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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석 Oct 14. 2021

면도의 기쁨과 슬픔

무엇 때문에 면도를 하는가?

나의 첫 면도는 고교 시절 이루어졌다. 아버지의 전기면도기였던 것 같다. 정확히 몇 학년이었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앞선 글에서 밝혔듯 매사 느림보 거북이였던 나는 면도를 시작하는 것 역시 같은 반 친구들에 비해 느렸다. 유전인지 호르몬의 영향인지 그냥 2차 성징이 느렸던 건지, 어쩌면 그 셋 전부일런지도 모르겠다만, 그 때는 친구들이 여기저기 털도 나고 면도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어린 마음에 괜히 위축되기도 했다. 나이를 더 먹고서는 하루만 면도를 걸러도 거뭇거뭇한 거울 속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으니, 이 역시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었나보다.


대학 때까지 전기면도기만 사용하던 내가 날면도기를 손에 처음 쥐었던 곳은 군대 훈련소, 진주 외곽에 위치한 공군교육사령부였다. 몇 달만 지나면 장교로 임관해서 어깨에 다이아를 달 테지만, 그곳에서는 이등병보다 한참 못 미치는 대우를 받는 사관후보생 나부랭이 - 사실 소위가 된다 해봐야 딱히 나부랭이 처지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게 함정 - 에 불과하다. 전기면도기? 진짜.. 'ㅋㅋㅋ'만으로 두 줄 정도는 가뿐하게 채울 만큼,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다. 우리에게 주어진 건 두 줄짜리 기본형 날면도기였다. 목욕탕에서 500원인가 1000원인가에 팔던 그 도루코 면도기. 사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막상 면도를 해야 할 시점이 되자 다소 당황스러워졌다. 날면도기, 뭐 그래 좋아, 그런데 <미안하다 사랑한다> 보면 소지섭이 거울 앞에서 면도하기 전에 얼굴에 뭘 바르던데. 그 하얀 폼은 같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노노, 여기는 훈련소다. 가진 거라곤 비누뿐이다. 그런데 비누는 또 어떻냐 하면, 역시 가장 기본적인 목욕탕 비누를 배급받는다. 지금이야 각종 브랜드에서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향도 좋고 거품도 잘 나는 비누를 앞다투어 내놓는다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거 없다. 내가 아는 고급 비누라고 해봐야 '도브' 뿐이었는데, 그런 양질의 '싸제' 비누는 고사하고 맑고 시원한 오이 비누조차 사치였다. 우리는 이등병도 쓰는 공중전화 근처에도 못 가고 이등병도 보는 국방일보조차 볼 수 없는 처지였다. 태어나 단 한 번도 날면도기를 사용해보지 않았던 나는 그 보급형 비누로 어떻게든 풍성한 거품을 내어 인중과 턱에 무성하게 자라난 수염을 깎아내야만 했다. 자, 그런데 그 '어떻게'란 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릴 적부터 목욕탕에 가면 온탕과 냉탕, 그리고 사우나를 오가다 마지막에는 샤워를 하고 나오곤 했다. 싸구려 비누만으로는 거품을 내기 어려워서 목욕탕 타올에 비누를 대고 한참을 박박 비벼야 거품이 일어났다. 어느 날, 온탕에 몸을 담근 채 무심히 때밀이 아저씨들의 작업 현장을 지켜보는데 적갈색 다라이에 타올을 몇 번 슥슥 비비고 나니 헤르미온느가 폴리주스 마법약을 만드는 것처럼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게 아닌가! 와씨, 이건 뭐지? 나는 아저씨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해리포터가 덤블도어의 패시브에 고개를 처박는 것마냥 고무 대야 내부를 찬찬히 살폈다. 조심스레 훔쳐본 다라이 안에는 비누 몇 십개를 뭉쳐놓은 일종의 비누뭉텅이가 있었다. 그날 이후 목욕탕에 갈 때면 때밀이 아저씨의 패시브를 몰래 사용하곤 했다. 나만의 치트키였다.


그래, 그거야. 물량에 장사 없다고 했잖아. 타올은 없지만 샤워실에 있는 비누를 모아다 어떻게 비벼보면 면도를 가능케 할 정도의 거품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부터 물량으로 승부한다. 그러나 상상해 보라. 일과 내내 연병장에서 구르다 새까맣게 탄 피부로 면도 한 번 해보겠다고 비누를 비비고 비벼 알량한 거품을 만들어내는 후보생을.


이렇게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짠하디 짠한 슬픔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날 이때까지 날면도기를 고수하고 있다. 그 이유가 면도의 슬픔이 과거형에 불과하기 때문이냐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 물론 턱선을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는 5중날 파워글라이드 면도날과 힘들여 비누를 박박 비비지 않아도 푸쉬 한 번에 풍성한 거품을 손바닥에 얹어주는 쉐이빙폼이 없었다면 진즉에 포기하고 전기면도기를 다시 찾았겠으나, 아무리 질레트의 기술이 발전하고 니베아가 부드러운 거품을 제공하더라도 면도날이 스치고 지나가는 상처의 빈도는 반드시 면도 경력에 반비례하여 줄어드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손을 삐끗해서, 살짝 힘이 더 들어가서, 딴 생각 하다가, 아니면 잠깐 멍 때리다가, 그렇게 면도하면서 피를 보는 사유도 가지가지다. 


그리고 귀찮다. 너무 귀찮다. 정말 심하게 귀찮다. 특히 아침잠이 많은 나로선 바쁜 아침, 5분 10분이 아쉽고 눈앞에서 놓쳐버린 지하철 하나로 나비효과처럼 지각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수 있는 상황에서 면도를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다같이 사는 이 세상의 일원으로서 덥수룩한 채 다닐 수만은 없으니, 어느샌가부터는 그냥 밤에 여유롭게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수염이 코 밑이나 턱 일부에만 나지 않고 유럽이나 중동 애들처럼 얼굴 전체에 고루 나는 편이다. 그래서 해외에 머물 때는 기본적으로 며칠에 한 번 정도만 면도를 했고, 때로는 일주일 가량 하지 않기도 했다. 내가 현지화에 관해서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운 데에는 수염도 한 몫 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지 않고서야 현지인이 나에게 '현지어로' 길을 물어볼 리가 없지 않나.


그러나 이 모든 슬픔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기면도기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날면도기를 사용했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전기면도기로 대충 슥슥 밀어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깔끔함과 개운함 때문이다. 애프터쉐이빙이 주는 청량감은 때로 '경쾌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기분인데, 가끔은 속세의 번뇌가 수염과 함께 세면대 저 아래 광활한 바다로 쓸려내려가는 듯한 감흥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여성분들은 면도에 대한 감이 없으실 듯 한데, 그나마 가장 가까운 걸 떠올려보자면 제모? 그런데 제모에 깔끔하고 개운한 감각이 동반될 수 있을런지는... 음, 그건 내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어쩌면 설거지나 청소를 할 때의 마음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집안일을 좋아하지 않는데, 가끔 심경이 복잡할 때 감정을 추스리는 데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무언가를 치우거나 깨끗하게 하다 보면 고민이 정리되고 가벼워지면서 마음이 차분해지는데, 면도에도 그런 묘한 기쁨이 있다. 거품을 다 씻어낸 뒤 조금 더 잘생겨보이는 얼굴을 마주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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