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복이 많다.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가깝게 지내야지 하고 정해놓은 것은 없지만 내 마음의 어떤 느낌이 맞다고 생각이 들면 가까워졌다. 사람은 본인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지 좋은 사람이 나에게 다고 오지 않을까.
그 인연은 15년 전 운동을 시작한 탁구장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젊을 때는 말썽을 많이 피웠다고 했다. 직장도 없거나 변변치 않았다. 결혼 후에도 자식이 있을 때에도 돈도 못 벌고 부모님한테 혼나고 했었다. 그런데 어떤 공장에 들어가게 됐는데 새파란 젊은 친구가 기계 글 잘 못 만진다고 구박을 많이 줬다. 그게 기분이 많이 나빴는지 퇴근도 안 하고 기계를 능숙하게 만지게 되면서 직급이 올라갔고 지금 공장 사장님 위치까지 오게 된 분이다. 나이 차이가 많아도 큰 형님~하면서 편하게 대한다. 취미는 등산과 골프를 즐겼었다. 형수님이 탁구를 배웠는데 부부끼리 게임을 해서 패하는 바람에 오기가 생겨서 탁구를 친다고 했다.
그때는 잘 몰랐었다. 나를 생각하는 그 사람의 마음을.
나와 약속을 잡아서 연습을 자주 했었다. 형님은 운동신경이 아주 좋아서 발전하는 속도가 빨랐다. 서로 탁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 시간이 더 즐거웠다.
자주 만나서 즐겁게 운동도 하고 운동 끝난 후엔 치킨은 코스였다. 땀 흘리고 난 후 맥주 한 모금은 진리다. 그렇게 지내던 중 어느 날 문뜩 우울한 생각이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조울증같이 주기적으로 우울한 생각이 드는데 쉽게 말하면 폐인처럼 되는 거다. 제대로 된 직장도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깜깜한 미래 생각부터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앉았다가 누웠다가를 반복했다. 전화가와도 자신감도 없어서 받지도 못했다. 전원을 끌 용기조차 없었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갈 수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씻지도 않고 누워만 있었다. 그 초취 한 모습과 자존감 낮은 상태로 나갈 수는 없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 형님이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걱정돼서 찾아왔다고 했다. 사업하신다고 바쁘실 텐데 어린 나를 진정 사람으로 대해주었던 거 같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몸은 점점 초취 해지고 답이 안 나왔다. 집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스님처럼 깨달음이 오진 않았다. 집에서 겨우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탁구"였다. 조금씩 운동하러 밖을 나오니 또 살아지더라.
도저히 안 되겠던지 그 형님이 아직 인간이 안됬다면서 포터 빌려줄 테니까 본인 공장에 출근하라고 했다. 그렇게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됐다. 집을 나와서 일까지 하는 것이 큰 발전이었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과 모든 문제는 본인이 있다는 것을 모른 체 내 생각의 변화는 없었던 거 같았다.
나중엔 형님 소개로 근처 더 큰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마저도 오래 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찾아 떠났다.
돌이켜보면 어떻게든 나를 먹고살 수 있게 하려고 했던 거 같다. 한 번은 탁구 실력이 어느 정도 올라왔을 때 체육관 운영에 관심이 생겨 알아봤었다. 물론 돈은 없었다. 그때 그 형님이 투자(?) 개념으로 빌려주신다고 까지 했다. 그런데 계산해보니 수익에서 문제가 좀 있어서 포기했었는데 그 당시에 돈을 빌려준다고 까지 하면서 나를 끌어준 그 형님이 너무 고맙다.
그 형님과 오늘도 통화하면서 서로 농담으로 시작해서 인생 상담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어떤 상황이든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이다. 나도 이제야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 형님처럼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려고 노력한다. 시작도 탁구 때문이고 탁구가 이어준 인연 때문이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남은 시간 더 늦기 전에 그 형님과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다.
<Copyright ⓒ 2022 by 배울수록 즐거운 롱다리박 탁구 클리닉,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