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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커뮤니티

04화

by 윤솔 Mar 06. 2025


"윤주임, 어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바꿨던데. 잘 나왔더라."


업무를 보고 있던 나에게 다가와 남석은 말을 걸었고 공복에 커피를 먹어서 그런가,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역류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우리 솔이가 결혼하면 진짜 서운할 것 같아. 입사 때부터 내가 진짜.."


입사 때부터 뭐? 말 끝을 흐린 채 마치 어린아이를 바라보듯 촉촉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남석의 모습을 나는 애써 무시했다. 게다가 '우리 솔이' 라니.. 평생 우리 아빠한테도 못 들어본 말을 낯선 남자 입에서 들으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의 무려 아이 다섯의 아버지인 남석은 주변사람들을 어린아이로 자주 취급했다. 마치 그의 보살핌과 친절이 필요하다는 듯이. 나는 그런 친절이 굳이 불필요한 사람이었기에 얼른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남석은 점심시간마다 외로운 뒷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런 그가 점심시간에 정확히 뭘 먹는지는 모르지만, 끼니를 매번 대충 때우는 것인지 태생적으로 마른 몸에 배만 튀어나온 모습이 다소 외계인 같았다. 아니, 어쩌면 와 대화할 때 모두가 답답해하니 그도 응축된 밀가루로 이루어진 눈사람일 수도 있겠다.


"어제 우리 아이랑 소주 한 잔 했잖아."


나는 깜짝 놀랐다. 정 장님의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네? 아이랑요?"

"아 애가 직접 먹은 건 아니고~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소주 한잔 먹겠다고 하니까, 아이가 얘기를 들어주겠다고 내 앞에 앉더라니까. 벌써 효녀기질이 보여."


결혼 후에도 골프와 각종 취미 활동을 놓지 않는 커리어우먼인 정건아 장은 종종 자신의 아이 자랑을 하곤 했다. 어린 나이에도 벌써 본인이 챙기지 않아도 알아서 학원에 간다던지, 밥을 먹는다던지. 남편자랑까지 곁들여서 본인은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남편이 내조를 엄청 잘하는 탓에 집이 아주 평화롭다고. 어깨를 으쓱대며 조곤조곤 말하곤 했다.


또각또각. 검은색 하이힐을 뽐내며 사무실 복도를 우아하게 거니는 정 장을 주변은 부러워했으리라.


다만 나는 이상하게 정 장의 어린 여자아이에게 마음이 쓰였다. 뿌듯한 표정으로 아이 자랑을 하는 그녀의 말 너머로 맞벌이 부모로 인해 독립적일 수밖에 없는 착한 딸은 어떤 기분일지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회사를 다니며 취미 활동과 술자리가 많은 엄마. 같이 생계를 책임지지만, 늦게 퇴근하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려 노력하는 아빠.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 아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것만 같았다.


그런 아이를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다니는 정 장은 내 눈에 팔이 없는 눈사람 같았다. 모든 게 완벽하다 생각하지만, 정작 곁에 있는 가족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는 없는 차가운 눈사람말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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