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의 2024시즌은 1,088만이라는, 꿈의 숫자인 천만을 넘어 천백만에 가까운 관중숫자를 기록하며 마감되었다. 흥행 요인은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다. 일단 '기롯삼한'이라고 불리는 전통적 인기팀들의 선전이 있었다. 기아와 삼성은 무려 18년만에 수도권팀이 없는 한국시리즈를 만들어냈고, 롯데와 한화도 시즌 막판까지 5강 경쟁권에 남아 의미있는 경기들을 펼쳤다.
새로운 스타들도 등장했다. 기아의 김도영이 과연 40-40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할지 여부에 시즌 마지막경기까지 관심이 쏠렸고, 삼성의 김영웅과 이재현은 멋진 수비와 홈런포로 라이온즈파크를 들썩였다. 두산의 김택연은 돌직구를 뿌리며 망곰유니폼을 매진시켰고, 롯데는 '윤고나황'이라는 히트상품을 만들어냈다.
거기에 각 팀마다 관심을 기울일만한 요소들이 시즌 막판까지 남아있었다. 5위는 타이브레이크로 결정되었고, 롯데의 레이예스는 최다안타 신기록에 도전했다. NC도 데이비슨의 50홈런 가능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KBO로서는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즌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늘부터 천천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던 KBO리그의 2024시즌을 각 팀별로 리뷰해보려고 한다. 이 블로그 첫 글에 밝힌 바 대로 나는 일개 타이거즈 팬이기 때문에, 타팀에 관련된 내용에 있어서는 솔직히 시야도 좁고 깊이도 부족하다. 미리 양해 부탁드린다. '바깥에서는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정도로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란다. 반박할 내용이 있으실 시에는 무조건 자팀 팬의 의견이 맞기에 난 대꾸할 생각조차 없다. 이건 진리다.
1. 선발투수진
2024시즌 키움은 지킬 앤 하이드였다. 후라도와 헤이수스가 등판하는 날이면 나머지 9개 구단 어디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았다. 외국인 원투펀치로만 따지면 키움은 롯데, 삼성과 함께 최강의 외국인 선발투수를 확보한 팀이었다. 국내 1선발인 하영민의 분전도 눈에 띈다. 하영민은 이제 어느 팀에 가도 솔리드한 4, 5 선발로서 충분히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수준에 올라왔다.
문제는 나머지다. 김윤하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렸다고 보기 어렵다. 다른 선수들은 김윤하만큼도 해주지 못했다. 키움을 상대하는 팀이 로테이션에 따라 볼멘 소리를 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만큼 후라도와 헤이수스가 키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2. 불펜투수진
시즌 중반 각 팀의 투수진들이 너나할 것 없이 과부하에 빠지기 시작한 무렵부터 조상우 트레이드 설은 파다하게 나돌았다. 마치 트레이드 공개시장이라도 열린 것 같았다. 하지만 조상우는 끝내 어깨를 붙잡고 낙마했고 키움의 조상우로 남고 말았다.
수치를 보면 알겠지만 조상우가 가장 필요한 팀은 다름 아닌 키움 히어로즈다. 후반기 주승우가 마무리로 자리잡았지만, 여전히 키움 불펜진은 헐겁다. 불펜진 전체에 50이닝을 넘긴 선수가 없다는 건 관리를 잘해줬다는 의미보다는 그만큼 던질 투수가 없었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3. 공격 부문
이주형-김혜성-도슨-송성문으로 이어지는 상위타선의 힘은 10개구단 어디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아 보였지만, 2023시즌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이주형이 기대만큼 폭발을 일으키지 못한 부분은 꽤나 아쉽다. 물론 그보다 더 아쉬운 건 5번부터 9번까지를 채울 선수가 보이질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포수 김건희가 어느정도 가능성을 보여주긴 했지만 여전히 미지수가 많은 편이고, 최주환이 1루를 맡고 있지만 생산성이 많이 떨어졌다. 낯설었을 유격수 자리에 선 김태진은 수비에서는 나름의 역할을 해냈지만, 공격지표까시 상승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김병휘가 시즌 막판 유격수로 계속 얼굴을 비췄지만 얼굴만 이슈가 되는 모양새였다.
정리를 하다보니 지명타자 자리를 도무지 채울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팀은 부상으로 빠진 도슨의 대체 외국인을 뽑지 않은 채 여러 선수를 돌려가며 기용했다. 그러다보니 안그래도 안 좋은 공격지표가 더 떨어졌고, 상대방의 집중견제를 받게 된 기타 주전급 선수들의 지표는 후반기에 더 하락하게 되었다.
4. 주루, 수비 부문
키움은 팀 평균연령이 25.6세로 삼성(28세)에 비하면 2.4세가 어리다. 그만큼 공격적인 베이스러닝을 할 것 같은데 의외로 신중한 주루를 하는 편이다. 대신 성공률은 높다. 수비부분에 있어서도 평균치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젊은 팀이 보여줄 수 있는 '어설픔'이나 '섣부름'과는 거리가 있는 플레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전력이 약하다면 때로는 무리를 해서라도 덤벼드는 플레이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억지로라도 변수를 만들지 않는다면, 약한 팀은 무난하게 지는 것 말고는 다른 결과를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5. 총평
이정후도 없고, 안우진도 없는 히어로즈의 최하위는 사실 모두가 예상했던 바였다. 그러나 부족한 자원임에도 불구하고 히어로즈는 승률 4할을 지켜내면서 리그 전체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그건 확실하다. 맞붙어보면 히어로즈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숫자보다 더 끈끈하고 잘 무너지지 않는 팀이었다.
문제는 상대방을 고꾸라뜨릴 힘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부상으로 빠진 도슨의 대체 외국인 선수를 뽑지 않은 판단만큼은 시즌을 곱씹어 보면 볼수록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차피 우승을 하지 못할 바에는 포스트시즌 진출이 큰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었을까? 그 빈 슬롯을 이용해서 어린 선수들에게 경험치를 먹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까?
스포츠판에서는 어린 선수들에게 '경험치를 먹인다'는 표현을 종종 쓴다. 이건 롤플레잉게임에서 나온 표현이다. 캐릭터가 필드에 나가 몬스터를 잡거나 미션을 수행한 후 경험치를 받으면 그만큼 성장을 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필드에 나가'가 아니다.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 아무리 필드에 나간다 한들 몬스터를 잡지 못하면 경험치를 얻지 못하고 시간만 버릴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이런 시행착오를 겪은 팀을 여럿 봤다. 그 결과 '경험치는 승리를 통해 얻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우리는 2025시즌 히어로즈가 다시 한 번 대대적인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다. 이런 시도는 히어로즈만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기대가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2025 프리뷰에서 자세히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진짜 영웅은 포기하지 않는 팬들이었다
히어로즈는 참 특별한 팀이다. 모기업이 없이 자생을 하면서도 어느정도 성적을 내고, MLB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꾸준히 키워내는 등, 매력적인 부분도 많다. 그러나 가끔 그 특별함 속에서 팬의 자리는 어디인 건지 문득 의문이 찾아드는 순간이 있다. 2024시즌, 중요한 갈림길에 서서 히어로즈는 팬을 얼마나 생각했을까? 언젠가 찾아올 아름다운 미래도 물론 중요하지만, 당장 내 옆에 있는 팬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팬이 없는 아름다운 미래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