나는 날

헤비의 프레이밍 1

by 헤비

몇 해 전 작고한 토미 라소다 감독은 "일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다.(The saddest day of the year is the day baseball season ends.)"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오랜 기아타이거즈의 팬으로서 지난 2024년 10월 28일은 일 년 중 가장 슬픈 날이자 또한 가장 기쁜 날이었다. 이 날 기아타이거즈는 지난 2017년에 이어 7년만에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하는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이로서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에 올랐을 때 단 한 번도 상대방에게 시리즈를 내주지 않는, 12전 12승의 불패신화도 이어가게 되었다.


시즌의 마침표는 우승팀을 향한 헌사인 캐스터의 '우승콜'로 찍히게 마련이다. 우승콜이 없다고 한들 기록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맥빠지게 '우승' 만 몇 번 읊조리고 만다면, 그 캐스터는 해당 팀 팬에게는 평생 역적으로 낙인 찍힐 각오쯤은 하고 있어야 할 테다. 현장중계는 방송사들이 돌아가면서 맡기 때문에 현장에서 우승콜을 외칠 캐스터는 일종의 운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지만, 나머지 스포츠전문 방송사들의 대표 캐스터들의 우승콜도 녹화중계를 통해서 만나볼 수는 있다.


그 중 MBC Sports+의 한명재 캐스터가 외친 2024 기아타이거즈의 우승콜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만큼은 꽤 오래, 아니 평생 기억에 남아 읊조리게 될 우승콜이 아닐까 싶다.

https://youtu.be/LHVepmKmFcU?si=hfjyQ-lUoz7-ZKyS

광주,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아픔을 야구로 극복한 도시에서 타이거즈는 운명이자 자랑이었습니다. 그런 기아타이거즈가 7년만에 프로야구 챔피언에 오릅니다.



난 태어나긴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세 살 무렵 전주에 내려가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살았기에, 지금도 누군가 고향을 물으면 전주라고 답한다. 오목대에서 전동성당을 지나 풍남문이 있는, 지금 한옥마을이 된 그 동네에 살았다.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지어드린 모시 한복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경기전으로 장기며 바둑을 두러 다니셨다.


기억을 뒤적거리다보면 가끔씩 시청 앞 팔달로 쪽에서 시위가 벌어졌는지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번져올 때가 있었다. 몇번은 동네에 흰 연기가 덮쳐서 가게 셔터를 내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른들은 아이인 날 붙들고 그런 얘길 하셨다. 전라도의 어른들이라고 해서 다를 일은 없었다.


"넌 커서 데모 같은 건 할 생각도 말어라."


대학생 형, 누나들이 왜 데모를 하는 건지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최루탄 냄새와 데모의 함성은 꽤나 공포스러웠다. 그 공포를 부추긴 것이 바로 광주의 이야기였다. 내가 태어나기 딱 한 해 전,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에서 벌어졌다는 학살의 소문은 어린 내 귀에도 이미 어렴풋 들려와 있었다. 어렸을 적에도 광주는 운이 좋아 나를 아슬아슬하게 비켜나간 사건이었다.


그 시절 전주는 어디를 가도 해태 팬이었다. 90년에 전주를 홈으로 하는 쌍방울레이더스가 창단했지만, '쌍방울'이란 기업이름이 주는 묘한 뉘앙스 때문인지 아이들 중 쌍방울 팬을 자처하는 이는 드물었다. 게다가 그 시절은 여전히 해태의 전성기였다. 조계현과 이강철이 앞을 막고 이순철이 상대를 흔들어대고 김성한, 한대화가 타점을 올리면 선동렬이 천천히 불펜에 올라간다. 나 같은 아이들이 '선동렬 나온다'를 외쳐대고 슬슬 상대 팀 팬들은 자리를 떠나간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보다 작은 브라운관 티비 속에서 이종범이 뛰어다니던 시절, 야구 경기가 타이거즈 쪽으로 기울면 술 취한 아저씨들 중 하나가 멋대로 단상에 올라 입고 있던 가다마이를 깃발 대신 마구 휘둘러댄다. 그럼 야구 응원가로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구슬픈 곡조의 트로트가 야구장에 누가 먼저랄 것 없는 한목소리로 울려퍼진다. 바로 목포의 눈물이었다.

https://youtu.be/Gq432OPNVrc?si=H57Vw7xOBNO_4fwm

어릴 적에는 알 수 없었다. 왜 광주 연고 프로야구팀을 응원하는 전주 사람들이 목포의 눈물을 그리 슬프게, 마치 가슴 속에 맺힌 핏덩어리를 토해내듯 불러제끼는 건지.




사심을 담아 안구보호 차원에서 모자이크 처리

프로축구를 가장 먼저 출범시키고 싶었던 대구공고 축구부 골키퍼 출신 전두환은 민심수습책의 일환으로 1982년 프로야구를 출범시키고 첫 시구자로 나선다. 기획 당시부터 지역연고를 생각하고 있었던 프로야구였지만, 막상 전라도의 팀을 맡을 기업이 없었다. 그나마 금호그룹이 덩치가 있는 편이었지만, 금호는 홍보할 게 없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그 자리를 치고 들어온 게 해태였다. 사실 해태는 야구단 창단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신군부 정권 입장에서도 재정이 약한 기업이 전라도 연고를 맡는 게 괜찮은 일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안끼워주면 대놓고 차별을 한다고 말이 나오니 끼워주긴 하지만 돈을 퍼부을 기업에게 맡길 필요는 없다. 결국 프로스포츠는 누가 더 돈을 많이 쓰는가의 승부다. 전라도 연고의 팀이 지원이 약해 매번 꼴찌 언저리를 맴돈다면, 이미 시작된 낙인과 차별은 점점 정당성을 얻는다. 차별 당할만 해서 차별 당하는 것이고, 낙후할만 해서 낙후된 것이다. 패배의식을 심어주기에 스포츠만큼 좋은 도구는 없다.


하지만 고작 15명의 선수로 시작된 해태타이거즈는 1983년 이후로 지금까지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다 우승팀 타이틀을 놓쳐본 적이 없다. 워낙 지원이 부실해서 팀 우승 보너스도 해태과자 선물세트로 준다는 괴소문(?)이 도는 구단이었지만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에서 여타 부자 구단을 만나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1986년 기무사 작성문건

군사독재정권은 5월 18일이면 타이거즈가 홈그라운드에서 경기를 벌어지 못하도록 일정까지 조정했지만, 선수들은 외지에서 승리소식을 전함으로서 (11전 9승 2패) 광주를 위로했다. 선수들 스스로가 반란군의 헬기에서 날아드는 총알을 막기 위해 솜이불로 창문을 막아야 했고, 덩치가 큰 운동부원이라는 이유로 구타를 당하거나 어디론가 끌려가 이유없이 죽을 위기를 겪었던 사람들이었으므로 적어도 그 날 만큼은 질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분명해진다. 타이거즈에게는 야구가 단순한 야구만은 아니었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고, 선택한 바 없었으나 그들의 야구 위에는 이미 야구 이상의 의미가 운명처럼 얹어져 있었다. 학살자가 벌인 잔치판 속에서 모든 재정적인 어려움을 뚫고 가장 빛나는 자리를 차지함으로서 피해자들이 그 아픔을 겪어야 했던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그들은 증명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일을 누구보다 훌륭하게 해냈다.




https://youtu.be/eCLmy0pkRBE?si=2jbeXoFhpgtnvMyX

역사는 아이러니 투성이다. 야구장에서 울분과 함께 외쳐댔던 그 이름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던 해, IMF로 해태타이거즈는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한다. 선수를 팔아 연명하던 구단은 거의 껍데기만 남은 채로 2001년 기아자동차에 인수, 해태타이거즈에서 기아타이거즈로 구단명이 변경된다. 누군가 이를 두고 '역사의 의미가 완성되자 이뤄진 퇴장'이라고 하던데, 누구도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든다.


헝그리정신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타이거즈는 이제 KBO리그에서 가장 돈을 잘 쓰는 구단 중 하나다. (재미있는 건 그 이후 예전만큼 연속 우승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비만 오면 외야 그라운드에 물방개가 돌아다니고 뱀이 출몰했다던 무등야구장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고, 이제 광주챔피언스필드는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시설을 자랑한다.

그리고 더는 야구장에서 목포의 눈물이 불리지 않는다. 유니폼과 호통이(기아 응원도구)에다 온갖 굿즈들로 중무장한 20대 초중반 여성팬들은 노래에 맞춰 칼각으로 응원을 하며 '최강 기아'를 외친다. (그런 프로 응원러들 옆에 앉아있다보면 나 같은 아재팬은 뭔가 몸둘바를 모르게 된다.) 이제 타이거즈의 야구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난 첫 세대를 맞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 그것이 너무나도 다행스럽고 사랑스럽다.

https://youtu.be/7dFEHc9_12g?si=JWpV2G4As6T2OMO0

2024시즌 기아타이거즈의 히트상품은 누가 뭐래도 '도니살' 김도영이다. 광주 사투리로 '도영아, 니땀시 살어야'의 줄임말인 '도니살'. 그러나 광주의 가슴아픈 사연을 가슴 깊이 삭여야만 했던 민중들에게는 정말 타이거즈 덕분에 숨쉬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그 운명의 페이지가 닫히고 야구가 점점 '그깟 공놀이'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게 참 감사하다. 더는 야구에 야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일이 없는 시절이 오기를 바란다.




출처: 기아타이거즈 인스타그램

야구는 인생과 너무나도 닮은 스포츠다. 그 탓일까, 야구 안에는 인생을 관통하는 수많은 명언들이 있는데, 그 중 최고는 누가 뭐래도 뉴욕 양키즈의 명포수이자 감독이었던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 하겠다. 그렇다. 2024년의 야구는 끝났다. 하지만 이제 다시 2025년의 야구가 시작된다. 벌써부터 새로운 페이지 위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쓰여나갈 준비를 한다. 그래서 야구가 끝나는 날 나는 야구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너무 많은 감정소모가 있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되긴 하지만, 괜찮다. 모든 것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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