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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한솔 Oct 15. 2023

<창덕궁> 힐링 탐방기 3편

부용지 ~ 애련지와 의두합 ~ 연경당 ~ 존덕정과 관람지

<창덕궁으로 떠나는 힐링여행 : 창덕궁> 책 읽고 창덕궁 탐방하기


https://brunch.co.kr/@greatpine7/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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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편은 창덕궁의 후원 관람 탐방기이다. 창덕궁의 후원은 차별 관람인원이 정해져 있는데, 온라인 50명 현장판매 50명(10~11월 등 일부시기 100명) 등으로 관람할 수 있다. 나는 사전에 온라인 예약 결제를 해뒀다. 즉, 일반 관람 예매(3천 원)와 후원 관람(5천 원)을 모두 온라인으로 예매를 해 하루에 모두 관람했다. 하지만, 워낙 탐방 지점이 방대하니, 후원 관람과 일반 관람을 각각 다른 날에 하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후원은 성정각 동편이며 창경궁으로 출입가능한 함양문 인근에 위치해 있다. 만약, 후원만 탐방할 계획이라면, 돈화문을 지나 우측의 근천교를 건너 진선문을 통과 후, 인정문이 아닌 정면의 숙정문을 통과해 계속 직진하다 보면 좌측에 후원입구가 나온다.


출처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 누리집



태종 대 창덕궁 창건 당시 조성되었으며, 창경궁의 후원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정자가 불타버리고, 1623년 인조 때부터 개수 및 증축돼 현재 모습을 이루었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정원을 조성, 인위적 손질을 최소화하면서도 자연을 더 크게 완성시킨 절묘한 솜씨를 자랑한다. 4개의 골짜기에 각각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옥류천 정원이 펼쳐진다. 4개의 정원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크고 개방된 곳에서 작은 은밀한 곳으로 인공적인 곳에서 자연적인 곳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결국은 큰 자연인 뒷산 매봉으로 연결된다. 세계 대부분의 궁궐정원은 보고 즐기기 위한 관람용인데 비해, 창덕궁 후원은 여러 복합적인 기능을 수요한 정원이었다.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며 사색에 잠기던 곳이었고 때론 연회를 열고 활쏘기 놀이를 즐기던 곳이었다. 왕이 참관한 가운데 군사훈련도 행해졌고, 왕과 왕비가 백성들의 생업인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기도 했다.






11. 부용지 일원 : 주합루, 부용정, 영화당

후원의 첫 번째이자 대표 정원인 부용지 일원. 이곳은 휴식의 공간은 물론이거니와 학문과 교육을 하던 장소였다.


주합류 일원

(좌) 규장각  /  (중) 영화당  /  (우) 부용정

우선 어수문 지나 계단 위에 바로 보이는 주합루는 정조 원년인 1776년에 창건된 2층 누각의 건물이다. 1층은 왕실 서고인 규장각이고 2층은 열람실인 주합루라고 한다. 이와 함께 그 서쪽의 서향각 등도 왕실 도서관 용도로 쓰였다 한다. 산을 등지고 연못을 내려다보는 뷰라니. 책 읽을 맛 나겠더라. 이외에도 서북쪽의 희우정과 동북쪽의 제월광풍관이 위치해 있는데, 높은 위치라 그 내려 보이는 광경이 아름답다고 한다.

언덕에서 바라본희우정, 서향각
(좌) 희우정  /  (우) 서향각



영화당과 부용정

규장각 동편의 영화당도 월대 위에 위치해 연지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여기서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했다는데, 연못을 두고 과거 시험이라니.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당
연지 옆의 부용정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부용정은 연못에 피어 있는 한 송이 꽃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곳 연지의 명칭과 같은 정자 아닌가? 연지와 바로 붙어서, 아니 걸터 있기에 이 일원의 여러 누각 중 연지를 즐기기에 가장 명당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물멍, 나무멍 하고 낮잠 자면 참 좋겠더라. 어느 각도에서 봐도 다 그 전경이 환상적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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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경치 좋은 곳도 몇 년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지만, 부용지 일원은 내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란 확신이 든다. 영화당을 지나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는데, 이동 길의 우측 담장은 창경궁과의 경계를 이루는 담장이었다. 작은 키로 담장 너머를 빼꼼히 봤더니 멀리 대온실이 보였다.



12. 애련지 일원 : 의두합, 애련정

의두합

1827년(순조 27) 효명세자는 애련지 남쪽에 의두합을 비롯한 몇 개의 건물을 짓고 담장을 쌓았다. 현재 ‘기오헌(奇傲軒)’이라는 현판이 붙은 의두합은 8칸 의 단출한 서재로, 단청도 없는 매우 소박한 건물이다. 바로 옆의 운경거(韻磬居)로 추정되는 건물은 궐 안에서 가장 작은 한 칸 반짜리 건물이다.

의두합 뒤에는 규장각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어 이를 통해 꼭대기 너머로 가면 바로 좀 전에 멀리서 봤던 주합루 일원에 갈 수 있다. 탐방 때에는 제한되어 갈 수 없었다. 아무쪼록 기오헌과 운경거를 배경으로 한 광경은 너무 에뻤다.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애련지와 애련정

1692년(숙종 18)에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섬은 없고 정자는 연못 북쪽 끝에 걸쳐 있다. 꽃을 특히 좋아했던 숙종이 이 정자에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붙여, 연못은 애련지가 되었다.

불로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애련지와 애련정이 있다. 먼저 봤던 부용지 일원이 매우 화려했다면, 애련지는 군더더기가 없는 굉장히 깔끔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다. 단풍이 드는 계절의 애련지는 굉장히 아름답다고 하니 참조 바란다.


어수당 터

애련지 서쪽 어수당이라는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으며, 작은 연못이 하나 있다. 짧은 시간과 거리에 연못을 세 개나 보는 것은 처음으로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깨끗한 물처럼 마음이 깨끗하게 씻기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연못은 또한 주변에 푸른 나무들이 둘레에 있어 운치가 끝내줬다. 충분히 머무른 뒤, 인근의 연경당 일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3. 연경당 일원 : 연경당, 선향재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8년(순조 28) 경에 창건했다.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지만 내부는 연결되어 있는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일반 민가가 99칸으로 규모가 제한된 데 비해, 연경당은 120여 칸이어서 차이가 난다.

장락문을 통과해 연경당으로 진입했다. 후원 공간 중 집의 기능을 하는 곳이 연경당 일원이다. 단청을 입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낙선재의 전각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낙선재에도 장락문이 있었다. 사방이 역시나 행각 및 담장이 둘러싼 모습을 하는데 전각의 수에 비해 둘레 내 공간이 매우 드넓었다. 앞마당과 뒷마당이 굉장히 광활한 주택을 생각하면 이 말이 어떤 말인지 이해가 쉬울 것이다. 가볼 수는 없었지만 안채의 뒤편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반빗간이 있다.


뒤에서 본 안채  /  사랑채와 오른쪽의 선향재

고종 이후 연경당은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으로 이용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연경당 사랑채 앞에는 작은 무대와 관람용 의자가 놓여 있는 것을 봐서 공연이 열리는 장소, 즉 지금도 연회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연화당 사랑채의 바로 옆에는 선향재가 있다.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했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고 누리집에 나와있었다. 그냥 딱 봐도 이국적인 모습임에는 틀림없었다.


선향재의 정면과 측면  /  농수정(가장 우측)

선향재 지나서는 높은 위치에 농수정이 있다. 계단을 오를 수 없어 전각 자체를 가까이 못 봐서는 아쉬웠는데, 그 일대 풍경은 참 아름다웠다. 농수정 옆 태일문을 나서 오솔길을 따라 탐방의 마지막 여정, 존덕정 일원으로 향했다.



14. 존덕정과 관람지 일원

이 일대는 후원 가운데 가장 늦게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모습은 네모나거나 둥근 3개의 작은 연못들이 있었는데, 1900년대 이후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관람지라고 부른다. 연못을 중심으로 겹지붕의 육각형 정자인 존덕정, 부채꼴 형태의 관람정(觀纜亭), 서쪽 언덕 위에 위치한 길쭉한 맞배지붕의 폄우사(砭愚榭), 관람정 맞은편의 승재정(勝在亭) 등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을 세웠다. 폄우사는 원래 부속채가 딸린 ‘ㄱ’ 자 모양이었으나 지금은 부속채가 없어져 단출한 모습이고, 숲 속에 자리 잡은 승재정은 사모지붕의 날렵한 모습이다. 1644년(인조 22)에 세워진 존덕정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관람정과 승재정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폄우사

가까이 폄우사와 그 뒤의 존덕정 모습
(좌) 폄우사  /  (우) 존덕정

먼저 나오는 폄우사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다'라는 의미로 효명세자가 독서처로 삼았던 곳이라 한다. 책 읽는 장소이자 근처의 연지를 바라볼 수 있는 휴식처의 기능도 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폄우사가 네모난 모양의 정자로 느껴졌다. 후원에서 워낙 정자를 많이 보다 보니 그렇게 보였던 것도 같다.


존덕정

(좌) 존덕정 내부 천장 /  (우) 존덕장에 딸린 '반월지'

존덕정 일대의 다른 정자들이 19세기에서 20세기 무렵 세워진대 반해, 존덕정은 인조 22년인 1644년에 지어진 오래된 정자다. 육각으로 되어있다 보니 처음에는 육각정이라고 불렸단다. 지붕은 두 겹으로 되어있다. 내부 천장에는 쌍룡이 눈에 띄는데, 자세히 보니 하나는 청룡이고 하나는 황룡이었는데 매우 화려한 모습이었다.


관람지 그리고 관람정과 승재정


부채꼴 형태의 관람정은 관람지에, 승재정은 그 건너의 높은 위치에 있다. 존덕정에서 바라본 관람지의 모양은 한반도와 흡사한데, 참조한 도서에 의하면 일제가 의도적으로 조성한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참조 바란다.


아무쪼록 어떤 연유로 이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와는 별개로 이곳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부용지와 더불어 쌍두마차에 해당되는 아름다운 연지 공간이라 할 수 있겠는데, 나는 여기가 더 좋더라.


후원의 아니 창덕궁 내에서도 원픽으로 뽑힐 만한 곳이라고 가히 말할 수 있다. 여기를 끝으로 후원 및 창경궁 탐방을 마쳤다.




탐방한 영역후원 전체 면적의 5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듯했다. 상당 부분은 녹지 공간이며 출입이 제한됐다. 후원 북쪽 골짜기 옥류천 일원의 취규정과 취한정, 소요정, 태극정과 청의정, 농산정 그리고 그 외 능허정, 청심정 등 정자가 있다.

 또한 비공개지역으로 명나라 황제 신종의 제사를 모시던 '대보단'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어진 봉안처인 선원전과 그 부속건물, 쾌궁정, 몽답정과 연못이 있는 선원전 영역도 있는데 언젠가 둘러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창덕궁과 후원 탐방은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더라. 다른 궁궐은 어떤 이유에서든 극히 일부의 관람객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길지도 모르겠는데 창덕궁과 그 후원은 불호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다시 또 말하지만, 괜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게 아니다. 꼭 탐방해 보시기 바란다!



다른 궁궐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창덕궁은 배경지식 없이 가면 더 큰 재미를 모르고 지나칠 수 있으니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 창덕궁>을 꼭 읽고 가시기 바란다. 필자의 도서 <한양도성으로 떠나는 힐링여행> 보고 한양도성 탐방하시는 것도 강추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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