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주 속 사도세자 피 맺힌 원혼 풀고
정조의 효심으로 격상된 장헌세자
고종도 또다시 추존
비운황제 장조왕
-정유지
융릉은 사도세자(추존왕 장조)와 혜경궁 홍씨(추존 현경왕후)의 합장릉으로 병풍석은 있지만 난간석은 없으며 능상은 이계로 되어 있다.
비각에 비석은 두 개로써 하나는 정조가 친히 어제한 헌륭원비로 ‘장헌세자’라 되어 있고 고종황제 때 어제한 비는 ‘대한 장조의황제융릉’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래 사도세자 묘는 원래 경기도 양주시 배봉산 기슭에 수은묘로 있었으나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선친인 사도세자에게 장헌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수은묘를 원으로 격상해 영우원으로 고쳐 부르게 했다.
정조13년인 1789년에 아버지 무덤을 화성시 안녕동 현재 위치로 천장해 현륭원이라 하였다. 그 뒤 순조 15년인 1815년 12월 15일에는 어머니 헤경궁 홍씨가 81세로 승하하자, 순조 16년인 1816년 3월 3일 현륭원에 합장하였다.
사도세자는 영특했으나 영조의 대리청정 하면서 노론의 외면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기이한 행동하면서 영조의 미움을 사 자결을 명받았으나 용서만을 빌자 뒤주에 가두어 8일 만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후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부정당하고 영조의 큰아들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하여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이후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하고 나섰고 아버지 신원을 복원하기 위해 많은 정성을 쏟았다.
비록 비운의 주인공이지만 아들인 정조의 효심으로 세자로서, 황제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