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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Nov 28. 2020

수술 전야

미처 알지 못했지

 나는 한 번도 수술을 해 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 발바닥에 난 사마귀인지 티눈인지를 뺀다고 국소마취를 해서 그 이상한 녀석을 제거한 게 수술이라면 유일한 수술이다. 수술 전에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떠한 절차들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 있다가 수술을 받으면 되는 건가?'


 이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즈음, 간호사가 손바닥 크기만한 연고같은 것을 들고 들어왔다.


 "환자분, 이거 제모하는 약이니까 지금 하시면 되요. 바르고 나서 5분 있다가 휴지로 닦으시면 됩니다."


 "...???!!!!"


 음모를 포함하여 아랫도리쪽에 있는 모든 털을 이 약을 사용해서 깨끗하게 없애야 한단다. 복강경으로 수술을 진행할 때에 장비가 들어가야 하는 곳에 털이 있으면 안된다고 했다. 혼자서 이걸 못할 것 같은데...? 그렇다. 이건 혼자서 할 수 없다. 누군가 내 엉덩이를 들여다보며 이 일을 해 주어야 한다. 어머니에게 이 일을 부탁드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일을 부탁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 밖에 없었다. 바로 아내였다. 아내에게 이 일을 부탁하고 나는 생에 두번 째로 누군가의 앞에서 엉덩이를 개방했다. 군 입대때 했던 신체검사에서 해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정말 5초도 걸리지 않을만큼 잠깐이라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5분을 넘게 모든 것을 아내에게 온전히 맡겨야 했다.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아직 결혼 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가족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크게 대수롭지는 않았다. 


 "여보, 이거 다 했는데 제대로 된건지 잘 모르겠어. 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봐야 할 것 같아."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다른 사람에게 확인을 받아야 하다니. 적잖게 당황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런 수술을 해 본 사람이 주위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수술해 본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상태를 면밀히 확인하지는 못했을 것이 아닌가. 간호사도 다소 망설이는 눈치였지만, 이런 분야에 있어서 의료계 종사자들은 단호하다. 자연스럽게 몇 초 정도 확인을 하더니 괜찮다고 했다. 


 수술 전 까지는 이제 당황스러운 일은 더 없겠지?


 오후에 수술을 집도하실 의사선생님께서 오셨다. 수술에 대해서 몇 가지 정보들을 알려주고 가셨다. 수술은 얼마 정도 진행 될 예정이라는 것과 어떠한 식으로 이루어 질 예정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정보 중에는 '장루'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장루'란 장이 없는 사람에게 장을 대신할 튜브같은 것을 착용시키는 것을 말한다. 짧게는 6개월 부터 길게는 평생 이 장루를 차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분명히 수술하는 부위는 S결장 중 발병위치로부터 위아래로 15cm씩 총30cm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로써 발생할 수도 있는 최악의 경우를 설명해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아 또 마음 한 켠이 서운해 졌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는 말씀해 주시니 안심은 되지만, 서늘한 이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저녁이 되자, 간호사는 관장약과 알약 두개를 가지고 왔다.


 "금일 자정까지는 관장약 드시고 관장 하세요."


 또 관장약이라니, 2월 13일 내시경 검사를 위해서 관장약을 먹은 것을 시작으로 해서 지금 까지 8L정도를 먹었는데, 또 먹으란다. 장에 뭐가 남아있기는 한걸까.


 "깨끗하게 물처럼 변을 보시게 되면 알약을 하나 넣으세요. 좌약이에요."


 병원에서 간호사가 하라고 한 것 중에 당황스럽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좌약이라니. 어렸을 적에 몇 번 넣어본 적이 있는 기억 외에는 아예 잊고 살았다. 좌약을 또 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좌약의 문제는 또한, 혼자 넣지 못한다는 데에 있었다. 이번에도 아내가 고생해 주었고,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새기고 또 새겼다.


 드디어 수술 전의 모든 작업(?)은 끝난 것 같다. 이제 자고 일어나서 내일 아침에 수술만 하면 된다. 수술만 하면 되겠지. 잠깐 자고 일어나면 수술은 다 끝나있고, 난 가족들 곁에 있을거야. 그럼 한 고비가 넘어가는 것이겠지. 수 차례 되뇌이고 또 되뇌인 후에야 겨우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수술만 하면 다 괜찮아 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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