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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Nov 29. 2020

수술

이건 드라마가 아니다

드디어 수술 날 아침이 되었다. 별 다른 걱정 없이 잠든 덕에 컨디션에는 문제가 없었다. 물론, 컨디션에 이상이 있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을 것이다. 수술을 집도하시는 의사선생님의 컨디션이 좋기를 바라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7시 반이 되자 병실이 부산해 지기 시작했다. 수술실로 나를 이동 할 이동식 간이 침대가 병실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 다른 설명도 없었고, 별 다른 의료진이 나와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의료진 한 분께서 이동식 간이 침대를 병실 앞에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때를 돌아보는 내 기억은 이런 이른 아침을 부산스럽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도 수술을 하는 데에 있어서 별 걱정이 없다고, 무섭지 않다고 겉으로 말하고 있던 내 모습과는 다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일 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동식 간이 침대에 올랐다. 내가 처음 쓰는 사람이라 그랬을까. 침대가 굉장히 차가웠다. 침대에 누운 내 위로 별달리 따듯할 것 같지도 않은 얇고 뻣뻣한 의료용 이불 하나가 덮어졌다. 이불을 덮으니 더 추운 것 같았다. 혹시라도 걱정을 할 가족들에게 더 걱정을 주고싶지 않아서 재미있는 경험인 듯 웃어보였다.


 '아차, 안경이 없지...'


 수술을 위해서 안경을 벗으니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형태는 어느 정도 보이지만 가족들이 어떠한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난 웃어야 한다. 준비를 마치자 침대를 가지고 왔던 의료진이 침대를 밀기 시작한다. 사실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수술실로 이동할 때에 보였던 천정의 모습을 생각했다. 뭔가 귓속으로 노래가 들릴 것만 같고, 가족들이 따라오면서 눈물을 훔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러한 감상에 젖어보려고 할 때 즈음, 다시 현실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침대를 이동시키는 의료진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빨리 나를 내려주고 다른 손님을 태우러 가야하는 택시기사 같았다. 더구나 누운 채로 이동을 하니 주변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눈이 나쁜 탓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이 허겁지겁 따라오는 것 같았다. 가족들이 따라오지 못하고 나 혼자 이렇게 수술실로 가 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느라 잠시 침대가 멈춰섰다. 다행히 아내는 내 옆에 있었다. 아내가 손을 잡아주었다. 안심이 될 줄 알았는데, 반대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자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 기분까지 들었다. 난 환자 체험을 하고 있는게 아니다. 가족들의 얼굴을 처다보았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의료진은 나를 수술실 입구로 데리고 들어갔다. 흔히 테레비젼에서 보았던대로 수술실 입구에서 잠시 멈춰서 가족들과 인사를 하라고 했다.


 "잘 자고 올게요."


 나는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수술실이라고 믿었던 곳은 사실 수술실이 아니었다. 옆에 나와 같은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똑같은 이동식 간이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 같은 수술환자들이 택시를 타고 수술실로 들어 올 때마다, 입구의 문이 열리고 가족들이 보였다.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시 문이 닫히고, 나는 또 천정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한 의료진이 다가와서 내 침대에 붙어있는 무엇인가를 보더니 나를 데리고 또 어딘가로 이동을 한다. 그러더니 복도의 갈래길 구석에다 나와 침대를 두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몇 분 후에 또 다른 의료진이 와서 침대에 붙어있는 무엇인가를 또 확인하더니 나를 어디론가 끌고가서 다른 복도 어딘가에 우리를 놓고 사라졌다. 그리고 몇 분 동안은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이 과정을 모두 기억해야만 해'


 언젠가 수술을 하면 수술실로 들어가는 과정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나는 지금 이 수술을 기억하고싶었다. 기억하고 이 과정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건강에 대한 의지가 약해질 때마다 이 과정을 고스란히 되뇌이고싶었다. 나는 지금을 반드시 기억해야한다. 하지만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 정확한 모습들은 기억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David씨 맞으시죠?"


 "네"


 한 여 간호사가 와서 이름을 묻더니, 이내 우리를 끌고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한다. 복도의 이곳 저곳을 지나 이번에는 꽤 길게 이동하고 있는 듯 했다. 이제 좌우로 '수술실'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보인다.


 '수술실이 꽤 많은거구나.'


 수술실 몇 개를 지나 드디어 나는 내 장을 절제해 줄 수술실에 도착했다. 수술실에 도착을 하고 나니 간호사가 준비되어있는 수술침대로 옮겨 누우라고했다. 수술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추웠다. 침대도 너무 차가웠다. 가슴 여기저기에 무슨 패치같은 것들을 붙이더니 이내 머리쪽에도 몇 개 붙였다. 그리고 몇 가지 수술 전 장비체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정적.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수술을 시작하려는 것 같지도 않았다. 수술실의 시계는 분명히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집도하시는 의사선생님이 약간 늦으셔서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시간이 얼마나 어떻게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수술실 여기저기를 보아도 가까운 몇몇 장비들만 보이고 다른 것은 희미할 뿐이다. 내 옆에 있는 남자 간호사 한 명은 심심한건지 확인할 급한 것이 있는 건지 핸드폰만 계속 보고있다.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는 있지만 별로 분주해 보이지는 않는다. 춥다. 여기는 너무 춥다. 아무도 말조차 걸어주지 않는다. 안심시켜주려는 사람도 없다. 그저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줄곧 한결같던 공기가 갑자기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의료진들이 하나 둘씩 내 주변에서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곧 의료진 세 명이 각각 차트를 들고 내 주변에 섰다. 내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리고는 뭔가 확인하는 구호같은 것을 동시에 말한다. 확인이 끝난 듯 하다. 이내 뭔가 주사를 시작한 것 같았다. 수술이 시작되려나보다. 내 입에 마스크를 씌우더니 숫자를 세라고 했다.


 여기까지가 수술실 아침의 내 모든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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