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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한솔 May 28. 2024

<경희궁> 힐링 탐방기

흥화문~숭정전~자경전~서암~태령전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 경희궁> 책 읽고, 경희궁 탐방하기


지난해 덕수궁, 창경궁, 경복궁, 창덕궁 탐방을 마친 뒤, 마침내 서울 5대 궁궐 탐방 이야기의 마지막 장소 대망의 "경희궁" 탐방을 다녀왔다. 시간의 텀을 둔 이유는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 경희궁" 책 발간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이번 달 중순 책이 발간돼 바로 사서 읽으며 배경지식을 쌓은 다음 바로 경희궁을 다녀왔다.


바로 옆 돈의문역사박물관마을과 서울역사박물관, 경교장 그리고 한양도성 인왕산 순성 및 성곽마을 탐방 등을 위해 이 일대를 수 차례 찾았지만 경희궁 정문 안으로 드디어 처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경희궁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에서 관리하는 네 궁궐과는 달리, 경희궁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아쉽게도 경희궁은 흥선대원군 시절 전체 전각의 대부분이 경복궁 중건의 자재로 쓰이면서 헐리는 바람에 지금은 극히 일부만 남아있다. 경희궁 터에 과거에는 서울고등학교, 현재는 서울역사박물관 등 건물이 들어서 있어 복원마저 별로 이뤄지지 못했다.


사적으로 지정된 경희궁은 조선후기의 이궁이었습니다. 1617년(광해군 9)부터 짓기 시작하여 1623년(광해군 15)에 완성되었습니다. 경희궁이 들어서기 전 이곳에는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집이 있었는데, 이곳에 왕기가 서려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 터를 몰수하고 왕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경희궁의 처음 명칭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같은 발음이라 하여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바뀌었습니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西闕)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東闕)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입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탄 후 대원군이 중건하기 전까지는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이 되었고, 서궐인 이곳 경희궁이 이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이곳 경희궁을 이궁으로 사용하였는데,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에 있던 건물의 상당수를 옮겨갔으며, 특히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경희궁은 본격적인 수난을 맞이하였습니다. 1910년 일본인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숭정전 등 경희궁에 남아있던 중요한 전각들이 대부분 헐려 나갔고, 그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경희궁은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서울시에서는 1987년부터 경희궁지에 대한 발굴을 거쳐 숭정전 등 정전지역을 복원하여 2002년부터 시민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




1. 금천교

궁궐 탐방에 있어 당연히 첫 번째로 맞이하는 전각은 정문 아니겠는가? 정문을 통과한 다음 이어서 바로 금천교를 건너는 것이 국룰인데 경희궁은 예외다. 왜냐하면 금천교는 원래 위치에 잘 복원되었지만 나머지 전각들이 궁궐 울타리 안에 있는 것과 달리 단절돼 위치하게 됐기 때문이다. 정문과 금천교가 별개로 존재하는 안타까운 상황인 것. 아무쪼록 지금 기준 궁궐 밖에 위치해 있었기에 금천교를 탐방의 시작점으로 정했다.


1619년(광해군 11)에 건립된 금천교를 일제가 매몰시켰던 것을, 서울시에서 2001년 발굴을 통하여 발견된 옛 석조물을 바탕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고 한다. 본래의 자리에 처음 구성된 석조물을 바탕으로 옛 모습과 흡사하게 복원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금천교 건너기 전 보이는 구세군 건물이 바로 흥화문의 있던 자리이다. 지금은 흥화문이 있던 자리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남아있다.



2. 흥화문

 흥화문은 1932년 일제가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해 떼어갔고, 그 자리에는 이후 영빈관에 이어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그 정문으로 남게 되었다. 경희궁 복원사업을 위해 1988년 흥화문은 이미 구세군빌딩이 세워져 원래자리로 오지는 못하고 옛 위치로부터 서쪽으로 약 200m 지점에 복원됐다. 결과적으로 숭정문과 숭정전, 자정전과 일직선을 이루게 돼 나름 차선의 위치에 복원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은 비록 다른 궁궐의 문보다 규모가 작지만 그래도 꽤 멋스러웠다.


다만, 월대가 없는 점이 아쉽더라. 경복궁 정문 광화문과 덕수궁 정문 대한문은 앞에는 근래에 월대가 복원됐고, 창덕궁 정문 돈화문 앞에도 드넓은 월대가 있다. 창경궁은 월대가 없지만 그래도 사람이 다니는 인도가 넓게 나 있다. 경희궁은 정문 바로 코앞이 도로라 차가 지나다니기도 하고, 인접해서 차가 주차되어 있기도 해 이 점이 안타까웠다.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니 사철나무와 그 사이로 난 길이 보였다. 전각들이 얼마 없는 것은 안된 일이지만, 대신에 숲이 조성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위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금 걸었더니 숭정문과 둘레의 행각이 눈에 들어왔다.



3. 숭정문

경희궁의 정전 숭정전은 물론이요, 편전 자정전과 (태령문을 개방하고 있지 않은 관계로) 태령전까지, 그러니까 경희궁의 복원된 전각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모두 숭정문을 통해야만 한다. 궁궐의 정문과는 달리 정전의 정문은 모든 궁궐 중 숭정전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 지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위치가 말이다.


높은 위치에 축대도 조성돼 있어 그저 정전으로 가기 위해 통과하는 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굉장히 멋있었다. 숭정문 위에서 바라본 전경 또한 대단했고. 이곳 숭정문에서 경종과 정조가 즉위식을 치렀다고 한다.



4. 숭정전

경희궁의 정전 숭정전은 창건공사 초기인 1618년(광해군 10)경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로 건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1926년 건물을 일본인 사찰에 팔았는데, 이는 현재 동국대학교 안의 법당 정각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를 옮겨 복원하기에는 건물이 낡고 변형이 심한 것과 사유재산이라는 이유 등으로 무리가 있다 보니 새롭게 현 위치에 복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운데 삼도가 좌우로는 품계석이 있었는데, 매우 드넓은 공간 끝에 정전 숭정전이 있었다. 또한, 행각이 둘레를 이루고 있다 보니 어느 궁궐 정전 못지않게 기품이 있는 모양새였다. 이곳 숭정전에서 경종, 정조, 헌종 이렇게 세 임금이 즉위식을 거행했단다.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원래 경희궁에는 품계석이 없었단다. 품계석이 처음 세워진 것은 정조 즉위 이후로, 창덕궁에 처음 세워졌고 이후 복원된 경복궁과 덕수궁이 이를 따라 품계석을 설치했다. 경희궁은 조선시대에는 품계석이 없었다가 근대 복원 때 설치 된 것이다.


또한 책을 안 읽었으면 모를뻔한 사실 중 하나는 숭정전 앞 상월대와 하월대 계단 중간의 판석(어칸석)에는 공작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잘못 복원된 것이라 한다.

상월대가 숭정전과 함께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쓰이면서 하월대만 남아있었는데 하월대 어칸석은 공작이 그려져 있어, 이를 보고 복원 시 상월대 어칸석에도 공작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정각원 상월대 어칸석에는 봉황이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하월대는 공작, 상월대는 봉황이 있었던 것인데 둘 다 공작을 새긴 것이다.


 조금만 신경 썼더라면 이러한 실수를 안 했을 텐데 안타깝다는 말 밖에는 안 나온다. 배경지식 없이 갔으면 그저 경희궁에는 봉황이나 용이 아닌 공작이 있구나 하고 넘어갔겠지. 아니 공작인지도 잘 인지 못한 채로 지나쳤을 것 같았다. 배경지식을 쌓고 방문한 덕에 더 재미있는 탐방을 할 수 있었다.


숭정전 내부 당가에 용상을 설치하였는데, 그 뒤로 곡병과 일월오봉병을 두었다. 우물천장에는 마주 보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이 있는데 언뜻 봐도 용이 뭔가 통통해 보이는 등 조금 이상해 보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역시 복원 과정에서 비례를 맞지 않게 설치한 것인데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통해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내부까지 본 다음에는 월대 위에서 사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어느 방향으로 봐도 아름다웠다. 행각 자체도 아름다웠고, 특히 숭정전에서 바로 보는 모습이 일품이었다. 아래로 돌과 위로 하늘 그리고 그 뒤로 현대식 건물과 나무와의 조화가 이루는 광경을 보니 절로 힐링이 되더라. 책 표지 배경을 찾아 인증숏을 남긴 후, 뒤쪽으로 갔다.

자정전으로 통하는 자정문 역시 계단 위로 조금 높이 위치에 있었다.



5. 자정전

숭정전 뒤로 경희궁의 편전 자정전이 있다. 자정전은 숭정전과 마찬가지로 좌우 행각이 멋있을 뿐만 아니라, 뒤편과 우측에는 화계가 조성돼 그 주변 관경이 참 예쁘다. 전각이 몇 개 남아있지 않은 경희궁이다 보니 흥화문을 지나 숭정전을 지나 자정전까지 순식간에 와서 사실은 지금 쉬어갈 타이밍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제로 쉬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하나? 화계 위로 그리고 그 주변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느라 걸음을 쉬이 뗄 수가 없어 한참을 머물다가 이동했다.

         

이렇게 자정전의 오른편을 보고 하마터면 바깥으로 나갈 뻔했다. 언뜻 보면 왼편은 막혀있는 길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 왔던 길로 아직은 나가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왼쪽사이에 바로, 경희궁의 하이라이트 지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경희궁이 세워진 설화의 주인공 '서암'이 있기 때문이다.  


서암으로 가는 길


이를 모르고 되돌아갔다면 다시 들어오시면 되긴 하지만, 이 글을 보신 분들은 한 번에 서암을 잘 찾아가시기 바란다. 서암뿐만 아니라 태령문이 닫혀있는 관계로 태령전 또한 이를 통해서 도달할 수 있기에 꼭 이 길을 찾아 들어가셔야겠다.



6. 서암

 태령전 뒤에 있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가 바로 서암이다. 이 바위는 원래 왕암으로 불렸는데, 인조의 부친인 정원군의 집터에 왕기가 서렸다는 술사의 말로 인해 광해군이 이곳에 경덕궁(경희궁의 옛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결과론적으로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정원군을 원종으로 추존하였으니 두 명의 왕을 배출한 셈이다. 이 '왕기설'은 인조반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허구로 보인다.


서암 안쪽에는 아직도 고인 물이 있고 미약하지만 물길이 나있다. 수백 년이 지나도 마르지 않다니. 신기하고 놀라웠다. 왕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험해 보이는 서암 앞에서 두 팔 벌려 그 기를 받아보았다. 그런 다음 앞쪽의 태령전으로 향했다.



7. 태령전

태령전 내부에는 영조의 어진이 있다. 본래 태령전은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 않았던 건물이었다가 영조의 어진이 새로 그려지자 1744년(영조 20)에 이곤을 중수해 어진을 봉안했다고 한다. 영조 승하 후에는 혼전으로 사용하기도 한 태령전은 <서궐도안>에 따라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복원됐다.

닫혀 있는 태령문

다시 한번 강조드리자면, 태령전의 정문 태령문은 닫혀 있다. 숭정문 통과, 숭정전과 자경문을 지나 자정전의 왼편 좁은 길을 통해야 서암과 태령전에 닿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



경희궁 산책길

복원이 미미해서 건축물 보는 시간은 짧지만, 대신 산책길은 꽤 방대하다. 태령전까지 다 둘러보면 다시 숭정문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걸어보자. 길을 따라가면 태령전 서편이 나오며 고지대에서 이를 바라볼 수 있다. 담장을 따라 그 둘레를 한 바퀴 돌며 바깥에서 복원 건축물을 보는 맛을 느껴보시기 바란다.

태령전 서편에는 선조의 글씨를 집자한 '영렬천'이 보인다. 바위틈에서 물이 나와 언제나 마르지 않고 차가워 사람들이 초정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담장 둘레길 외에 숲 속을 지나는 숲 속 산책길도 꼭 걸어보시기 바란다. 바로 옆이 서울 한복판 도심이지만, 이 길 위에서는 마치 지방의 한 명산에 머무르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가 있다. 산책을 충분히 다 했다면, 숭정문 우측 편 오래된 느티나무를 감상한 서울역사박물관 쪽으로 내려가보자.


바로 일제강점기에 지은 방공호가 보일 것이다. 이 일대가 왕과 왕비의 침전인 융복전과 회상전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책 안 읽었다면 이 공간은 와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여기서 서울역사박물관 쪽으로나 혹은 차도를 따라 흥화문 쪽으로 나가거나 하면 된다. 난 후자의 길로 나가며 경희궁 탐방을 마쳤다.






관람료 없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으며, 정전과 편전 등 궁궐의 핵심 건축물을 보는 동시에 자연 속 산책길을 거닐 수 있다는 것이 경희궁의 큰 매력이다. 서울역사박물관 등 건물들이 들어서 복원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러다 보니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소관의 궁궐이 아니며 인지도 또한 낮다.


하지만 인조를 시작으로 효종, 헌종, 숙종, 경종, 영조, 정조, 숙종, 순조, 헌종, 철종까지 조선 중.후기 왕들이 임어했던 명실상부 5대 궁궐로 손꼽을 수 있는 경희궁이다.


생각 이상으로 볼거리가 꽤 있었고, 공간이 주는 행복감도 대단했다. 앞으로 하나씩 하나씩 옛 궁궐 내 건축물을 채워나가며 보다 궁궐의 모습을 갖춰가길 바라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경희궁이 되길 바란다.


이로써 서울 5대 궁궐 탐방을 마쳤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힐링이나 기분전환 하고 싶다면, 잠시 복잡함을 잊고 싶다면 궁궐에 가보시라!




경희궁은 남아 있는 건축물이 적기에, 이달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 경희궁>을 꼭 읽고 난 뒤 경희궁에 방문해 보시기 바란다. 아울러 필자의 저서 <한양도성으로 떠나는 힐링여행 > 읽고 아름다운 한양도성 탐방길에서 힐링의 시간을 보내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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