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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Jan 10. 2022

우물 안 개구리는 왜 욕을 먹어야 하나

* 우물 안 개구리(다음 국어사전) : 사회의 형편을 모르는, 견문이 좁은 사람.


"어이, 자라!  나는 참 즐거워. 우물 시렁 위에 뛰어오르기도 하고, 우물 안에 들어가 부서진 벽돌 가장자리에서 쉬기도 한다. 또 겨드랑이와 턱으로 물에 떠 있기도 한다. 저 장구벌레나 게나 올챙이 따위야 어찌 내 팔자에 겨누기나 하겠는가? 또 나는 한 웅덩이의 물을 온통 혼자 차지해 마음대로 노니는 즐거움이 지극한데, 동해에 사는 자라! 자네는 왜 가끔 나에게 와서 보지 않아

이 말은 『장자(莊子)』 「추수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대로라면, 개구리는 아주 행복에 쩔어 있는 상태임에 틀림없네요.

그런데, 왜 이 개구리는 아는 것도 부족하고 사회 돌아가는 상황도 모르는 멍청이로 욕을 먹게 되었을까요?

잘 살고 있는 개구리를 사람의 관점에서 보고 제 멋대로 판단했으니,

개구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물 안에서 행복하게 아주 잘 살고 있는 개구리를 꼬드겨서

기어코 우물 밖으로 끄집어내어 거들먹거리며 세상 구경을 시켜줍니다. 

"봐라. 네가 알고 있는 세상은 아주 작지.  넌 그 정도밖에 모르는 별 것 없는 존재란 말이야"라고

면박을 주면서요.

세상을 본 다음부터 개구리는 불행의 늪으로 빠지게 됩니다.

우물로 돌아가서도, 예전처럼 즐겁지 않고, 매일 넓고 휘황찬란한 바깥 세상을 그리워하면서 신세 한탄만 하다가 쓸쓸히 죽어갑니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우물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개구리를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어놓고서

마치 자신이 뭔가 대단한 것을 개구리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의기양양해하며 개구리를 비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할망정 불행의 늪으로 밀어버리고서도, 오히려 개구리에게 아는 것도 부족하고 사회 돌아가는 것도 모른다고 비아냥 거립니다.

자신이 개구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들입니다.


평생을 시장에서 장사만 하신 할머니, 시골에서 농사만 지으신 할아버지, 집에서 식구들 뒷바라지만 한 엄마,

변변찮은 직장이지만 열심히 일한 아버지.

이들은 비록 비행기 한 번 타보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지역을 본 적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의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갑니다.

물건을 사가는 사람을 보며, 잘 익어가는 곡식을 보며, 맛있게 먹는 식구들을 보며, 퇴근 후에 따스하게 맞아 주는 식구들을 보며 행복함에 젖어듭니다.


언젠가부터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가져야 할 것들도 많아졌고, 알아야 할 것들도 많아졌습니다.

티브이가 단단히 한몫을 했지요.

연예인들 해외로 내보내고 연예인들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랑질을 해댔습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알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했습니다.

남들 다 가는데 나만 못 가는 것 같고, 남들 다 가지고 있는데 나만 없는 것 같고, 남들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같아서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심지어 갈 만큼 갔고, 가지고 있을 만큼 가지고 있고, 알아야 할 것은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간 사람, 나보다 더 가지고 있는 사람, 나보다 더 알고 있는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을 불행의 늪으로 밀어 넣기도 합니다.


코로나가 밀어닥쳤습니다. 해외여행이 힘들어졌습니다. 

해외여행 가는 기분을 내는 상품이 매진되었다고도 합니다.

애초에 해외여행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예 아무렇지도 않은데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던 사람들은 저런 상품을 통해서라도 대리 만족을 느껴야만 할 정도로 영향을 받았습니다.(물론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고, 해외여행 가는 것을 비하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저도 해외여행 여러 번 갔었으니까요. 그저 우물 안 개구리가 결코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을 뿐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어찌 보면 상대적으로 조금 덜 행복해졌거나 불행해졌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코로나로 인하여 우울증 환자가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과의 다툼도 많이 늘었고요.

해왔던 것들을 하지 못하니 마음이 답답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견문을 넓혀서 그와 관련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견문을 최대한 넓혀야 합니다.

하지만, 굳이 견문을 넓힐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으로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수 있습니다.


굳이 더 성공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며 살면 됩니다.

더 성공한다고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더 성공하기 위해 정말 가치 있는 것들이 희생당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굳이 더 가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내가 살 집 외에 더 가지려는 사람 때문에 정작 집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 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보다 훨씬 더 가지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못 가진 사람들이 가질 기회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회는 '더'라는 단어를 모든 것에 넣어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를 꿈도 없고, 도전 정신도 없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바보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라는 정신으로 도전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세상이 발전해서 사람들이 더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문명의 발달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발전할수록 오히려 필요한 것들이 더 많아지고 있지 않을까요?

필요한 것을 채우기 위해 더 욕심을 부리지 않을까요?

그 욕심이 자신을, 옆 사람을, 옆 나라를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요?


우물 안 개구리는 결코 바보가 아닙니다.

동그란 구멍으로 보이는 작은 하늘의 모습을 보며 감탄할 줄 알며,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관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하며,

좁은 곳에 갇혀 있어도 결코 답답해하지 않고,

삶을 즐기는 행복한 개구리입니다.

저는 이 개구리를 본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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