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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한솔 Feb 04. 2021

한양도성 '흥인지문 구간'

한양도성 전 구간 기획 순성 제3편

[한양도성 순성 - 제3편 ]

‘흥인지문 구간' (흥인지문~광희문~장충체육관)


- 전통과 현대, 화려함과 소박함이 공존하고
우리의 삶이 녹아있는 흥인지문 구간!



흥인지문 구간은?


 흥인지문 구간은 흥인지문부터 광희문을 거쳐 장충체육관까지의 총길이 1.8km의 구간으로 약 1시간이면 순성을 마칠 수 있다.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근처에 위치, 서울의 도심에 있어 접근성이 6개 구간 중 가장 좋다고 할 수 있겠다.


광희문까지 가는 길은 흥인지문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위치하는 등 번화가인 반면, 광희문에서 장충체육관으로 가는 길은 민가 지역이라는 특징이 있다.


 즉, 화려함과 소박함이라는 대비되는 광경을 만날 수 있는 매력 있는 구간이다. 아쉽게도 성벽 대부분이 철거 및 훼손되어 있다.



밤에 만나는 한양도성


 앞서 낙산 구간에서도 언급했지만, 한양도성은 밤에도 굉장히 아름답다!


 6구간 중에서도 특히 흥인지문 구간은 산속이 아닌 도심 번화가에 위치하고, 주요 지점인 흥인지문과 광희문은 조명이 켜졌을 때 더욱 빛이 나기 때문에 밤에 순성하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밤에 한양도성 구간을 순성했고, 그 아름다움을 소개해 드리겠다.





 

흥인지문


 구간 시작점인 흥인지문(興仁之門)은 보물 제1호로 한양도성의 동대문이다.     

 현재의 흥인지문은 고종 6년(1869)에 다시 지은 것이라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어 보물로 지정되었다 한다.


 낮에 만나는 흥인지문이 '멋있다'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면, 밤에 만나는 흥인지문은 '아름답다'라는 느낌을 받게 해 주었다.


 그리고 1907년 좌우 성벽이 헐려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즉, 낙산 성벽이 흥인지문까지 이어지지 않고 도로가 나 있는데, 개인적으로 언젠가 전 구간이 성벽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일제시대 때 흥인지문이 철거되지 않은 이유

  그럼 왜 일제시대 때 왜 양쪽의 성벽만 헐고, 왜 정작 흥인지문과 그리고 숭례문은 그대로 둔 건일까?!


 지난해 해설사님과 순성했을 때 듣기로는, 임진왜란 중 일본의 두 장군이 각각 숭례문과 흥인지문으로 한양에 서로 먼저 들어왔다 주장했단다.

 즉 일본 입장에서는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그네들 전쟁영웅의 개선문이었고, 그러한 이유로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만감이 교차하지 않은가?! 어쨌든 보존돼 각각 국보로, 보물로 남은 건 다행인 것 같기도 한데...

 


* 옹성 - '독 안에 든 쥐'

 서울의 지세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아 군사적으로는 동대문이 가장 취약하였다. 때문에 방어를 위해 옹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옹성 안으로 적이 들어오면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와 적이 꼼짝 못 한다 하는데, 여기서 ‘독 안의 든 쥐’라는 말이 나왔다 한다.


 이는 지난해 해설사님의 설명을 듣고 알게 된 것인데, 이러한 배경지식을 알고 관람하니 훨씬 흥미로웠다.

 지금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운영되지 않고 있지만, 상황이 좋아져 한양도성 구간 순성 해설 프로그램이 재개된다면 꼭 이를 통해 순성하실 것을 강력히 권해드리고 싶다.


 

* 스탬프 투어

 제1편 백악 구간 순성 소개 글에 언급했던 것처럼 흥인지문은 스탬프 투어의 지점이다.

 그래서 흥인지문을 떠나기 전 한양도성 앱을 켜 스탬프 도장을 찍었다. 백악 구간 숙정문(말바위 안내소)에 이어 두 번째!



 오프라인 스탬프 투어 도장 찍는 곳도 흥인지문 좌측에 위치한 안내소에 있다.

 4곳의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기념 지가 주어지니 참여하시기 바란다!



오간수교와 오간수문


 흥인지문을 떠나면 곧 오간수교를 만난다.

 청계천 다리 중 유일하게 한양도성 성벽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광희문 성벽의 모습(성벽 몸체 위에 구축된 것이 여장이다)


* 여장

 체성(성벽의 몸체) 위에 조성된 낮은 담장으로 아군이 몸을 숨긴  총과 화포를 쏠 수 있는 시설이다.

 이 다리를 수십 차례 이상 다녀봤었지만 한양도성 구간 순성에 나섰던 지난해에 들어서야 이 사실을 인지하였다.


 성벽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 위치에 이렇게나마 그 흔적을 남긴 것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간수문

 전술한 것처럼 흥인지문 일대가 도성 안에서 가장 지대가 낮아 내사산에서 내려온 물이 동대문 일대의 수문으로 빠져나갔는데, 그 수문 중 하나가 바로 오간수문이다.    


 지금은 오간수교 바로 아래가 아닌 남쪽 방면에 조성되어 있는데, 사실 본래 이쪽 자리에 위치한 것은 아니었다.

 한양도성 오간수문, 광희문 등 비교적 근래에 복원한 시설물임에도, 원래 위치에 세우지 못 한 점은 못내 아쉬웠다.

 한양도성이 유네스코에 지정되고, 끊어진 성벽을 복원해 최대한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언젠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간수교에서 한가운데에서 바라본 청계천의 모습은 정말 일품이다.

 사람과 자연, 그리고 조선시대뿐 아니라 근-현대의 역사를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곳이지 아니한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DDP)


 오간수교를 건너면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조성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말이 필요 없는 서울의 랜드마크인 이곳은 박물관과 전시 및 쇼핑 공간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은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관광 명소이다.

 그런데 이 곳은 뿐만 아니라 역사 공간으로서 의미가 매우 큰 장소이다.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역사

 조선 후기에는 훈련도감의 별영인 하도감과 화약 제조 관서인 염초청이 있었고, 1925년에는 일제가 일본 왕세자 결혼 기념으로 이곳에 경성운동장을 지었는데 성벽을 이용하여 관중석을 만들었다고 한다.


 해방 후 서울운동장으로 개칭되었다가 ‘88올림픽(제24회 서울올림픽)’ 이후 다시 동대문운동장이 되었다.


 그리고 2007년 운동장이 헐린 뒤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이때 이간수문, 치성 등 한양도성 관련 유적이 발견돼 현재 일부 복원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복원된 공원 안 한양도성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이간수문


 오간수문과 마찬가지로 수문의 역할을 한 이간수문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다.

 동대문운동장 관중석 밑에 매몰되어 있다가 운동장을 철거했던 2007년 이후에 발굴된 것으로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한양도성의 수문을 당시와 유사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었고 좋았다.

 그 옛날 남산에서 흐른 물이 이곳을 통해 도성 밖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래서 동대문과 청계천이 인접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간수문 뒤로 밀리오레와 두산타워 건물이 보인다. 위치가 절묘하지 않은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흥인지문 구간을 대표하는 포토존으로 꼽을 수 있겠다.



공원 안 성벽


 이간수문 한쪽으로는 성벽이 쭉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길이는 142m.    

 오간수교와 마찬가지로 이곳을 오래전부터 자주 지나갔음에도, 한양도성의 성벽이 공원 안에 있다는 점은 전혀 생각 못 했었는데 근래에 들어 알게 되었다. 아마도 몸체만 있고, 여장이 없었기에 인지 못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없지만 원래 성벽이 위치했던 곳에 이와 같이 그 흔적을 부분적으로나마 늘려나가길 소망한다.



치성


 이 성벽길 가운데 지점에 '치성'이 있다. 치성은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다.    

 즉, 옹성과 더불어 지세가 낮은 흥인지문 일대의 방어를 보완하기 위해 치성을 구축한 것인데, 선조들의 지혜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랜드마크 동대문


 공원을 떠나기 전 뒤를 돌아 아름다운 광경을 잠시 감상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동대문시장과 쇼핑몰, 백화점, 영화관 등 동대문 일대는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곳이다.


 따라서 흥인지문 구간을 순성하실 분들은 동대문 일대를 연계하여 둘러보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광희문으로 가는 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광희문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조금 걷다 보면, 횡단보도 건너편에서부터 광희문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조명에 비친 그 모습이 장관이다!    


 바로 이 모습을 보기 위해 밤에 순성했다.



광희문


 한양도성의 동남쪽에 있는 문으로 한양도성 사소문 중 하나로, 시구문(屍口門) 또는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불렸다.     

 일제강점기에 일부 무너지고 1960년대에 퇴계로를 내면서 반쯤 헐렸던 것을 1975년 원 위치에서 남쪽으로 15m 떨어진 현 위치에 중건하였다고 한다.    


* 신당동의 유래

 광희문은 시체가 나가던 시구문이어서 문밖은 노제 장소였으며 때문에 무당 집들이 많았다. 이로 인해 신당리(神堂里)로 불렸는데, 갑오개혁 이후 신당리(新堂里)로 바뀌었다.


* 인조반정

 일반 백성들도 출입하기를 꺼리는 문이었으나 왕의 신분으로 이 문을 이용한 왕이 있었다.

 인조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사가 예상보다 빨리 도성에 접근하자 광희문을 통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고 전해진다.

 왕이 백성을 두고 피신한 그 문. 광희문은 그 어느 문보다도 비극적 역사를 함께한 문이다.



달밤에 더 빛나는 광희문


 한양도성은 어느 구간 할 것 없이 밤 풍경 또한 기가 막히는데, 특히 광희문이 그러하다!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이 모습을 보기 위해 기자가 밤에 순성한 것이다!


 

정말 황홀하지 아니한가?!

 사실 광희문은 밤뿐만 아니라 낮 풍경도 예쁘다.

 그래서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해가 지기 직전 광희문을 찾아 조명 켜기 전과 후 모습을 모두 감상해보시길 강력히 추천드리는 바이다!


2020년 가을, 같은 날에 찍은 광희문 성벽의 낮과 밤


 그리고 흥인지문 구간에서 유일하게 축조시기별 성돌의 각기 다른 모습과 각자 성석을 볼 수 있는 곳이 광희문 성벽이다.

우측 사진 가운데 각자성석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장충동 주택 지역


 광희문 성벽을 완전히 지나기 전 광희문 쪽을 바라보았다.

 높은 나무 사이로 광희문의 성벽과 저 멀리 동대문 일대 쇼핑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광희문 성벽을 지나 장충동 주택가로 들어섰다.




* 주택가 속 한양도성의 흔적


 1930년대에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이 일대에 문화주택 단지를 조성하면서 한양도성의 상당 부분을 훼손했으며, 해방 후 1960~70년대에 신축된 주택들도 성벽을 파괴하였다 한다.

 일제시대도 아닌 1960~70년대에 한양도성 성벽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대단히 안타까웠다.


 그렇게 파괴된 성벽의 돌은 주택의 담장이나 축대로 사용되고 있는데, 골목길을 걸을 때 성돌의 흔적을 찾아보자. (아쉽게도 작가는 확인하지 못 했다)



* 골목길 순성의 에티켓


 민가 지역인 데다가 밤이었기에 특히 조용히 순성에 임했다.

 한양도성 구간들에는 이처럼 근 거리에 마을이 있는 곳이 많아 마을 사람들을 배려하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함을 잊지 말기를 당부드린다.


 순성을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나다 보니, 더 어둑해져 주변 관경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 골목길은 낮에 걸었을 때 주변의 풍경이 잘 보여서인지 그때가 더 운치 있고 정감 있었다.


 역시 한양도성 각 구간은 낮과 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하기에 여러 번 가도 결코 지루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순성 구간의 막바지에 이르자 천주교 신당동 성당이 나왔다.    

 성당의 조형물이 대단히 멋졌는데, 개인 휴대폰이 구형이라 밤에 찍는 사진들이 멋지게 담기지 않아 아쉬웠다. 물론 눈에는 그 멋짐이 충분히 담겼었지만.


 성당을 지나고 나니, 다음 순성 구간인 목멱 구간의 안내판과 그 초입의 모습이 보였다.



장충체육관


 흥인지문 구간이 종료지점이자, 목멱 구간의 시작 지점인 장충체육관.    

 1963년 2월 개장한 국내 최초 실내체육관으로 2015년 1월 리모델링을 통해 재개장한 시립 체육시설이다.


 체육관 규모는 지하 2층, 지상 3층 건물로 관람석은 4,507석이며, 체육관 외부는 원의 형태이고 돔으로 된 지붕을 가지고 있다.

 체육관 내부의 원형 코트는 배구, 농구, 핸드볼 경기가 가능하고 각종 문화행사가 개최되고 있어 도심 속에 위치한 스포츠와 문화복합시설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장충체육관은 목멱 구간 순성 때 살펴보기로 하고, 이번 순성은 그 건너편에서 마무리했다.     

 체육관 뒤로 불빛을 띄는 남산타워가 보였다.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흥인지문 구간이다!





 


 전통과 현대, 화려함과 소박함이 공존하고 우리의 삶이 녹아있는 흥인지문 구간!

 

  중세-근대-현대의 역사가 공존하며 살아 숨 쉬는 곳이 흥인지문 구간이다.

 우리 선조들과 후손들의 삶이 고스란히 닮겨 있고, 화려함을 옆에 두고 있으면서도 소박함 간직하고 있다.

  자연환경의 도움 없이 옹성의 형태로 도심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흥인지문.

 민생의 삶을 대변하고 위로하는 듯한 작지만 강한 광희문은 그 자체로 우리네 삶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지방에서 상경한 작가는, 흥인지문 일대에 왔을 때 서울에 내가 왔음을 다시금 깨닫고는 했었다.


 특히, 서울살이가 힘들었을 때 흥인지문은 그 존재 자체로 내게 큰 위로가 되었고, 광희문은 민중의 삶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나에게 늘 친구와 같았다.  



 성벽이 사라진 곳은 부디 조금씩이나마 복원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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