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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도화 Oct 15. 2023

상처도 중독 같아서 작은상처로는 서로 성에 차지 않았다

#11

 “진현아, 이거 어머니한테 다시 가져다드려. 어머님이 뭘 좀 오해하신 것 같아. 롤케이크는 선생님들이랑 맛있게 잘 먹었다고 전해드리고.”


 담임 선생님이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진현은 두툼한 봉투 끝을 조금 열어 보았다. 만 원짜리 지폐가 슬쩍 보였다. 부끄러웠다.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선생님은 ‘네가 죄송할 게 뭐 있냐’고 말했지만 그 이상의 위로는 없었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겨울 같은 봄. 교무실 안의 공기는 교실과는 다르게 한결 훈훈했고 진현의 얼굴은 온도 차이 때문인지 더 발갛게 달아올랐다. 


 교무실을 나와 책가방 안에 봉투를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는, 진현은 그 길로 곧장 빵집으로 달려갔다. 유리 문을 열며 혹시 안에 누가 있나를 살폈지만 다행히 동생들도 손님들도 없이 오직 미자만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엄마, 선생님한테 돈 줬어?”


 진현이 구겨진 봉투를 가방에서 꺼내 카운터로 던졌다. 몇 장의 지폐가 흘러나와 아무렇게나 엉킨 채로 흩어졌다. 


 “제발 이런 짓 좀 안 하면 안 돼? 선생님이 도대체 날 어떻게 보겠어. 엄마 돈 많아? 돈 많으면 어디 가서 맛있는 거라도 좀 사 먹든가, 우리 용돈이라도 좀 주든가. 왜 엄마랑 관계도 없는 사람한테 돈을 주고 그래.”


 진현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미자는 엉킨 지폐를 정리하며 얼마인지를 센 후 돈 통에 다시 집어넣었다.


 “고등학교 갔으니까 선생님한테 미움받지 말고 적응 잘 하라고 그런거야. 다들 그렇게 해. 긴말하지 말아. 잔말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부모는 자식한테 올바르게 크라고 말하는 게 먼저잖아. 다른 사람들이 촌지 준다고 엄마도 주고, 그게 나를 위해서라고 하면 내가 도대체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맏딸 앞에서도 미자는 냉정했다. 


 “어차피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교에 발전 기금으로 뜯기나 선생님한테 촌지로 뜯기나 똑같은 돈인데. 그냥 본인이 받으시고 애한테 잘해주시면 좋으련만. 사람이 보기보다 책임감이 없네. 아니, 그렇게 잘 나셨으면 재단에서 내놓으라는 발전 기금도 좀 막아 주시지. 그건 또 버젓이 내라고 하고. 누군 뭐 주고 싶어서 주는 줄 아나, 어이가 없어서 정말.”


 담임 선생님의 험담을 늘어놓는 엄마 앞에서 진현은 그저 조용히 절망했다. 엄마와 시도한 대화의 끝은 늘 그랬다. 어쩌면 위로받고 싶어 꺼낸 말인데도 미자는 늘 모른척했다. 진현이 보는 엄마는 감정이 고장 난 사람 같았다. 


 “김치 국물 안 흐르게 잘 좀 놓아. 지난번에 냄새 빼느라 혼났어.”


 월요일 아침, 출근 차림의 태평이 자동차 운전석에서 안전벨트를 매며 말했다. 뒷자리에선 미자가 일주일간 가게에서 먹을 찌개, 김치, 밑반찬 따위를 싼 보자기를 싣는 중이었다.


 “왜 누가 타기라도 해?”


 미자가 조수석에 앉자마자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태평은 또 싸움이 시작될 것 같아 입을 다물었지만 불씨는 이미 당겨진 후였다.


 “하여간 헛짓거리 하고 다녀봐. 애 셋하고 어머님까지 다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보자고. 여편네는 먹고살겠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아리에 핏줄이 튀어나오도록 일하는데. 어디 한 번 걸리기만 해 봐.”


 “아이 시발, 그만 좀 해. 차에 김치 국물 흘리지 말라고 한 게 뭐가 그렇게 잘 못 된 거야?”


 참다못한 태평이 버럭 하며 화를 냈다. 주먹으로 핸들을 내리쳐 빵- 경적 소리가 울렸다. 가만있던 앞차는 갑작스러운 경적 소리에 화가 났는지 창문을 내리고 욕지거리를 하며 삿대질을 했다. 태평은 미안하다는 표시로 비상 깜빡이를 켰다.


 “차에서 젊은 여자가 쓰는 향수 냄새가 나잖아! 내가 바쁘다고 모를 줄 알았어?”


 “김치 냄새가 하도 안 빠져서 여직원한테 향수 좀 잠깐 빌려 뿌린 거야. 그리고 빵집은 내가 하라고 했어? 왜 말끝마다 날 걸고넘어져. 네가 아파트 사고 싶어서 안달 내며 벌인 일이잖아. 나도 퇴근하고 와서 셔터 내릴 때까지 가게 보는 거 지겹고 피곤해 죽겠다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당신 어머니가 우리 집 장독대 깨고 의정부로 가서 아버님한테 받은 땅 홀랑 팔아먹었잖아. 그거 가지고 있었으면 우리 지금 목동 아파트 들어가고도 남았어. 땅 판 돈 가지고 죽을 때까지 먹고 살 테니까 서로 없는 셈 치고 살자고? 허이구야, 그러고선 이제 와서 방 하나 차지하고 떡하니 누워 있는 거 보면 아침저녁으로 쳐다보기만 해도 속에서 천 불이 나. 도대체 당신네 가족들은 하나같이 왜 그렇게 뻔뻔해.”


 “갑자기 그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와. 그리고 진짜로 돈에 손 댄 게 누군데? 처제 아니었어? 진짜 뻔뻔한 도둑은 도대체 누구네 집 사람이냐고. 그래도 처제라고 경찰에 신고 안 하고 돈 좀 쥐어 내보냈더니 고마운 줄도 모르고 어디서 지랄이야!”


 힘든 시기였다. 부부는 서로를 할퀼 수 있을 때까지 할퀴었다. 상처도 중독 같아서 작은 상처로는 서로 성에 차지 않았다. 그즈음 미자는 병원에 자주 들락거렸다. 미도가 가게를 떠난 지 2년여가 지났지만 그간 사람을 구하지 않고 홀로 버틴 탓이었다. 종아리가 붓는 하지 정맥류부터 목이 이유 없이 붓는 편도선, 화장실을 자주 참아 생긴 방광염까지. 의사는 쉬면 다 낫는 병이라고 안심 시켰지만 그때 미자에겐 휴식이 가장 어려운 사치였다.





 목동의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이미 중학교 입학 전에 ‘수학의 정석’과 ‘성문종합영어’를 본다는 소문이 화곡동에도 파다했다. 목동에 당장 살진 못해도 그들의 교육 방식이라도 따라야 한다는 미자의 일념에 따라, 진현과 진원도 일찍부터 선행학습을 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그녀의 마지막 보루는 막내였다. 


 겨울방학을 맞은 진오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학원에서 이런저런 과목으로 하루를 채웠다. 학원 영어 시간, 선생님이 화이트보드에 검은색 마카펜으로 ‘IMF’라고 적었다.


 “IMF의 약자가 뭔지 아는 사람?”


 진오는 누구보다 빠르게 번쩍 손을 들고 선생님과 눈을 맞췄다.


 “인터네셔널 모니터리 펀드입니다.”


 “무슨 뜻인지도 아니?”


 “국제통화기금. 돈이 없는 나라에 외화를 빌려주는 국제기구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처럼요.”


 진오의 취미는 신문 탐독이었다. 태평이 퇴근길 지하철에서 가지고 온 신문은 하루가 지났어도 읽을거리로서의 가치는 충분했다. 처음엔 신문의 2/3 지점을 펼쳐 스포츠면만 읽다 점차 1면부터 차근하게 읽었다. 빵집에서의 기나긴 시간을 때우는 방법이었다. 


 온 나라가 난리였다. 돈이 없어 나라가 망한다더니, 기업이 그보다 더 빨리 망했다. 정부는 이 난리가 국민들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탓이라고 했고 국민들은 대체로 수긍했다. 사람들은 그 대가를 금으로, 일자리로, 목숨으로 치렀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평생 사치는커녕 시장에서 파 한 단을 살 때도 가격을 꼼꼼하게 따져보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늘 뭐랬어. 우리나라 경제 다 거품이라니까. 사람들이 보릿고개 시절은 생각 못 하고 먹고 살만하다고 흥청망청하더니 이 꼴이 난 거라고.”


 태평은 IMF 사태가 터지고 나선 티브이 뉴스가 나올 때마다 유독 상기된 얼굴로 시사만평을 했다. 진오는 아빠에게서 ‘흥청망청’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유치원부터 단짝 친구인 우성이가 생각났다. 


 우성은 진오의 옆집에 살았다. 방학 때마다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새 학기가 시작되면 태국에서 본 코끼리가 얼마나 큰지 베트남에서 마신 수박주스가 얼마나 달았던지를 묘사하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진오는 우성의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동남아에서 사 온 기념품과 가족사진을 흘깃 쳐다봤다. 비행기를 타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우성에게 물어본 바로는 몸이 붕 떠서 울렁거리는 느낌이 꼭 놀이 기구를 탄 것 같다고 했는데, 진오는 변변한 놀이 기구를 타 본 적도 없었다. 


 우성이네처럼 동남아는 못 가더라도 제주도는 한 번쯤 가족 여행으로 가보고 싶다는 바람을 진오가 말했을 때, 미자는 콧방귀를 뀌었다. 우성이네는 자기 집도 없으면서 ‘흥청망청’ 쓰기만 한다고, 그렇게 덮어놓고 쓰기만 하다간 나중에 대학 보낼 돈도 없을 거라고 비난했다. 


 다행히 외환위기의 칼바람은 ‘부부 빵집’을 비껴갔다. 환율이 오르며 밀가루와 같은 원재료 값은 폭등했지만, 동네에 큼직한 상가 몇 개를 가진 건물주는 힘든 시기를 잘 버티라며 임대료를 깎아주었다. 그가 다음번 구의원 선거에 나간다는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태평도 운이 좋았다. 퇴근 이후 가게 일을 도우며 야근이나 회식을 전혀 하지 않은 탓에 동기들보다 승진이 느려 ‘만년 차장’이라고 다른 이들이 비웃었지만, 그 때문에 부장급 희망퇴직을 피할 수 있었다. 하루아침에 동기들 책상이 빠지는 것을 바라보며 태평은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1기 신도시가 본격적으로 입주한 이후에도 서울 집값은 떨어지기는커녕 경제성장률 만큼 차곡차곡 올랐다. 미자는 월 백만 원씩 모으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지만 이번에도 목동 아파트는 미자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영원히 가닿을 수 없이 무한대로 발산한다는 피보나치의 수열처럼,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부동산의 증가 속도는 노동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들이닥치자 이듬해부터 서울 집값이 곤두박질쳤다. 이자제한법이 없어지면서 사람들은 돈 빌리는 걸 무서워했고, 이율이 높아지자 있는 돈마저 은행에 넣기 바빴다. 일각에선 고도성장이 끝나면서 집으로 재미를 보는 시대가 끝이라고 단정했다. 미자의 생각은 달랐다. 돈을 빌려준 파란 눈의 외국인들이 여의도의 높은 빌딩을 헐값으로 사들이는 것을 보며 부동산은 결코 끝물이 아님을 확신했다. 


 한편, 동네 빵집은 수명이 다해 가는 비즈니스였다. 서울 시내부터 시작된 프랜차이즈 제과점은 깔끔한 인테리어, 저렴한 가격, 연예인 모델을 앞세워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골목 상권을 잠식했다. 그들은 자본의 크기와 빵의 종류에서 애초에 개인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부부 빵집’이 있는 화곡동 골목엔 아직 프랜차이즈가 상륙하기 전이었지만 입점은 어차피 시간문제였다. 자의든 타의든 미자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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