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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한솔 Jun 07. 2021

한양도성 '숭례문 구간'

한양도성 전 구간 기획 순성 제5편

[한양도성 순성 - 제5편]  '숭례문 구간'

(백범광장~숭례문~대한상공회의소~돈의문 터)


- 한양도성의 흔적을 찾기 힘들어 가슴 아프지만, 근대역사의 의미 있는 건축물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곳



 한양도성 구간 순성 프로젝트가 반환점을 지나 어느덧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이번에 다녀온 한양도성 숭례문 구간은, 한양도성 홈페이지에서는 '백범광장'을 시작점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지난번 남산 구간 순성에서 백범광장을 다녀왔었기에 숭례문을 시작점으로 잡았다.


 사실 숭례문 구간은 한양도성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이 익숙한 길 어디에 어떤 식으로

한양도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와 지금은 어떤 건물과 길로 채워져 있는지 여러분들께 알려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번 순성길에 올랐다.    


 구간 거리는 약 2km에 불과하지만, 역사적으로의 매우 의미 있고 볼만한 건물이 즐비한 곳이어서 생각했던 것보다는 시간이 소요되긴 했다.

 이미 독자 여러분들이 매우 잘 알고 있는 곳으로 생각되는데, 구간 내 위치한 역사적 건물들도 일부를 간략하게 짚어 드리겠다.



한양도성 숭례문 구간은?

 백범광장에서 숭례문을 지나 돈의문 터까지 이어지는 구간.

 이 구간에는 근대에 들어 성벽이 헐어지고 다른 건물들이 들어섰다.

 서구(西歐) 각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서울을 개방한 이후, 정동에 각국 공사관(公使館)과 외교관 사택,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와 학교들이 들어섰다.

 1899년 전차가 개통됨에 따라 숭례문은 더 이상 문의 구실을 못 하게 되었고, 1907년에는 교통 불편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숭례문 양쪽 성벽이 철거되었다.

 이후에도 남대문로 주변에 대형 건축물이 들어설 때마다 성벽이 철거되어 숭례문 주변에서는 옛 성벽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숭례문을 지나서는 한양도성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올리브 타워로 이어지는 길가로 성벽 일부가 담장처럼 남아있다. 또 창덕여자중학교 담장 아랫부분에서 50m 정도의 성벽을 볼 수 있다.

(백범광장에서 숭례문까지 가는 길에는 밀레니엄 서울힐튼 및 SK남산빌딩 뒤쪽의 성벽 존재)

* 내용 출처 : 한양도성 홈페이지



숭례문


 한양도성 남산 구간 순성 때 종료지점으로 방문했던 국보 1호 숭례문을, 숭례문 구간 시작 지점으로 정하여 다시 한번 숭례문을 찾아 순성을 시작했다.    

 국보 제1호의 숭례문은 한양도성의 남대문이자 정문이다. 1395년에 짓기 시작하여 1398년 완공하였고, 1448년에 개축하였다. 1907년 교통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좌우 성벽이 헐린 뒤에는 문화재로만 남았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으나 2008년 2월 화재로 목조인 1층 약 10%, 2층 문루 약 90%가 소실되었다가 2013년 5월 복구되었다. 이때 숭례문 서쪽 16m, 동쪽 53m의 성벽을 연결하였다.

 숭례문을 둘러본 뒤, 스탬프 도장이 있는 곳을 찾았다! 백악 구간의 숙정문 안내소, 흥인지문 안내소에 이어 세 번째 스탬프 도장을 꾹!


 스탬프 투어는 모바일 한양도성 앱으로도 가능한데, 혹 오류가 날 수도 있으니 오프라인 종이로도 병행하길 권해드린다!

 사실 오늘의 종착지인 돈의문 터(돈의박물관마을)에서 마지막 도장을 받아 완주 기념 배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스탬프는 인왕산 구간을 순성하는 그날 받을 계획이어서 하나를 비워뒀다.


 숭례문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순성길에 올랐다. 한양도성의 흔적이 미미한 구간이라 그런지 곳곳에 순성길 안내 표지판이 있었다.



대한상공회의소 부근 성벽



 대한상공회의소 부근에 성벽 일부가 담장처럼 남아 있다. 1907년 한양도성의 본격적인 철거가 여기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결과 여장은 물론 체성조차 흔적을 찾을 수 없게 훼손되었는데, 2005년에 옛 성돌의 흔적 위에 새로 몇 단을 쌓아 올려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성벽이 있던 자리에 이렇게 복원이 되었지만, 여장도 없이 새 성벽돌만 있으니 정겹지는 않았다. 기왕이면 성벽 위에 여장도 복원하여 누가 봐도 성벽인지 알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조금 걸어가니 드디어 옛 성벽돌의 흔적이 보였다.    

 아주 짧게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내 새 성벽돌이 이어지다가,

 다시 옛 성벽돌이 섞인 담장이 나타났다.

 이번 숭례문 구간에서 한양도성의 흔적이 가장 두드러진 지점이었다.



 옛 성돌 위에 새 성돌을 쌓아 이렇게나마 성벽이 형성된 것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숭례문 구간에 화려한 건물과 명소가 즐비하지만, 개인적으로 한양도성의 흔적이 그나마 남아있었던 이곳 길을 걸을 때가 가장 좋았다.    

 그렇게 성벽길을 지나 정동 방면으로 이동했다.



소의문 터


 정동으로 가는 길에 소의문 터 표식이 있었다. 사소문 중 하나로 도성의 서남쪽에 있었던 소의문은 1396년 도성과 함께 축조, 처음 이름은 소덕문이었다가 영조 20년(1744) 문루를 개축하면서 소의문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광희문과 함께 성 밖으로 상여를 내보내던 문이었는데, 천주교 순교자들 다수도 이 문밖에서 처형당했기 때문에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순교자의 문으로도 불렸단다.

 1914년 일제의 시구개수사업 과정에서 헐려 지금은 소의문 터였음을 알리는 표석만 남게 되었다.

 그저 안타까웠다. 한양도성의 사소문 중 하나인데 존재하지 않다니... 언젠가는 복원되었으면 한다.

 소의문 터를 지나 길을 건너 순성을 이어 갔다.



서울미래유산 '평안교회'


 배재학당 동관 건물이 나오길 기대하던 와중에 예상치 못한 건물과 맞닥뜨렸다.

 말로만 듣던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평안교회였다!

서울미래유산은 2013년부터 서울특별시가 시작한 사업으로 서울의 역사를 미래 세대에게 전하기 위해 가치가 있는 자산을 발굴하여 보전하는 프로젝트다.

 

선정 대상은 서울을 대표하는 유산 중 국가ㆍ서울시 지정ㆍ등록문화재로 등재되지 않은 유ㆍ무형 자산을 대상으로 한다.

(출처 : 위키백과)    

 

 평안교회는 1967년 건립된 고딕 양식의 벽돌조 교회 건축물로 희소성이 있으며 도심에서 오랜 기간 존재한 종교시설이어서 보존 필요성이 상당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예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느낌도 주는 멋진 건축물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정동길에는 이러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배재학당 동관부터 해서 말이다.



배재학당 동관(배재학당 역사박물관)


 바깥에서는 아주 현대적인 빌딩이 떡하니 보여 내가 찾는 그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빌딩 안쪽 길로 들어가니 내가 찾던 바로 그 건물, 배재학당 동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6호, 1916년 준공된 배재학당 동관은 현재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배재학당은 1885년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설립한 학교로서 1886년 고종이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이다. 초창기 배재학당은 미국 문물 교류의 통로로서 수많은 근대 지식인을 배출하였다.   

 이승만·주시경·김소월·나도향·오긍선·신봉조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근대 역사가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설립자 아펜젤러의 동상도 있었는데, 이방인임에도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해 준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배재학당 다음 등장하는 근대 건물도 역시 아펜젤러가 설립한 정동교회였다.

 아펜젤러... 당신은 도대체!!!



정동교회


 사적 제256호 정동교회는 고딕양식의 붉은 벽돌 건물로 1895년에 착공, 1897년에 완공하였다. 인근의 배재학당 · 이화학당과 더불어 개화기 미국 문물 도입의 통로 역할을 하였다.     


 언제 봐도 참 정겹고, 호감 가는 그런 건물이다.

 요즘 교회 건축물이 화려하고 멋지긴 하지만, 정동교회의 멋짐에는 따라올 수가 없다고 생각된다.

 역사와 전통이 베어있기 때문에.

 그러고 보면 이 근처 근대 건축물의 공통점은 빨간색 벽돌을 꼽을 수 있겠다.



정동의 붉은 벽돌 건물(근대 건축물)


국립정동극장,


덕수궁 중명전(사적 제124호),


구 신아일보사 별관(등록문화재 제402호),


그리고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 모두 붉은 벽돌이 주를 이뤘다.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


 등록문화재 제3호로, 1915년에 준공된 옛 이화학당 교사(校舍)로 현재 이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화학당은 1886년 미국 감리교 여선교사인 메리 스크랜튼이 창설한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은 1887년 왕후가 지어준 것이다. 학교 경내에 유관순 열사가 빨래하던 우물 터와 ‘한국여성 신교육의 발상지’ 기념비, 유관순 동상, 손탁호텔 터 표석 등이 있다.



 이 학교 졸업생 중, 요즘 가장 돋보이는 분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빛나는 윤여정 배우님일 것이다! 입구 건물에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인재를 배출하는 멋진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처럼 정동의 역사적인 빨간 벽돌 건물들은 정말 대단했다. 코로나19 등으로 내부를 방문하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기도 하지만, 애초에 목적이 숭례문 구간 순성이었기에 괜찮았다. 사실 이 건물 하나하나 살펴보면 반나절로도 부족하긴 하다.

 그리고 이제 하얀 건물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구 러시아공사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구 러시아공사관


 사적 제253호, 고종 27년(1890)에 완공된 르네상스식 건물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정동의 상징적 건축물이었다.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끼던 고종이 1896년 2월 이곳으로 피신해 1년간 머물렀다(아관파천). 한국전쟁 중 건물 대부분이 파손되어 탑 부분만 남았다. 1973년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했으며 2007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보수하였다. 구 러시아 공사관 터는 현재 정동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건물은 공사 중이었다.


 그래도 예전에 본 적이 있었으며, 더 멋진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크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또한 이곳 정동공원에 여러 조형물을 볼 수 있었고, 대한제국의 이야기와 사진이 담긴 게시물도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아름다운 한양도성과 그 주변 광경을 보려고 시작한 한양도성 구간 순성이었는데,

자연스럽게 역사적인 지식이 꽤 늘어났다.

 즉, 한양도성 순성을 꼭 해야 하는 이유가 또 한 가지 추가되었다.

 근대 역사를 되새기며 걸어가던 중 좌측에 창덕여자중학교가 보였다.



창덕여자중학교 담장


 돈의문과 주변 성곽은 일제강점기 시구개수사업(1915) 과정에서 훼손되었는데 창덕여자중학교 담장에 일부가 남아 있다.

 담장에는 ‘서대문 성벽의 옛 터’라는 안내문이 있고, 담장 아랫부분에는 19세기 초 순조 때 쌓은 성벽이 50m 정도 이어져 있다. 이곳은 개화기 프랑스공사관이 있던 자리로 1896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옛 프랑스공사관 건물의 머릿돌이 남아있다.


 아쉽게도 외부 방문객의 출입이 제한돼 못 봤지만, 언젠가 꼭 확인해보고 싶다. 돈의문 인접 성벽의 흔적이기에...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정동 골목


 그나저나 정말 여기 정동길은 끝까지 역사적 흔적으로 가득했다.


 아니 무의미했던 공간이 없는 듯했다. 심지어 500년이 넘은 보호수 나무도 있었다.

 그 길 끝자락에 다다르니 건너편에 오늘의 종착지인 돈의문 터, 돈의문박물관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돈의문 터, AR로 만나는 돈의문


 도성의 서대문인 돈의문이 있던 자리이다. 돈의문은 태조 때 처음 세워졌으나 태종 13년(1413)에 만들어진 서전문(西箭門)이 서대문의 기능을 대신하였다. 그 위치는 현재 정확히 알 수 없다. 세종 4년(1422)에 도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하면서 서전문을 닫고 새로운 돈의문을 세웠는데 현재 돈의문 터가 그 위치이다. 이후 돈의문은 새문 또는 신문(新門)으로도 불렸으며, 현재의 신문로라는 지명도 이에서 유래한다.

 1915년 일제는 서대문을 지나는 전차를 개통하면서 이 문을 해체하여 건축자재로 매각하였다.

 소의문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볼 수 없는 돈의문이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AR 체험으로 만날 수는 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한양도성 성곽마을 탐방 - 행촌권 편을 위한 취재 후 추후에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릴 계획이라 이번에는 1층 일부분만 살짝 보고 나왔다.


AR로 구현한 돈의문


 돈의문은 현재 AR로만 만날 수가 있다.

 정말 언젠가 꼭, 가상이 아닌 실물로 복원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근대 역사 탐방을 목적으로 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탐방길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양도성의 흔적을 보기 원했던 목적을 가지고 구간 순성을 했던 입장에서는

한양도성의 흔적이 미미해서 안타까운 마음도 순간순간 들었었다.

 다만, 한양도성이 있던 자리에 근대역사의 의미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채워진 모습을 마음껏 볼 수 있었기에 다소 위안이 되었다.

 한양도성 성벽, 국보, 사적, 등록문화재, 서울특별시 기념물, 서울미래유산, 보호수.

 이 모두를 볼 수 있는 한양도성 숭례문 구간은, 마치 종합 선물세트 같은 구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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