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 불씨 Mar 07. 2024

막혔던 눈물샘이 터졌다

얼마 만에 울어본 거지?

약 6개월을 아이를 보지 못한 기간이 있었어요.

아이가 배속에 있었을 때부터 하루에 30분씩 배에 있는 아이랑 이야기하고 세상에 나온 아이는 아빠가 전부인 것처럼 딱 붙어 다니던 우리 부녀였는데


물론 그전에도 7-15일 정도는 제가 출장을 다녀오기도 하니 떨어져 있던 적이 있었고 그때도 너무나 보고 싶었고 한 번씩은 둘이 똑같은 증세로 아프기도 했었어요.

이때 저도 몸살이 나서 연락을 했더니 아이도 이러고 있다고 와이프가 사진을 보내줬었어요. 이런 일이 자주 있다 보니 특별히 신기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나쁜 일이 일어나려니 코로나로 입은 피해, 지인이 도와달라고 해서 지인의 친구를 도왔다가 회사가 하나 날아가고 다른 지인 물건값 밀어줬다가 한국에 있는 집까지 다 날리고 어떻게 던 해결 해 보겠다고 한국으로 들어오고 이게 베트남 생활의 마지막이었어요.


먼저 들어온 저는 그저 단순히 한 두 달이면 해결될 거라 생각하고 들어왔지만 상황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지요.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에 기존에 진행하던 일들 역시 그저 코로나가 끝난다고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거의 없었고 잘 되어 가던 일들조차도 코로나라는 그저 그 이유 하나로 계약이고 뭐고 모든 게 면책이 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호텔에서 생활을 하다가 점점 모텔에서 생활을 하다가 친구 집으로 들어가서 생활을 하는데 점점 무서웠어요.


'이제는 우리 가족을 못 보나?',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생활비를 보내주고 떨어져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올랐고 그 와중에 물건값을 주기로 한 사람이 베트남의 다음 1년 치 집 렌탈 계약을 할 때까지 그 부분이라도 해결해 주기로 하고는 바로 당일날 모른 척을 해버렸습니다.


갑자기 "그게 얼만데?"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눈앞이 캄캄했어요.

제가 없는 타국에서 길바닥에 나 앉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물론 현지 친구들에게 부탁하면 어디서라도 지내고 어떻게라도 해결하겠지만 사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거기다 아이가 아직 말을 잘하지도 못하고 집에 제가 돌아가지 않은지 3개월이 지나니 저와 통화를 하려고 하지 않고 화상 통화를 하면 다른 곳으로 가버리기 시작했었어요.


제가 아마 울어본 게 언젠지 거의 기억이 나질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었는데 이때부터 거의 밤마다 혼자 울었던 것 같아요.


왜 우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해결해 보려 여러 수단을 다 찾아보고 숙소나 친구네 집으로 들어가서 혼자 있는 순간에는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그저 일만 하고 살았는데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지 죄를 지었는지 별생각이 다 들었었고 정말 이제는 가족을 다시 볼 수는 없게 되는 건지부터 진짜 말도 안 되는 상상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뇌라는 녀석은 참 고약해서 나쁜 생각은 끊임없이 꼬리 물기를 한다고 했었지요.

이때 아주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아는 분이 도와주셔서 베트남집을 6개월 더 연장하고 기존에 저에게 건강 관리를 받으셨던 분들부터 오래전부터 사업을 같이 하셨던 분들이 하나둘 도와주셔서 어떻게 다시 살아갈 고민을 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이때 알았어요. 그동안은 정신없이 바쁘게 사느라 울 여유도 없었고 내 주변에 이렇게 감사하고 소중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도 그저 내 좋은 척하려 무리한 선택을 하고 앞만 보느라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았고 저 역시 제 주변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말이에요.


이때 느낀 게 무조건 아무 조건 없이 주는 도움도 독이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물건값도 못 받고 돈도 못 받고 내 돈 내며 도와주던 사람이 자기 일을 더 적극적으로 안 도와주면 가족을 가만 안 두겠다는 말을 해서 더 소통하다가는 제가 사고를 칠 것 같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차단이라는 것도 해봤습니다.


그리고 아마 이글 이후로 이런 우울한 글은 잘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이런 글을 써도 크게 마음이 힘들지 않게 되었거든요. 금전적이고 경제적인 부분은 아직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안참을 회복해야겠지만, 마음은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고생 속에서 가족들은 더 화목해졌고 아이는 더없이 밝게 자라주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와중에도 재능기부를 생각하고 함께 사는 일을 구상하고 있는 걸 보면 이건 태생적인 것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봐요.


그런 일을 준비하며 느꼈는데 사람들도 많이 지쳐있고 다들 힘들지만 열심히들 살아가고 있고 서로 따듯하게 살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저도 미약한 힘이나마 잘 보태보고 싶습니다.


모두 다 잘 될 거예요.





이전 23화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고 싶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