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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한솔 Oct 12. 2023

<창덕궁> 힐링 탐방기 1편

돈화문 ~ 인정전 ~ 궐내각사 ~ 선정전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 창덕궁> 책 읽고, 창덕궁 탐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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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을 제외하고 규모가 작거나 실제 궁궐로서의 기능을 한 역사가 짧은 순서대로 탐방을 시작, 덕수궁~창경궁~경복궁에 이어 대망의 창덕궁을 마침내 탐방했다. 경복궁 탐방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창덕궁이 5대 궁궐 중 가장 메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궁궐 탐방을 기획하고 도서를 읽기 전까지는, 단연 경복궁이 으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궁궐 중 유일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문화재이자, 실제 조선 왕조의 법궁으로서의 기능을 가장 오래 했던 것 또한 창덕궁이다.

 경복궁은 사실 흥선대원군 이후 및 최근 몇십 년 내 복원했기에 지금 우리가 보는 건축물은 세워진지 상대적으로는 짧지만, 창덕궁 내 전각들은 상대적으로 세워진 역사가 긴 편이다. 입장료도 일반 관람 3천 원에다가 창덕궁 후원 관람 입장료 5천 원을 추가로 내 가장 높은 입장료를 기록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창덕궁이 가장 대표 궁궐이라고 생각했고 화려한 탐방을 오늘 마쳤다. 경복궁만큼 전각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나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려면 창덕궁도 최소 하루는 걸릴 것이라 탐방 이야기를 최대한 간략하게 해보려 한다.


창덕궁은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궁궐이다. 1405년(태종 5)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진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궁궐이라 하여 ‘동궐’이라 불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어 광해군 때에 재건된 창덕궁은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法宮)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응봉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더불어 비원으로 잘 알려진 후원은 각 권역마다 정자, 연못, 괴석이 어우러진 왕실의 후원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 관리소)





1. 돈화문

1412년(태종 12)에 최초 건립,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1609년에 재건된 궁궐 대문 중 가장 큰 규모의,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은 그 앞  월대의 넓이가 어마어마하다. 여기서 돈화문과 창덕궁의 위상을 단 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사용했고, 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경복궁의 네 개의 대문과는 달리 창덕궁의 돈화문을 제외한 금호문과 경추문 등 바깥과 안을 연결하는 문들의 규모는 작더라.


 또한 다른 궁궐은 정문을 통과하면 통칭 금천교라 불리는 다리가 나오는데, 돈화문을 통과하니 금천교가 바로 나오지 않고 수목이 어우러진 매우 아름다운 전경을 볼 수 있다. 이는, 창덕궁 앞에 종묘가 들어서 있어 돈화문이 궁궐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정문의 정면이 아닌 동쪽으로 나있다. 또한 경복궁이나 창경궁은 정문을 통과해 직진만 하면 궁궐의 정전에 도달하는데, 창덕궁은 오른쪽으로 꺾어 금천교를 지나 다시 왼쪽으로 걸음을 해야 정전인 인정전에 다다른다. 다만, 정전까지 가는 문이 3개인 것은 경복궁과 동일했다.

 이처럼 정문 돈화문의 위치로 인한 다른 궁궐과의 차이점 등을 살펴보니 탐방이 더 재미있더라.



2. 인정전 : 창덕궁의 정전


인정전 가는 길 : 금천교~진선문~인정문

동선 상 금천교를 건너지 말고 돈화문 정면 방면에 있는 궐내각사를 먼저 가는 것이 낫다. 하지만, 나는 9시에 첫 번째로 입장을 해 사람이 안 붐빌 때 얼른 인정전을 먼저 보고자 과감히 금천교를 건넜다.

 다른 궁궐의 금천교는 별도의 이름이 있는데 창덕궁은 그 이름 그대로이다.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이며, 조각상과 아름다운 문양, 이중 홍예교로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하는데 딱 봐도 그렇게 보였다. 창덕궁의 금천교 다 왔다.


금천교를 건너 진선문을 통과하니 확 트인 공간이 나오더라. 거기서 바로 반대 편 숙장문을 지나면 왼쪽 라인에는 선정전과 희정당 및 성정각 일원을 거쳐 후원으로 가는 입구가 나오니, 후원 관람을 먼저 할 계획이시라면 참조하시기 바란다. 나는 이날 관람객 중 첫 번째로 인정문을 통과, 인정전 영역에 도달했다.

  

인정전

 경복궁의 정전 근정전을 봤을 때의 광경과 비교적 유사했다. 외관상 중층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통층 구조라는 것도 같았다. 다만 뒷 배경이 북한산의 응봉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 달랐는데, 자연을 등진 정전의 모습이 굉장히 멋졌고 돋보이더라.


  인정전은 1405년(태종 5)에 창덕궁 창건과 함께 건립되었다가 1418년(태종 18) 박자청에 의해 다시 지어졌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0년(광해 2)에 재건, 1803년(순조 3)에 소실된 것을 이듬해에 복원해 현재에 이른다고 한다. 외행각 일원은 30년 정도밖에 안 된, 1991년 이후에 복원했단다.

창덕궁의 정전으로서 탄탄대로만 걸었는 줄 알았는데, 참 기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더라. 경복궁 근정전 보다 월대의 높이가 낮았고, 12 지신과 같은 석상은 없더라.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용도인 물을 담아 두는 드므는 있었다.


학창 시절 한국사 좀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탐방을 준비하며 새롭게 알았던 것은 서양 문물의 요소가 많았다는 것. 인정전의 내부도 그런데, 들여다보면 일단 천장의 거대한 전구들이 눈에 띈다.


 뒤쪽의 유리창과 커튼도 마찬가지. 1907년 순종이 덕수궁에서 이곳 창덕궁으로 이어함으로 인해 이러한 외래 문물이 있는 것이다. 조선의 가장 오랫동안 법궁의 기능을 했지만, 결국엔 마지막 임금과 그 시대를 반영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공부 안 하고 탐방했으면, 이게 무슨 상황인가 했었을 것이다.



 3. 궐내각사

궁궐 안에 위치한 관청을 궐내각사라 부른다.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 건강을 살피는 내의원, 정신문화를 담당하는 규장각,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던 예문관 등이 중심 시설이었다. 대부분의 건물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금천을 경계와 경관 요소로 삼았다.


홍문관

인정전의 서편으로 선원전 영역을 지나 궐내각사까지 이를 수 있었지만, 나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인정문과 진선문을 통과한 다음 금천교 건너기 전 우측의 옥당으로 들어갔다. 이 옥당을 통해 궐내각사 영역이 다 연결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가보니 단절되어 있더라.


 홍문관은 한국사 좀 열심히 보신 분들 다 알지 않는가? 집현전의 후신으로 학문연구와 언론기관으로서 기능을 한,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언관의 기능을 수행해 삼사로 불렸던 '홍문관'의 별칭이 바로 옥당이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전각인지만, 조선시대 중요한 기능을 했던 홍문관이니만큼 한 번 둘러보고 나오시기 바란다.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복원된 궐내각사

옥당을 나와 금천교를 건너 궐내각사 영역으로 들어갔다. 2005년에 새로 복원한 궐내각사, 다른 궁궐의 궐내각사는 아직 복원이 안되었기에 창덕궁에서만 유일하게 볼 수 있다. 옹기종기 많은 건축물들이 모여있고 그 길은 미로를 연상케 하는데,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업무를 하는 신하들과 소통하며 협업이 쉽게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전각들이 모여있는 것 자체로 참 매력 있는 공간이었다. 걷는 재미와 함께 보는 재미도 있었다. 여러 건축물들의 조화롭게 어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규장각

(좌) 규장각  /  (우) 검서청

궐내각사 영역의 첫 번째로 마주친 관청은 동편의 검서청과 서편의 규장각이다. 왕실의 서적을 보관하는 기능의 규장각은, 잘 아는 관청이다. 본래 정조가 즉위년인 1776년 임금의 시문과 글씨 등을 보관할 집을 창덕궁 후원에 짓고 그 건축물 1층을 규장각으로 했는데, 너무 후미진 곳에 있어 불편하다는 규장각 제학 유언호의 건의로 정조 5년인 1781년 이곳 궐내각사 영역으로 옮겼다고 한다.


규장각의 부속건물인 검서청 우측으로는 금천이 실제로 흐르지는 않지만 물길의 통로가 길게 나 있는데 그 주변 광경이 매우 아름답다. 창덕궁 내 아름다운 공간이 한 두 곳이 아니지만 여기를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다.


봉모당과 책고

(좌) 봉모당  /  (우) 책고

규장각 영역을 지나 다음으로 본 전각은 검서청 북쪽의 봉모당이다. '봉모'는 모훈의 자료를 받들어 간직한다'는 뜻인데, 이곳은 역대 선왕의 유품을 보관하던 장소다. 봉원당의 근처에는 책고라는 현판이 달린 기다란 모습의 전각이 있다. 말 그대로 책을 보관한 창고로 중요성이 깊은 전각은 아니지만, 그 주변 공간이 아늑했으며 특히 서편 담장 너머의 풍경이 참 좋았다.


가운데 한옥 지붕과 왼편의 주택 및 빌딩, 오른편 너머의 아파트 혹은 빌라가 줄지어 있는 모습. 담장 너머로 각기 다른 유형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는 광경이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음 전각을 보기 위해 책고 근처에서 다리를 건너는데, 그 풍경이 장관이었다.


내의원 영역 : 억석루, 약방

(좌) 옥석루  /  (우) 약방

 구선원전 남쪽 행각에 위치한 2층 집, 내의원의 부속건물로 약을 다루던 억석루가 나온다. 비교적 이색적인 모습이라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다. 구선원전이 가까이 있지만, 남쪽으로 더 내려가 약방(내의원)을 먼저 봤다. 아담하고 귀여운 느낌이 들더라.


제사 영역 : 구선원전, 양지당

(좌) 선원전  /  (우) 양지당

 구 선원전은 말 그대로 신 선원전이 지어짐에 따라, 옛 선원전에 붙여진 이름으로 역대 왕들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동측의 양지당은 임금이 선원전에서 재를 올리기 전 머물던 곳으로 어진을 담은 궤를 보관한 곳이다. 막혀있어 못 갔던 북쪽의 의풍각은 일제강점기에 신축된 것으로 전해지며, 제사용 그릇과 도구 등을 보관하던 창고였다고 한다.


(좌) 진설청 /  (중) 구 선원전 몸체  /  (우) 내찰당

 구 선원전 몸채 앞의 좌우로는 진설청과 내찰당이 붙었는데, 세 개의 전각이 나란히 있으니 뭔가 든든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동편으로는 선정전 및 인정전 영역과 연결되어 있어, 필자처럼 먼저 인정전을 가지 않고 궐내각사를 간 다음 인정전으로 향하는 것이 동선상 더 효율적이긴 하다.

  궐내각사 영역은 굉장히 방대했고, 멋지게 복원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관청 이름이 등장하니 친숙하기도 했다. 제대로 음미하고 살핀다면 여기서만 한두 시간은 보낼 수 있겠더라. 인정전은 봤으니 그대로 통과해 선정전으로 향했다.



4. 선정전 : 창덕궁의 편전

멀리서 보면 더 잘 보이는 선정전 청기와

지난 궁궐들을 탐방하면서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것이 있다. 정전 옆에는 왕의 사무공간인 편전이 있다는 사실. 인정전 동쪽 옆 전각은 예상대로 편전이 있었고 그 이름은 선정전이다. 청기와를 올린 것이 색다른데 청기와는 가격이 비싸 귀하다고 여겨지며 궁궐 내에서도 흔히 볼 수 없다. 사실 복도각으로 인해 선정전 청기와를 잘 못 봤는데 오히려 원거리에서는 잘 보였다.

선정문에서부터 복도각으로 이어져 있다는 특징은, 선정전이 한때 신주를 모시는 곳인 혼전으로 쓰였으며 복도는 그때의 흔적이다. 그러고 보니 경복궁의 혼전인 태원전이 복도각으로 연결돼 있었던 것과 확실히 유사했다. 복도각은 멋있기도 하면서 동시에 비나 햇볕을 피할 수도 있어 여러모로 방문객들에게 이로운 건축물이다.


동쪽 궐내각사가 있던 자리

선정전을 나왔는데 저 위 카페 앞까지의 넓은 터의 아름다운 광경이 보였다. 이곳 터에는 원래 동쪽 궐내각사가 있던 자리로 왕명출납을 맡았던 승정원과 언관들의 대청, 대신들의 회의 공간 빈청, 왕의 시중을 들던 내시들의 공간인 내빈원, 음식을 장만하고 그 음식을 담는 그릇을 관리했던 사옹원이 있었다고 한다.





정전인 인정전도 대단했지만, 창덕궁 탐방 1편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다른 궁궐에서는 볼 수 없는 "궐내각사"였다. 미로와 같은 구조로 인한 걷는 재미와 관청들이 조화롭게 모여있다 보니 전각들의 지붕능선과 사이사이의 작은 문들 등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금천교 방면을 비롯한 그 일대의 아름다운 경관이 '백미'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이 굉장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했는데,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거라는 건 예상 밖이었다. 다음 편에서도 상상 이상의 아름답고, 멋지고, 예쁜 창덕궁의 모습이 이어지니 계속 관심 가져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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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안내 리플릿에는 다른 궁궐과는 달리 주요 전각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없다. 때문에 사전 배경지식 없이 가면 각 전각 앞의 표지판 상의 문구나 인터넷 검색에 의존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게 될 것이다.


 나는 다행히도,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 창덕궁> 도서를 미리 읽었고, 탐방하면서도 수시로 펼친 덕에 수월하게 탐방할 수 있었다. 여러분들도 꼭 읽어보시고 탐방하시길 권해드린다. 아울러 필자가 쓴 <한양도성으로 떠나는 힐링여행> 책 읽고 한양도성으로 힐링 여행을 떠나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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